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지금껏 너무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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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껏 너무 몰랐었다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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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중 청소년미래도전프로젝트팀 H.I.T 역사답사기

H.I.T(History In Travel)는 지역의 유적이나 유물을 찾아다니며 일제의 수탈과 탄압을 조사하는 전남교육청 청소년미래도전프로젝트(이하 ‘청미프’) 팀이다. 

우리 팀은 처음 군산으로 답사를 떠났다. 일제강점기 군산은 호남평야에서 들어오는 쌀을 일본으로 운송했던 거점 물류도시다. 당시 은행, 세관, 일본인 지주의 집이 멋들어지게 남아있다. 이 유산들은 조선인들의 피, 땀, 눈물 위에 쌓은 부의 증거물이다. 은행금고 위에는 ‘금고가 다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마을과 마을 사이 산을 가로질러 뚫린 터널, 어느 때든 배를 띄울 수 있게 한 뜬다리 등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모든 기술들은 수탈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일본인 지주에게 땅을 빼앗기고 소작농이 되어 죽어라 일만 했다. 일본인 지주들의 창고가 ‘우리 것’으로 가득 채워질수록 조선인들은 굶주렸다. 지구 반대편으로 강제 이주당하기도 했다.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조선인들은 고통 한가운데서 살았다. 그처럼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돈을 모아 독립자금을 보탰다. 역사의 흔적들을 눈으로 보며 일제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동시에 독립을 쟁취한 우리 민족의 위대함에 몸이 떨렸다.

두 번째 우리가 찾은 곳은 나주다. 나주역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진원지다. 창피한 말이지만, 나주에도 항일유적지가 있음을 처음 알았다. 본래 우리팀은 부산항과 수원 제암리 학살지로 향하려 했다. 코로나로 급하게 변경했는데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었다. 

우리는 지역의 역사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었다. ‘청미프’ 활동을 통해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주역에서 시작된 학생독립운동은 광주와 서울, 더 나가 만주, 연해주, 일본, 미주까지 퍼지게 되었다. 5개월 동안 전국 320개 학교에서 학생 5만 4천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제1·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가 된 약소국가 중 학생들이 주축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유일한 대사건이다. 3·1운동, 6·10만세운동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힌다. 이를 기념해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지정됐다. 

목포근대역사관(옛 일본영사관) 앞에서 사진찍은 H.I.T팀
목포근대역사관(옛 일본영사관) 앞에서 사진찍은 H.I.T팀

나주 답사 후 우리 팀은 불의에 항거한 옛 전남·광주 학생들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11월 3일 역사 캠페인을 열었다. 학생독립운동을 알리는 팻말과 안내장을 직접 만들고, 등굣길에 광양중 학생들에게 마스크와 안내장을 나눠주었다.

손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날씨였다. 그래도 선배들의 용기를 친구들에게 전해줄 수 있어 뿌듯했다. 안내장을 찬찬히 읽으며 “고생해”, “수고해” 라고 건네주는 학생들의 응원과 교통봉사 중인 학부모님들의 관심들 때문에 우리는 신이 났다. 물론 안내문보다 마스크를 더 좋아하는 학생, 안내장을 읽지도 않고 가방에 구겨 넣는 학생들도 있어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를 마치고 1교시 수업에 바쁘게 뛰어 들어가며 우리는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세 번째 답사는 목포에서 진행했다. 옛 일본영사관과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호남은행 목포지점, 목포청년회관 등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 되고 있었다. 문화해설사님은 옛 일본영사관은 광복 후에도 목포시청으로 쓰였다고 설명해주셨다. 어이가 없었다. 수탈의 아픔이 담긴 곳을 시민의 행복을 책임지는 공공기관으로 사용했었다니…. 지금은 당시 조선인의 생활과 일본인의 약탈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남아있다. 

목포청년회관 앞에 섰다. 멋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강직한 느낌이 들었다. 이곳은 지역 청년들의 항일운동 근거지였다. ‘청년회관은 조선인들의 돈 한 푼 한 푼을 모아서 지었기 때문에 건물 외벽에 디자인요소가 없다.’ 안내문에 적혀 있던 글씨다. 독립을 향한 목포 사람들의 용기와 열망이 느껴졌다.

유적지를 둘러보거나 사진과 사료들을 마주하며 ‘이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일제의 야만적인 행동들을 욕했다. 아직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하지 않는 일본에 화가 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말은 곧잘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라는 각성어로 쓰인다. 그런데 자기 나라의 역사를 왜곡하고 대물림 하는 일본에게도 경각심을 주는 말이 아닐까 생각됐다. 하루 빨리 일본이 독일처럼 제국주의의 잘못을 인정해 우리나라에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그들의 후손들에게 사실대로 가르쳐주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지역의 역사에 얼마나 무관심했는가를 반성했다. 오늘 우리가 웃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이 땅을 지켜온 지역 사람들의 노력 덕분임을 생각하고 감사해했다. 지역을 제대로 알아가고 앞으로 아픈 역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기르는 것이 후손인 우리의 일이라고 다짐했다.

성재혁(광양중 학생)

H.I.T팀 활동 영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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