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톺아보기] 화순, 작은학교 일주일 살기

특집

스물셋이 서른넷 된 화순 청풍초의 마술

[톺아보기] 화순, 작은학교에서 일주일 살기

 

학생 수가 60명 미만이면 작은학교로 분류된다. 화순 지역의 초·중 26개 학교 중 17곳이 작은학교다. 전체의 65%가 작은학교인 셈이다. 전남교육청은 작은학교 지원과 내실화를 위해 1교 1브랜드 특성화 프로그램, 농산어촌 유학 등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 학생의 적정규모 배치를 위한 제한적공동학구제*도 확대해 왔다. 하지만 학생 수 감소라는 시대의 큰 흐름을 타파하기는 쉽지 않다. *주소지 이전 없이 시나 읍 소재 큰 학교에서 면 지역 초·중학교로 전·입학이 가능한 제도

화순교육지원청은 작은학교의 매력을 읍 지역 학생들이 직접 경험하고, 나아가 실제 전입 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특별한 노력을 더했다. ‘오작교(오고 싶은 작은학교 만들기) 프로젝트’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작은학교 탐방’과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작은학교에서 일주일 살기’가 핵심 줄기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다.

자녀를 작은학교에 보내고픈 마음은 있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학부모들, 아이들에게 농촌의 학교를 경험하게 해주고픈 학부모들에게 반응이 좋다. 체험 기간이 일주일(5일)이라 큰 부담이 없고, 이동 수단도 지원되기 때문.

올해는 화순 읍내에 있는 4개 학교(화순초, 화순만연초, 화순제일초, 화순오성초)의 유치원생부터 초등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다. 면 단위 학교 4곳에서 이들의 체험을 반겼다. 화순초이서분교장·천태초·이양초·청풍초이다. 10월 30일 월요일,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한 화순 청풍초등학교를 찾아가보았다.

 

#1
새 친구가 11명이나 온다구요?!

 

“예윤이 오늘 엄청 신경썼네? 머리도 예쁘게 땋았네~”

“기뻐요. 학교 오는데 떨렸어요. 새로운 친구들 주려고 장미꽃도 접어 왔어요.”

평소보다 들뜬 얼굴을 한 아이들이 하나둘 학교에 도착한다. 전교생이 23명인 청풍초에 오늘 새로 올 학생들은 11명. 전교생 수의 절반이나 되는 새 친구들이 생기는 날을 아이들은 손꼽아 기다렸다. 환영 동영상도 직접 만들어 준비하고, 다도 교육이나 학교 행사 등 특별한 날에 입으려고 전교생이 함께 맞춘 고운 생활복으로 옷도 갈아입었다. 음, 이만하면 ‘환영 준비’ 완료!

설레기는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학생 수가 적다 보니 아이들 성비가 안 맞는 학년이 있어요. 6학년은 다섯 명인데 그중 한 명만 남자예요. 초등학교 6년 내내 또래 남자친구가 없는 셈이죠. 또 올해 입학생이 3명인데, 여학생은 한 명뿐이에요. 그 학생이 여자친구가 새로 온다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읍내 아이들은 이동 수단으로 지원되는 에듀택시를 타고 등교한다. 각자 집 앞으로 배정된 택시를 타고 약 20분간 달리니 청풍초에 금세 도착한다. 택시에서 내리자 열렬한 환영이 아이들을 반긴다. “어서 와! 우리 학교를 빛내줄 너희들을 환영해!”

쭈뼛쭈뼛. 아직은 학교가 낯선 아이들이 작은 눈으로 학교를 둘러본다. “우리 학교보다 작아요.” “낙엽도 있고 예뻐요.” “네? 전교생이 23명밖에 안 된다고요?” “우와, 운동장에 트램펄린이 있어요!” “학교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맘껏 뛰어놀고 자전거도 타고 싶어요.”

