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켜켜이 쌓인 숲길, 다산초당 가는 길
상태바
인연이 켜켜이 쌓인 숲길, 다산초당 가는 길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0.11.30 00: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진 백련사와 다산초당, 그리고 백운동 원림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 숲길을 혜장과 다산은 얼마나 숱하게 걸었을까?

 

다산 정약용 선생은 강진 유배 18년 동안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오늘날 다산학으로 불리는 저작들이다. 이 세월은 수많은 시인 묵객과 선비들이 그가 기거했던 다산초당을 오갔던 시간이기도 했다. 다산은 신분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각 분야 최고의 명인들과 교류를 나눴다. 200여년 전, 다산이 걸었던 인연의 길로 떠나 본다.
 

먼저 백련사로 길을 잡는다. 고려시대 원묘 국사 요세가 불교 정화운동의 일환인 백련결사를 일으켰던 천년고찰이다. 가람은 담백하고 대웅보전 뒤에는 만덕산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다.

다산은 1㎞ 남짓 거리의 백련사와 다산초당 사이 숲길을 숱하게 오갔다. 백련사의 주지 혜장 선사와 우정을 나눴던 길이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해남 대흥사의 지도자가 된, 똑똑하고 자유로운 승려 혜장은 뛰어난 학승이었다. 유학에도 식견이 깊었던 혜장은 다산이 이룬 학문의 경지에 감탄하여 배움을 청했고, 다산 역시 혜장의 학식에 놀라 그를 선비로 대접했다.

다산초당

다산에게 혜장은 열 살이나 어리지만 지적인 대화와 유배의 고독을 나눌 수 있는 지음(知音)이었으리라. 혜장선사는 비 내리는 깊은 밤에도 기약없이 찾아왔다. 다산은 그를 위해 밤이 깊도록 문을 열어 두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우정은 애틋했다.

서른아홉에 요절한 혜장에게 다산은 글을 헌사했다. ‘아암장공의 탑명(兒菴藏公塔銘)’이다. 다산은 승려이면서 주역과 유교 경전에 능통한 아암의 일생을 짧은 문장에 담아 그의 묘에 붙였다. 아암은 혜장의 호다. 고집불통이었던 혜장에게 다산은 ‘아이처럼 고분고분 순해졌으면 한다’는 조언을 했다. 혜장은 그 뜻을 받아들여  신의 호를 ‘아암(兒庵)’이라 지었던 것이다. 둘 사이 우정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편린이다. 나를 잘 이해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그 길만큼 설레는 길이 또 있을까? 혜장이 걸었을 숲길은 2009년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숲길’ 부문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했다. 다산과 혜장의 인연을 생각하면 ‘어울림상’은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일각에서는 구강포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백련사와 다산초당 가는 길 사이 해월루와 천일각이 있다. 모두 구강포 바다를 조망하기에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다산은 해월루에 올라 저 바다 너머 흑산으로 유배간 형 정약전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천일각은 1975년 강진군이 세웠다. 이곳을 지나면 다산초당에 이른다.

정약용은 다산초당에서 약 10년 동안 ‘다산 학단’이라는 18명의 제자를 길러내고, 다산학을 완성했다. 그는 외가인 해남 윤씨의 후원으로 이곳에 기거했다. 다산초당은 해남 윤씨 집안의 산정(山亭, 산속에 지은 정자)이었다가, 다산의 삶이 녹아들면서 다산초당이 되고, 조선시대 학술사에서 가장 활기찬 학문의 산실이 되었다. 

