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치

맛객

서울 것들은 모르는 싱싱한 바다의 맛

 

삼치

 

25년 전 즈음이었던가. 내일보다 오늘이 더 불안했던 나날들이었다. 불안은 몸도 마음도 갉았다. 늘 허기졌고, 잠도 부족했다. 호주머니 사정도 궁하던 때라 좋아하던 생선회를 배부르게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수험으로 인생역전(?)을 꿈꿨던 우리 다섯. 잠시나마 현실에서 벗어나 보자고 누군가가 제안했다. 다섯 중 한 명의 고향이 고흥 외나로도였다. 우리는 아는 이에게 소형차를 빌려 그이의 시골집으로 1박2일 나들이를 떠났다. 4시간 걸릴 정도로 광주에서 외나로도는 멀었다.

 

담백하고 육질이 부드러운 삼치 회

 

고흥에 도착하자 다섯의 주린 배를 채우는 게 급했다. 싸고 넉넉한 횟감을 찾아 고흥의 한 수협공판장에 들어갔다. 1m가 족히 돼 보이는 맵시 있는 생선이, 얼음 가득한 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온전한 생물 삼치를 그때 처음 봤다. 가격도 착했다. 1인당 만 원씩 내자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꽉 채운 삼치회가 우리의 것이 됐다. 삼치 대가리와 뼈도 얻었다.

삼치는 농어목 고등어과의 등푸른 생선이다. 회귀성 물고기로 봄이면 알을 낳기 위해 연안이나 북쪽으로, 가을에는 남쪽으로 먹이를 찾아 이동한다. 예부터 고흥과 여수 같은 전남 동부권과 흑산도 사람들이 삼치를 많이 잡았다.

느끼하지 않을 만큼 기름지면서 맛은 담백하고 육질이 부드럽다. 구이로는 이미 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특히, 찬바람이 부는 가을부터 겨울까지가 삼치의 제철이다. 수도권 사람들은 삼치를 회로 먹는다는 소리에 갸우뚱한다고. 물에서 건져 올리면 곧바로 죽고, 두툼한 살집 탓에 신선도 유지가 어려운 삼치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최근에는 며칠 숙성된 선어 횟감으로 삼치가 각광을 받고 있다. 삼치 선어 한 점을 겨울 햇김 위에 올린다. 다진 마늘과 고추, 파와 고춧가루가 들어간 간장양념장을 곁들여 씹으면 삼치살은 입속에서 순식간에 녹아 없어진다. 고소함과 감칠맛이 뒤끝에 남는다. 여기에 밥 한 숟가락과 갓김치 또는 씻은 묵은지를 올리면 꽉 찬 한 끼 식사가 된다.

 

배낚시로 삼치를 잡고 있는 이영일 대표

 

조선 사대부들에게 삼치는 고까운 생선이었나보다. <자산어보>는 삼치를 ‘망어(蟒魚)’로 기록하고 있다. 등에 이무기(蟒) 같이 검은 무늬가 있다는 의미였다. “맛이 시면서 진하지만 맛이 떨어지고 탁하다”는 표현도 보인다.

김려는 <우해이어보>에서 초여름에 물가로 몰려든 삼치가 뱀·구렁이와 교미하여 가을에 알을 낳는다는 해괴한 기록을 남겼다. 서유구는 <난호어목지>에서 “북쪽 사람들은 마어麻魚라고 부르고 남쪽 사람은 망어(䰶魚)라고 부르는데 어민들은 즐겨 먹으나, 사대부는 그 이름을 싫어하여 잘 먹지 않는다”라고 썼다.

삼치의 이름에 ‘망’자를 붙인 것은 분명 사람들일 테다. 스스로 붙인 이름에 편견을 쌓고, 선택마저 꺼리는 대표 사례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삼치는 죄가 없다.

 

햇김 위에 흰쌀밥, 삼치, 양념장과 묵은지를 올려 드시는 걸 추천한다.

 

아이스박스를 가득 채운 삼치회는 푸짐했다. 두껍고 큼직하게 썰린 삼치살은 한참을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다음날까지 쌀밥에 삼치회와 초장을 비벼 먹어도 남았다. 얼음 위에서 적당히 숙성도 돼서 달았고, 살이 벌어질 정도로 선도를 유지해 비리지 않았다.

함께 가져온 대가리와 뼈는 묵은지를 넣고 푹 끓였다. 삼치 김치찌개는 적당한 기름기와 담백함으로 속을 은근히 달래줬다. 간만에 물것으로 몸과 마음의 허기가 채워짐을 느꼈다.

지금도 그날 그 삼치의 포만감은 몸이 기억하고 있다. 우리 다섯에게 외나로도의 바다와 함께 그때 그 삼치는, 고단한 현실을 짧게나마 잊게 해준 ‘망(忘)’어였다.

*‌삼치낚시 사진 촬영에 도움을 주신 이영일 흑산도 자산어보마을학교 대표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글 노해경 사진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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