어색함도 잠시, 아이들의 얼굴이 어느새 기대감으로 가득 찬다. “그래, 우리 같이 자전거도 타고 트램펄린도 탈거야. 너희를 정말 너무너무 기다렸어. 5일간 재밌게 지내자!”

#2
나는 어울리는 법을
너는 새로운 놀이를

“딱 이렇게 한 반이면 좋겠네~” 3명이던 1학년 교실이 갑자기 8명이 됐다. 오늘 청풍초에 새로 온 아이들은 1학년 5명, 2학년 2명, 3학년 2명, 4학년 2명이다. 1학년이 가장 많다.

어색한 첫 만남! 이름표를 받고 새롭게 짝꿍을 정하고 하이파이브로 첫인사를 나눈다. “우리 5일간 잘 지내보자, 하이파이브!” 부끄러워 몸을 배배 꼬면서도 손바닥을 맞대니 웃음이 절로 피어난다.

청풍초 학생들에게 새로운 역할이 생겼다. “시안이, 도윤이는 새 친구들에게 교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세요. 이 친구들은 우리 학교에 처음 왔으니까, 우리 친구들이 새로운 친구들을 잘 챙겨야 해요. 약속!”

작은학교의 아이들은 개별 맞춤형 교육을 누릴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일상 속에서 사회적 역량을 키울 기회가 적다. ‘작은학교에서 일주일 살기’가 읍내 아이들에게는 평소에 해보지 못한 다양한 체험 활동을 경험하는 기회라면, 면 학교 아이들에게는 상호작용과 협동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이제 막 학교생활을 시작한 1학년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질서를 익히기 좋은 기회다.

청풍초의 하루는 ‘아침나눔 한 끼’로 시작된다. 아침밥을 제대로 못 먹고 오는 아이들이 많아 학교에서는 김밥, 떡, 시리얼 등 간편식을 준비해 제공한다. 오늘의 메뉴는 맛있는 기정떡과 우유. 학생들은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우유갑을 한 데 모은다.

“자, 예슬이가 친구들에게 우유갑 씻는 법을 알려주세요.” “오잉, 우유갑을 왜 씻어요?” 어리둥절한 아이들 앞에 예슬이가 씩씩하게 앞장을 선다. 청풍초 학생들은 다 먹은 우유갑을 그냥 버리지 않는다. 잘 씻어 말린 우유갑을 모아 청풍면사무소에서 휴지로 교환한다. 교환한 휴지는 학교에서 사용한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환경보호와 자원순환을 배우고 실천한다.

#3
계절을 느끼고
마을을 누비는 수업

든든히 배를 채운 뒤 바로 운동장 맨발 걷기가 이어진다. 새로운 학교가 어떻게 생겼는지 두 발바닥으로 느끼고, 건강도 챙기는 활동이다. 아직 어색한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청풍초 아이들은 익숙하게 수건을 챙기지만, 새로 온 친구들은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네? 양말을 왜 벗어요? 으으으~” “앗 차가워!” 선뜻 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주저하던 아이들이 친구와 선생님을 따라 마지못해 발을 딛는다. 그러다 몇 분 만에 운동장을 뛰어다닌다. 사뿐사뿐 걸었다가 까치발도 디뎠다가, 사각사각 낙엽을 밟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맨발 걷기가 우리 아이들은 익숙하지만, 읍내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지요. 우리 학교는 계절마다 자연과 어울려 놀아요. 봄에는 철쭉 가득 핀 화학산 정복도 하고, 가을에는 고구마 캐기도 해요. 지금은 수확 체험거리가 끝나서 아쉽지만, 대신 구석구석 마을을 돌아보며 함께 낙엽과 은행을 줍고 곤충도 잡아볼 거예요. 자전거도 함께 타고요. 우리 학교의 학생들은 1인 1자전거와 1인라인을 가지고 있거든요. 도시의 학생들에게 잊지 못할 일주일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4
여럿이 하니까 더 재미있어요!