다산과 혜장의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낳았다. 혜장이 다산에게 초의스님을 소개해준 것이다. 초의는 추사 김정희와 함께 다산초당을 찾아 정약용을 스승처럼 섬겼다. 스물넷이나 어린 초의를 다산은 ‘순공’이라 부르며 아꼈다. 초의는 우리나라 다도의 경전이라 불리는 <동다송>을 지어 우리 차의 깊이와 멋을 전한 인물이다. 초의는 차뿐 아니라 원예, 화초, 단방약 등을 잘 알았고, 장 담그는 법에도 능했다고 한다. 실사구시를 표방한 다산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초의와 다산은 백련사의 숲길을 걸으며 시국담을 나누고 차와 철학을 논하며 우정을 키웠다. 1812년 가을, 다산과 초의 일행은 월출산과 백운동 원림을 유람한 후 예술작품 <백운첩>을 탄생시킨다. 다산은 백운동 원림의 빼어난 경치 중에서 12경을 꼽아 8편의 시를 지었고, 초의는 그 시를 그림으로 남겼다. 다산은 초의의 화첩 말미에 함께했다는 발문을 손수 새겨놓았다. 

백운동 원림으로 길을 잡는다. 백련사에서는 25분 가량 차로 이동해야 하는 강진군 성전면에 있다. 백운동 원림으로 올라가는 길은 온통 차밭 천지다. 탁 트인 다원과 월출산의 풍경에 어지러운 마음도 씻긴다.

백원동 원림

명승 115호로 지정된 백운동 원림을 지은 이는 백운처사라 불린 이담로 선생이다. 정원으로 들어가기 전, 바위에 새겨진 ‘백운동’이라는 암각글자가 눈에 띈다. 학문을 익혀 남을 이롭게 살고자 한다는 주자의 ‘백록동 서원’을 의식해 선생이 새긴 것이라 한다.

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창화벽’이라 불리는, 이끼가 두텁게 낀 커다란 바위와 오래된 나무다리가 반긴다. 이 다리를 건너면 드디어 백운동 정원에 닿는다. 정면으로 보이는 연못 ‘지당’은 물론, 색색이 빛나는 가을빛 나뭇잎들과 화단의 꽃,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들까지, 백운동 원림 안의 모든 존재들이 생기발랄하다. 

계곡에서 끌어온 물을 지당과 연결해 만든 유상곡수가 흐르고, 그 너머 감나무에는 까치밥 홍시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취미선방과 백운유거, 각각의 현판이 달린 두 건물이 안온하게 몸을 감싸준다. 관리를 위해 아궁이에 간혹 불을 지피기도 한다니, 지금도 누군가가 살고 있는 듯한 따뜻한 느낌이 드는 이유를 알겠다. 

다산과 초의가 함께 월출산을 등반한 후 하룻밤 묵었다는 백운동 원림. 옥판봉을 보기 위해 정원 내의 정자, 정선대로 오른다. 다산과 초의가 백운동 원림 제1경으로 꼽은 봉우리이다. 

정선대에 앉아 보는 옥판봉의 능선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정선대로 가는 길에는 백운동 원림을 지은 이담로의 6대손이자 다산의 제자였던 이시헌의 묘가 있다. 정선대에 앉아 취미선방 위에 솟아 오른 옥판봉과 바위산의 능선을 본다. 놀랍게도 200여 년 전 초의가 그린 그림, 그대로이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좋을 만큼 기암괴석이 장관이다. 사람과 사람이 맺은 인연은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다. 강진의 길들이 그렇다. 그 중에 다산과 초의의 인연은 백운첩을 남기고, 차 문화를 남겼다.

백운동 원림을 한 바퀴 돌고 나왔건만 인연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이한영 전통차 문화원’ 으로 간다. 이한영 선생은 다산의 제자 이시헌 선생이 남긴 차 문화와 차 제조법을 오늘날까지 이은 백운동 원림의 후손이다. 이한영 전통차 문화원의 찻집 백설헌에서 강진 인연의 길 내내 함께했던 차 한 잔을 마셔본다. 인연의 힘은 수 백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강진의 길 위에, 또 이 한 잔 속에 이어져 오고 있다. 

 

글 최민임  사진 장진주 

여행TIP 인연의 길

백련사, 다산초당, 마점마을, 용문사, 석문공원, 사랑+구름다리, 석 문, 석문산을 잇는 산책길. 약 8㎞ 2시간 30분을 걷는 코스이지만 지면에서는 백련사~다산초당까지를 소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대억 2020-12-24 14:27:53
96, 97년에 둘러보고 오랜만에 다시보니 반가운 풍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