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마을학교 ‘너나들이’ 배꽃 길 답사 날

낙안마을학교 '너나들이' 활동가, 낙안초 교사, 마을주민들

눈부시게 흰 배꽃이 융단처럼 덮인 봄날, 낙안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분주했다. 순천시 낙안마을학교 ‘너나들이’가 올해 활동을 위한 모임에 나선 것. 이들은 배꽃 길을 걸으며 앞으로 더욱 활짝 필 꽃들을 떠올려 보았다. 그 꽃은 낙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꽃’, 그리고 마을 곳곳에서 피어날 ‘사람꽃’이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너나들이는 낙안의 마을과 학교를 잇는 마을교육공동체로 자리잡고 있다. ‘너나들이’가 서로 ‘너’, ‘나’ 하고 부를 만큼 허물없는 사이를 뜻하는데, 1년여 사이에 이들도 이름을 따라 많이 가까워졌다. 학교는 문턱을 낮춰 마을과 손잡았고, 마을은 학교와 소통하고 호흡하며 둘 사이를 좁혔다.

4월 5일, 낙안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 마을 주민, 그리고 마을학교 지원조직인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 관계자들까지 설레는 표정으로 배꽃 아래 모였다. 이들은 낙안에 마을학교 너나들이를 뿌리내리고, 키워온 장본인들이다.

“원래 아이들과 걷기대회를 열기로 했는데, 취소되어 아쉬움이 크지요. 하지만 다음 활동을 위해 구석구석 답사를 해보도록 합시다.” 출발에 앞서 낙안 이화서당의 김대중 대표훈장이 말문을 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배꽃이 활짝 핀 4월, 너나들이 활동가들이 마을길을 걸었다.

낙안은 36개 마을 중 7개 마을에 걸쳐 배 농사를 짓고 있어 4월 이맘때쯤 배꽃 군락이 장관을 연출한다. 당초 너나들이는 배꽃이 활짝 피면, 학생들과 ‘낙안골 배꽃 길 걷기대회’를 열기로 했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취소되지 않았다면, 학생들은 하늘을 수놓은 배꽃 터널을 지나 온 마을을 누볐을 것이다.

너나들이는 그동안 걷기대회 준비를 위해 여러 번의 답사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모였다. 덕분에 학생들이 4.5km 배꽃 길 코스를 걸으며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중간 중간 체크포인트를 뒀다. 또, 경로당을 지날 때 어르신께 마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섬세한 구성도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을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기획이었다. 행사의 취지를 살려서 걷기대회 이름 역시 ‘거북이 마라톤’, ‘뚤레뚤레 걷기대회’와 같이 속도나 경쟁과는 무관하게 지으려 했다.

“마을에 배나무가 흔하지만, 배 밭 안에 들어와서 배꽃 길을 걸어본 학생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배꽃이 얼마나 예쁜지, 배꽃 길이 얼마나 특별한지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낙안초 박지홍 교사가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교실 안에서 배꽃에 대한 지식은 알려줄 수는 있지만, 배꽃이 아우르는 풍경을 오감으로 느끼게 하기란 쉽지 않다.

 4월 이맘때쯤 낙안엔 배꽃 군락이 장관을 연출한다.

올해 부임한 낙안초 박윤자 교장은 학교 밖 활동들이 학생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점에 공감했다. “답사를 나와 보니까 마을 도처에 무궁무진한 교육자료가 있네요. 마을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곧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학교와 마을, 인적ㆍ물적 자원 교류 활발해져 실제로 낙안초가 마을학교 너나들이의 한 축으로 참여하면서, 학교 담장 너머 마을이 또 다른 배움터로서 활약하고 있다.

우선 지난해 낙안초 학생들의 학교 밖 활동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학생들은 지역의 호스텔을 찾아 가족야영캠프를 열었고, 광주·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예절교육 스테이를 할 수 있는 낙안 이화서당에서 1박2일 묵으며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지역 축제에 주체로서 참여하는 비중도 커졌다. 낙안 금산마을 축제인 꽃마차마을축제에서 공연을 하고 낙안읍성 민속문화 축제에서 지킴이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학교와 마을의 인적, 물적 자원과의 교류가 활발해졌다. 학생들은 두능마을 정원을 산책하며 자연을 접하고, 꿈지락 마을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또 하나의 학교로 받아들였다. 마을 주민이 강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배움을 전수하기도 했다. 너나들이 대표로 활동 중인 주민 박인규 씨는 취미로 익힌 목공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흔들 그네, 피크닉테이블 만드는 수업을 진행했다.

“마을학교 일원으로서 아이들과 지역의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인데,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다 보니 욕심이 생깁니다. 학교가 다 채워줄 수 없는 부분들을 마을이 현장 교육으로 채워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생겨요.”

박인규 대표는 은퇴 후 고향 낙안에 정착한 지 4년이 되었다. 그 사이 귀향할 땐 생각지도 못했던 호칭을 두 개나 얻게 됐다. 너나들이 대표, 그리고 ‘선배’이다. 마을학교 활동에 참여한 뒤로 낙안초 학생들이 그를 “선배”라고 부르며 따른다고.

배꽃 길 답사가 끝난 후 활동가들이 모여 앞으로의 활동을 토의했다. 활발한 소통은 낙안마을학교의 성장 비결이다.

학교와 마을이 가까워질수록 학부모들도 희망을 본다. 낙안초 학부모이자 너나들이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점석 씨는 아이들의 ‘행복’에 주목했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마을학교를 고민하며 마을은 더 풍요로워지고, 아이들도 더 행복해하는 것 같아요. 지역의 좋은 자원들을 경험하면서 마을에 대한 사랑이 커지는 것 같고요.” 그는, 생업에 치이고 농사일이 바쁘면 돌봄에 공백이 생기곤 하는데, 마을학교가 그 자리를 메꿔 줘 학부모로서 든든하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너나들이는 더 많은 아이들을 품을 계획이다. 낙안초 최형구 교사는 “유치원과 낙안중학교까지 모든 아이들이 마을학교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꽃 길 여정이 종점을 향해 갈 무렵, 너른 벌판이 펼쳐졌다. “올 가을, 저기 저 벌판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황금벌판 걷기대회’를 열어보려고 해요. 벌판 사이에 낙안천이 흐르는데, 1급수로 아주 깨끗하죠. 은어, 꺽지, 다슬기가 살아요. 허수아비를 만들어 직접 세워보기도 하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박 대표가 또 다른 계획을 설명했다. 사계절의 변화만큼 마을이 가진 교육 자원 역시 변화무쌍할 것이다.

너나들이의 올해 큰 목표는 ‘마을 주인되기 프로젝트’ 성공이다. 교육과정과 연계한 마을체험, 학년별 낙안 탐구 프로젝트 등이 계획되어 있다. 학생, 교사, 학부모, 주민들이 마을학교를 통해 주인으로 성장하자는 당찬 포부가 배꽃만큼 활짝 피어날 일만 남았다.

글 김우리 사진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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