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정명여고 그리고 1980년대

추억앨범

언니오빠들과 함께 구호도 외치고

목포정명여고 그리고 1980년대

근·현대사 격동의 한가운데 서있던 목포정명여중·고와 목포 구시가지 ⓒ서동환
근·현대사 격동의 한가운데 서있던 목포정명여중·고와 목포 구시가지 ⓒ서동환

 

유달산과 목포역 사이 양동 시가지가 목포정명여고의 터전이다. 1903년 ‘미션스쿨’로서 목포여학교(1911년 정명여학교로 개칭)가 문을 연 후 120여 년, 무수한 일들이 지나갔다. 일제강점기 때 정명 학생들은 인근 영흥학교, 양동교회와 함께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1937년 일제의 신사 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했다가, 광복 후 1947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40년이 흘러 전국에 민주화운동의 큰 파도가 출렁였다. 1987년 6월항쟁이다. 도심 한복판의 학교인 정명 학생들은 목포 언니오빠들의 함성을 생생히 들었다. 시내 집회에 나가 함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민중가요를 가르쳐주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그 무렵 전국 고등학교에서도 참교육운동이 활발했다. 정명 학생들도 YMCA 독서모임, 한산촌 결핵환자 위문공연과 일일찻집 등을 하면서 ‘사회’를 배웠다. 전교조 운동 때 선생님 몇 분이 해직됐다. 울분, 분노, 고민… 이런 감정들을 겪으며 정명여고 학생들은 스무 살이 됐다.

목포정명여고 후문에 있는 박승희 열사 흉상
목포정명여고 후문에 있는 박승희 열사 흉상 ⓒ서동환

전남대를 다니던 박승희는 1991년 학생민주화운동 때 분신을 했다. 고교 시절 승희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책임감도 유난히 강했다. 30대가 된 동창들은 승희의 흉상을 세우기로 했다. 학교와 함께 모금도 하고, 일일호프도 열어 건립 기금을 마련했다. 이제 ‘박승희 열사’는 영원한 21세 정명인이 되어 학교 후문 앞에서 21세기 후배들을 만나고 있다.

정문 앞 골목에는 솔분식이 유명했다. 1980년대 야간자율학습 시작 전, 저녁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학생들은 자주 솔분식으로 몰려갔다. 버너 위 냄비에서 떡볶이와 쫄면이 함께 익어가는 쫄면떡볶이가 최고 메뉴였다. 오늘날 솔분식도 그 골목에 남아있다.

글 이혜영 그림 서동환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 해주신 목포정명여고 졸업생 전민재 님께 감사드립니다. 학창시절 추억을 공유하고픈 분들은 전남교육청 홍보담당관실로 연락주세요. 061-260-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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