연극 수업 시간. 1학년과 2학년이 모여 ‘대장 놀이’를 한다. 대장으로 뽑힌 친구의 행동을 따라 하는 놀이인데 사람이 많을수록 재밌다. 아이들은 동그랗게 둘러앉는다. 평소보다 두 배는 커다랗다.

아이들은 서로를 따라 하며 까르르 웃음을 터트린다. 몸으로 부딪치며 놀다 보니 아침의 어색함은 온데간데없다.

어느새 점심시간, 급식을 맛있게 먹은 아이들이 하나둘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다. 원래 축구를 좋아하는데 두 명뿐이라 아쉬웠다던 1학년 도윤이와 시안이는 새로 온 친구, 형들과 함께 신나게 공을 찬다. “여러 명이 하니까 더 재밌어요! 특히 형들이 축구를 너무 잘해요!” 함께 놀 여자친구가 생겨서 종일 웃음이 떠나지 않던 1학년 예슬이는 친구들 손을 꼭 잡고 놀이터로 향한다.

요즘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순번을 정해 운동장을 이용하는 학교가 많다. 학교 주변에 위험 요소도 있고, 현실적인 안전 문제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청풍초는 교실 밖으로 한 걸음 나서면 곧바로 운동장이 펼쳐져 언제든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뛰어놀 수 있다. 작은학교만의 장점이다.

#5
영어, 바둑, 피아노 …
방과후 교실까지 풍성

친구들 사귀랴, 선생님 적응하랴, 맨발로 운동장 누비랴, 여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보낸 1학년 아이들. 점심까지 배부르게 먹고 나니 연신 하품이 쏟아진다. 헝클어진 머리에 발그레한 볼이 누가 봐도 ‘한바탕 잘~ 논’ 모습이다.

오후부터는 피아노, 영어 회화, 바둑, 음악줄넘기, 바이올린, 동아리 활동 등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방과후 교실은 다른 학년과 합반일 때가 많아 언니, 오빠들과 어울릴 수 있어 좋다.

“우리 친구들, 오늘 하루 바빴죠? 오늘 재미있었어요?” 이수지 선생님의 물음에 도시 학생들이 말한다. “새로운 친구들이랑 놀아서 재밌었어요.” “맨발 걷기가 신기했어요.” “연극이 재밌었어요.” “교장실 가봐서 신기했어요.” “전학 오고 싶어요!”

청풍초는 아침 간편식부터 수업, 방과후 보육, 간식까지 아이들의 하루 일정을 세심하고 촘촘하게 챙긴다. 작은학교로의 전·입학을 알아보던 학부모들이 “청풍초 프로그램이 가장 알차더라”라며 문의해 오기도 한다고.

“면 지역 학생들은 학교가 아니면 이것저것 경험하기 힘들어요. 다른 교육시설이나 보육시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학교가 교육과 보육을 모두 챙겨야 하고요. 고민도 크고 할 일도 많지만 그만큼 보람 있어요. 사실 청풍초뿐 아니라 다른 농산어촌 작은학교 선생님들도 다 같은 마음일 거예요.” 이수지 선생님의 말이다.

‘오작교 프로젝트’로 2021년에는 7명, 2022년에는 14명, 올해는 11명의 도시 학생들이 청풍초를 찾았다.

양수열 교장은 “학생이 조금만 더 있어도 이렇게 분위기가 달라요. 오늘처럼 학교가 북적거리면 아이들이 얼마나 더 많이 재미난 일을 도모할 수 있겠어요. 짧은 기간이지만, 유학 온 아이들이 작은학교만의 장점을 충분히 누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참에 전학오면 더 좋고요.(하하) 읍까지 에듀택시도 지원한답니다”라며 눈빛을 반짝인다. 마치 오늘 새 친구를 맞이한 예슬이처럼.

글 노현서 사진 오종찬

저작권자 © 전남교육소식 함께꿈꾸는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