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과 80년 오월을 담은 임철우의 소설들

임철우 소설의 자산은 기억이다. 그가 써낸 거의 모든 소설들의 무대가 바다를 잇대고 있는 것은 그의 기억과 관계가 깊다. 그는 유년의 대부분을 고향 완도의 외딴 섬 평일도(생일도)에서 보냈다. 80년 오월의 상처 이후 그의 삶은 원래 꿈꿨던 궤적을 완전히 벗어났다. 영혼이 공백상태였고, 긴 시간 보길도에 몸을 의탁하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스렸다.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에 등장하는 가상의 섬 낙일도는 현실 속 평일도와 보길도를 합쳐 새롭게 만든 상징의 공간이다. 임철우가 써낸 소설들은 대부분 거대한 담론의 역사들을 담고 있다. 한국전쟁의 아픔과 80년 오월은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가장 큰 획이었으며, 그가 소설가의 삶을 살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였다.

임철우 소설들의 무대가 바다를 잇대고 있는 것은 그의 기억과 관계가 있다. 그는 유년의 대부분을 고향 완도의 외딴 섬 평일도(생일도)에서 보냈다.

임철우가 소설을 통해 지향한 삶의 총합은 공교롭게도 영화를 통해 완성됐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촬영된 동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1950년 한국전쟁과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깊은 상처의 다른 이름이다. 당시를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은 몇 십 년이 흘러도 폭력과 광기의 어두움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는 원작자 임철우가 직접 썼다. 그는 자신의 장편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와 <붉은 산, 흰 새>, 단편 <곡두 운동회>를 하나로 엮어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영화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동화적 상상력과 피의 비극을, 극단적으로 상반된 정서 체계를 하나로 엮었다.


한국전쟁, 그 서늘했던 죽음의 행렬
쏟아지는 폭우, 꽃상여를 실은 배가 ‘낙월도’로 향한다. 그 배는 결국 섬에 닿지 못한다. 바다에 멈춰 선 꽃상여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대변한다. 그 때 낙월도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념도 없었고, 자기 이득을 좇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부지런 했던 낙월도의 주민들은 결국 한날한시에 몰살을 당했다.

꽃상여에 담긴 문덕배의 아들 문재구는 아버지의 시신을 받아주지 않는 마을 사람들에게 항변한다. “아니할 말로, 6·25 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어디 한 둘입니까? 알고 보면 우리 아버지도 피해자에요.” 문재구의 마을 친구는 답한다. “여기 이 무덤이 누구 무덤인지 아는가? 40년 전 한날한시에 다 만들어진 것이여. 우리가 자네 아버지를 못 받아들이겠다는 게 아녀. 여기 누워 계신 이 양반들이 자네 아버지만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것이여.”

임철우의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원작으로한 동명 영화의 한 장면
임철우의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원작으로한 동명 영화의 한 장면

한국전쟁이 시작되면서 섬마을 낙월도의 평화는 비극으로 돌변한다. 인륜을 저버린 죄로 덕석말이 끝에 마을에서 쫓겨난 문덕배는 복수를 다짐한다. 그의 계략으로 인민군 복장을 한 국군들이 섬에 들어온다. 운동회 가장행렬 같은 연극으로 주민들은 두 패로 갈리고 살아남기 위해 이웃을 고발한다. 그리고 결국 인민군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모두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꽃상여를 태운 배가 끝내 섬에 닿지 못하고 불길에 휩싸이는 것으로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는 끝이 난다. 그 결말은 원작자 임철우의 현실인식을 반영한다. 한국전쟁에서 40년이 지나 임철우는 억울한 죽음들과 억울한 가해자들 간의 화해를 권한다. 그러나 죽은 자와 산 자는 결국 화해하지 못한다. 살육의 전쟁은 끝났지만 남과 북으로 갈려 전쟁을 잠시 쉬고 있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임철우의 고향 평일도(생일도)용출리 갯돌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
임철우의 고향 평일도(생일도)용출리 갯돌 해변에서 바라본 일출

하지만 소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별에 대한 이야기로 현실에서 못 이룬 화해를 꿈꾼다. “모든 인간은 별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품안에서 들을 때는 그 말이 사실로 인정됐다. 믿을 수 없거나 혹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별 속에는 담겨 있다. 임철우의 희망대로 이미 죽어 별이 된 문덕배와 그의 계략으로 처참하게 죽어야 했던 마을주민들은 하늘에서 화해했을까?

 

80년 오월,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한 부채
80년 오월 이후 광주는 ‘빚 감정’으로 삶을 버텨냈다. 임철우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평생을 떠돌며 살았다. 80년 오월이 남긴 절망감은 그에게 시도 때도 없는 눈물을 주었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를 소설 <사평역>으로 확장시킨 정서적 배경이 여기에 있다.(‣영화로 보는 세상 <사평역>)

눈부시게 맑은, 늦은 봄날의 아침이었다.

임철우 장편소설 <봄날>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문장을 써내기 위해 임철우는 꼬박 10년의 시간 동안 죽은 영혼들과 교류하며 살았다. 82년 어느 봄날 “하느님. 제가 그 날을 소설로 쓰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라면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라는 간절한 기도로부터 시작한 <봄날>은 임철우 자신만이 아닌 망월동에 누워있는 망자들과 함께 썼다.

보길도 예송리 마을 전경. 1980년 오월 이후 임철우는 보길도에 몸을 의탁하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다스렸다.

죽음의 두려움 때문에 돌아섰던 자신의 비겁함을 갚아내기 위해 임철우는 소설을 쓰는 동안 단 하루도 편한 잠을 자보지 못했다. 마음의 빚은 결국 치열함으로 바뀌었고 <봄날>은 광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공수부대원들의 공포까지도 한데 엮어냈다. 자료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정신병원과 군부대의 기밀문서까지 훔쳐봤다.

소설가 임철우가 한국전쟁과 5·18민주화운동에 그렇게 천착했던 것은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반성해서 비롯됐다. 그러나 80년 오월 그 피의 봄날이 ‘눈부시게 맑은’ 날이 될 수 있는 힘 또한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나왔다. 80년 5월 27일 새벽, 죽음을 뻔히 알면서도 전남도청을 떠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봄날은 눈이 시리게 눈이 부시다. 

글 한경숙 사진 완도군


임철우 작품 수록 교과서
- ebs 수능특강 문학 2020년 <아버지의 땅>, 2021년 <동행>
- 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 <사평역> (민중서림·블랙박스 등) <그 섬에 가고 싶다>(중앙)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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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임철우 (문학동네 사진제공)

소설가 임철우
1954년 전남 완도 출생. 전남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개도둑>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5월 광주와 분단의 문제,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고발하는 소설을 주로 썼다. 현재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작품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달빛 밟기> <붉은 산, 흰 새>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봄날(전 5권)> <사평역> <백년여관> <이별하는 골짜기> <황천기담> 등
주요수상 1985년 제17회 한국창작문학상 <아버지의 땅>, 1988년 이상문학상 <붉은 방>, 1998년 단재상 <봄날>, 2005년 제22회 요산문학상 <백년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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