샘과 함께 ‘채가이버’와 함께라면 “나도 발명왕”20년간 전국과학경진대회 휩쓴 화순고 채희진 선생님 물리 수업이 딱딱하잖아요. 제 수업도 남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칠판에 공식 쓰고 읽히고 외우게 하는 평범한 물리교사였습니다. 그러다 2003년 대학원에 다닐 때 한국교육대학교에서 열리는 ‘한국과학교육학회 세미나’에 참가했어요. 해외에서 온 교사들도 많았는데, 일본 퇴직교사들이 운영하는 부스를 참관하며 깜짝 놀랐습니다. 수많은 실험 장치들을 시연하며 알기 쉽게 물리의 원리를 전달하고 있었어요. 저는 그때까지 물리 수업을 이론적으로만 가
샘과함께“아버지 따라 참스승 되고 싶어요”생태농업으로 배움의 가치 실현하는 김예튼 선생님 제 이름이 좀 특이하죠? ‘예쁘고 튼튼하게 자라라’고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한글 이름입니다. 아버지는 국어 선생님이셨어요. 아버지께서 걸으셨던 참교육의 길을 저도 가고 싶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전교조 창립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신 후 엄청 고생을 하셨어요. 복직하고 교직에 계시다가 2008년 공모제 교장으로 전북 장수중학교에 부임하셨죠. 그때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용하셨는데, 이것 때문에 정직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다 간암 진단을 받고
샘과함께“한자와 신조어를 ‘열공’ 중입니다”시 쓰는 배움터지킴이 김선월 선생님 배움터지킴이는 외부로부터 학교를 보호하는 일이 주된 업무예요. 누구든 불쑥 함부로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죠. 방문객 안내도 하고, 요즘에는 발열체크도 하고, 마스크 하는 걸 깜빡하고 등교한 학생들에게 마스크도 나눠주고요. 생각해보니 하루 중 등교 시간이 가장 분주한 거 같네요. 그 밖에 학교 순찰도 하고 쓰레기도 주워요.근무시간이 아닐 때는 시를 쓰거나 책을 읽어요. 매주 강진 지역신문들에 시를 기고하고 있어요. 시작詩作들을 모아서 책을 내다보니 어
샘과 함께“완도가 달리 보인대요”지역 참여 프로젝트 수업하는 완도중 최재원 선생님 “코로나로 젊은 사람들도 우울증을 겪었는데,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드리기 위해서 군청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우리 학생이 완도군청 공무원과 간담회에서 이렇게 질문하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완도군의 인구 감소 해법을 찾아보자는 수업의 하나로 열린 간담회였어요. 인구 감소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대부분 출산과 보육, 여성 등의 단어로 접근하잖아요. 그런데 이 학생은 어르신 복지 문제로 접근하더군요. 그 방식이 참신했어요. 더군다나 어르신을 배
샘과 함께학교 과학교육에 영감되길!대통령상 받은 여수 경호초 강순기 선생님 지난해 경호초등학교에 발령받아 근무 중입니다. 올해로 12년째 교사 생활을 하고 있죠.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졸업 후 대기업 중앙연구소에서 근무했으니 어찌 보면 꿈을 이룬 거죠.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있었다고 할까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어 서른에 교대에 입학했고, 서울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해 2013년, 고향인 여수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지난해 10월 열린 전국과학전람회에 여수지역 동료 교사 두 분(여천초 김기범, 소라초 김
우리 학교 참 예쁘죠? 5년째 재직 중인데, 올해부터는 초빙교사 신분이에요. 저는 스마트수업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2018년 천태초에 왔는데 이듬해 전교생이 24명으로 줄었어요. 폐교될까 두려워 우리 학교는 농수산부 농촌유학사업 공모를 추진해 유학생을 받았고, 2019년엔 전남교육청 스마트교육 시범학교에 신청해 선정됐어요. 그때 앱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응모했어요. 국어수업에서 이야기를 쓰고 미술수업에서 장면을 완성했죠.그 성과를 바탕으로 그해 하반기엔 삼성스마트스쿨 지원사업에 선정됐습니다. 교실 두 곳을 플립티비를 갖춘 스마트교
아침마다 학교로 길을 떠난다. 3월 초부터 시작해 20여 일 동안 벌써 전남 서부권 학교 33개교 이상을 방문했다. ‘전남교육청 서부권역 이동검체팀’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5명 이상 나온 학교에서 전남교육청으로 신청을 하면, 이들이 신속히 출동해 전교생 PCR 검사를 해준다.김다영, 유정무, 오가연, 유다영, 이가은, 임가은, 선진옥, 임예지 씨. 모두 8명이다. 2인 1조 4개 팀이 목포, 무안 등 전남 서부 지역 학교들로 흩어진다. 학교로 찾아가니 학생들은 검사 시간과 동선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학생들의 편리는 이동검체팀이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져볼 때가 있습니다. 전남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이런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고요. 저는 전남의 민담, 설화, 신화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사시사철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농촌의 삶 속에서 소재를 얻었고요. 전남에서 근무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 생각합니다.등단의 기회를 열어 준 첫 번째 중편동화 는 첫 부임지인 영광 법성초 주변이 배경입니다. 법성포에서 홍농으로 가는 길에 있었던 나루터가 주된 공간입니다. 이 작품으로 1975년 소년중앙 문학상을 받았지요.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로마 신화가 유
