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

맛객

현묘한 맛과 멋

전복


어릴 적 살던 목포 집에는 외가 쪽으로 제법 먼 촌수의 삼촌이 세 들어 살았다. 집 마당을 작업실로 삼은 삼촌의 일은 특별했다. 삼촌은 작업대 선반 위에 기다란 나무판 등을 놓고 온통 새까맣게 칠을 했다. 칠이 마르면 사포로 문지르고 다시 칠하기를 수차례. 그렇게 매끄러워진 나무의 검은 표면은 햇빛을 굴절시켜 오묘한 느낌을 줬다. 

칠이 끝나면, 삼촌은 매끄러운 돌로 조개껍데기들의 표면을 갈기 시작했다. 오색五色 빛깔의 반반한 표면을 얻을 때까지 연마는 이어졌다. 그렇게 얻은 조각에 먹지를 대고 여러 문양을 그려 넣은 다음, 줄톱으로 그 모양들을 따냈다. 그 껍데기들의 정체가 전복全鰒인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전복껍데기들은 삼촌의 손길을 따라 새 생명을 얻었다. 검게 칠해진 나무 표면을 무대로 몇몇은 학이 됐고, 몇몇은 나비로 날아올랐다. 소나무나 바위로 자리 잡거나 꽃으로 피어나는 파편들도 있었다. 자개농 위에 펼쳐진 세상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빛을 반사해 신비감을 더했다. ‘이치와 경지가 헤아릴 수 없이 미묘’하다는 ‘현묘玄妙’의 세계가 이럴까.

삼촌이 만든 자개장 ⓒ노해경

정약전도 전복의 빛깔에 먼저 주목했다. <자산어보>에 “등에는 껍데기가 있는데… 안쪽은 미끄럽고 광택이 있지만 평평하지는 않으며, 다섯 광채가 현란하게 빛난다”고 적었다. 이어 “전복의 살은 맛이 달고 깊다. 날로 먹어도 좋고 익혀 먹어도 좋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포로 먹는 것이다. 내장은 익혀 먹어도 좋고 젓갈을 담가 먹어도 좋으며…”라고 맛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1970~80년대 전복은 자개농으로만 볼 수 있을 만큼 귀했다. 그러다 새천년 초 양식이 활발해지며 생산량이 급증했다. 현재는 한 해 2만 톤을 훌쩍 넘겨 출하되는데, 그 98%가 전남에서 나온다. 고흥 금산면, 신안 안좌면, 완도 금일읍과 보길면, 진도 지산면이 대표 산지다. 

꼬득꼬득한 식감의 전복회와 오묘한 빛깔의 전복껍질 ⓒ클립아트코리아DB

전복은 조선시대까지 임금님 수라상에만 올랐고 지금도 중국에서는 샥스핀, 해삼과 함께 바다의 세 가지 보물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요즘 우리에겐 라면에도 곁들여 먹을 정도로 대중적 식재료가 됐다. 전문식당에서 회·찜·구이·전골·죽 등으로 이뤄진 코스요리를 즐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전복은, 몸에 영양분을 공급해 허약함을 다스리고 오장의 기운을 튼튼하게 하는 자양강장 식품의 대명사로 불린다. 특히, 보양식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의 해산물로 사람들의 사랑이 곡진하다. 전복이 든 삼계탕, 해신탕은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가.

회든, 찜이든, 구이든 전복은 살의 식감이 팔할 이상이다. 전복회의 오도독 씹히는 느낌이 옹골차다. 강렬한 식감에 비해 맛은 반전이다. 초장에 찍으면 새콤달콤하고, 기름소금을 바르거나 버터와 함께 구워내면 고소해진다. 곁들이는 것에 따라 그 맛이 리트머스지처럼 변화무쌍하다.

여느 해산물이 품을 법한 짭짤함과 바다 내음과는 거리가 먼 담백함이 전복살의 맛이다. 내장을 갈아 넣은 전복죽을 먹을 때야 비로소 바다 것 특유의 향이 밀려온다. 어쩌면 그 담담함이 바다의 본디 맛인지도 모르겠다. 텅 빈 듯 깊은 전복의 맛 또한 현묘하다.

전남 완도군 청산도 전복양식장 ⓒ신병문

삼촌은 깡마른 체격에 건강도 좋지 않았다. 온몸으로 뿜어내는 잦은 기침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기 일쑤였다. 먼지가 끓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을 해서 그랬을까. 전복껍질을 능숙하게 다루던 삼촌도 전복살과 내장은 먹지 못했나 보다. 그렇게 누군가가 살과 속을 내주던 시기가 있어서 우리에게 오늘날과 같은 풍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삼촌에게서 자개농과 화장대를 샀다. 잦은 이사에도 자개 화장대는 여전히 어머니의 방 한 켠을 굳게 지키고 있다. 최근 복고 열풍을 타고 자개의 매력에 빠진 젊은이들이 많다고 한다. 휴대용 텀블러 외관이나 휴대폰 케이스 등을 자개로 장식하고 다닌다고.

귀했던 시절이나 넘치는 지금이나 전복은 내게 삼촌을 호출하게 한다. 삼촌과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전복껍질로 새 생명을 탄생시켰듯, 전복살로 당신의 건강을 잘 가꾸고 계시길. 

 

글 노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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