지난 1년간 수많은 학생과 학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어요?’ 저희를 만날 때면 매번 같은 질문이 쏟아지고, 한결같이 간절합니다.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생활기록부 등을 토대로 현실적인 답변을 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넘쳐나는 대입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학생의 성적과 적성에 꼭 맞는 정확한 진로·진학 상담을 해드리는 것, 그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저희는 대학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수년간 근무했습니다. 입학사정관은 대학의 관점에서 학생을 어떻게 뽑을지 선발 기준을 설계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좌)이은경 공동저자. 나주 동강초 영어회화 전문강사 10년 차.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 기초학력 향상이 필요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영어교재 연구·개발에 동참했다. 제작 완성 단계인 초등 고학년 편 역시 공동저자로 참여했다.(우)박은욱 공동저자. 담양 수북초 교사. 지난 10여 년간 전남의 농어촌학교에 재직하며 학생들의 기초학력 향상에 도움을 줄 방법을 고민해 왔다. 평소 영어교육에 관심이 많아 1년의 노력 끝에 올해 4월 첫 번째 기초 영어 교재를 편찬했다. ‘1200시간 이상,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며 살았죠. 젊은 시절 광주 학원가에서 소위 말해 ‘스타강사’로 큰돈과 명예를 가져봤죠. 이후 광주 광이고(현 명진고)에서 34년을 학생들과 함께 했답니다. 교육의 효과가 콩나물시루 물 주듯 당장 눈에 띄는 건 아니죠. 꾸준히 정성을 쏟으면 학생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있어요. 그것을 보는 것이 큰 보람이고 행복이었죠. 2013년에 퇴직했는데, 더 이상 교단에 설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헛헛했죠. 고향에 와서 농사를 지어볼까 했어요. 평생을 교육에 몸담았던 터라 농업에 관해 아무런 지식이 없어서 고흥
교사로서 첫발을 내딛은 때가 1989년 9월이었으니 교육현장에서 보낸 세월만 30년이 넘었습니다. 부지런히 공부했고, 나름의 교육철학을 정립하려고 애썼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교사 생활의 황혼기를 고향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보내고 있는 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도초고는 2014년에 신안의 거점고등학교가 되었습니다. 교직원 40명에 전체 학생수가 179명이니 섬 지역 학교로는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죠. 비금도를 비롯해 도초도 밖에서 온 학생들이 더 많습니다.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죠. 이런 인적 구성이 주는 다양성이 우리
가끔 반 아이들에게 작곡한 노래를 들려줍니다. 제가 만든 곡인 걸 알려주지 않은 채 가만히 아이들 반응을 지켜봐요. “좋아요”라는 칭찬이나 박수소리가 나오면, 그때 공개하는 거지요. 반응이 별로다 싶으면 아무 말 없이 넘어간답니다.(웃음) 동요에 있어서 아이들은 가장 좋은 청중이고, 길잡이에요. 작곡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되었어요. 교직생활 23년차에 비해서는 짧죠. 그래서 ‘작곡가’라는 호칭이 어색해요. 하지만 이젠 선생님과 작곡가, 두 호칭이 ‘환상의 짝꿍’ 같아요. 노래를 통해 아이들과 더 호흡하고,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는 6년 전에 출간된 동학 관련 소설책이에요. 올해 책을 구한다는 문의가 많았어요. 덕분에 지난 3월 개정판이 나왔어요. 감사한 일이죠.(이하 소설 이름을 으로 약칭합니다.-주) 은 ‘동학언니들’ 모임에서 시작됐어요. 전국에서 모인 15명의 여성들이 의기투합한 거죠. 서울부터 해남 땅끝까지 사는 곳도 다양하고, 교사부터 한의사, 시민활동가 등 직업도 가지각색인 모임이었죠.우리는 ‘여성’의 주체적 삶을 문학으로 그려내려고 했어요. 그 무대를 동학으로 했죠. 동학은 ‘사람이 곧 하
마흔한 살에 초등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어요. 30대 후반 교대 진학 전까지 생각도 삶도 자유로운 편이었죠. 교사가 된 후 아이들과 함께 영상 제작에 의기투합할 수 있었던 건 20대에 연극에 빠져 살았던 영향이 클 거예요. 연극이나 영화는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의 조화로움을 통해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죠. 아이들은 제작 과정을 통해 ‘함께’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를 체험으로 느끼면서 성장 발전해 나갑니다. 방과후 영화제작부를 운영하는 데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이유기도 하고요. 우연한 기회에 아이들과 영상 제작을 하게 됐어요. 2015년 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