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전남의 해양물류❶ 대한민국의 해양력

 

바다는 전세계를 넘나드는 물류기반이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바다는 전세계를 넘나드는 물류기반이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북쪽은 휴전선으로 단절되고, 동서남해 지역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우리나라는 사실상 지리적으로 고립된 ‘섬나라’이다. 그래서 바다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교역로이다.

제4차 전국 항만기본계획(2021~2030)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총 31개의 무역항과 29개의 연안항이 있다. 국토의 규모에 비해 유독 무역항이 발달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수출·입 화물의 99.8%가 ‘바닷길’로 드나들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는 70% 수준이다. 바다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국가의 경제적 활력과 자립을 논할 수 없는 여건이다.

전라남도는 전국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보유하고 있다. 전남의 바다는 중국, 동남아, 태평양으로 넓게 열려 있다. 고려 전기까지 전라남도의 명칭은 ‘해양도’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목포해양대와 한국해양대(부산), 두 개의 국립해양대학교가 있다. 열거한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바다의 가능성’이 높은 전남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전남의 여건들을 감안하여 <함께 꿈꾸는 미래>는 ‘전남의 해양물류’를 연재한다.

물류 및 경제, 그리고 국력의 개념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볼 수 있는 ‘씨 파워 해양력(Sea Power)’, ‘랜드 파워 땅력(Land Power)’으로 첫 번째 연재를 시작한다. 이후 4회에 걸쳐 물류경제의 감각을 익힐 수 있는 몇 가지 주제들을 다룰 예정이다.

순천대 김현덕 교수(물류학과·한국항만경제학회 회장)의 도움과 감수로 ‘전남의 해양물류’를 연재한다.

 

물류의 고속도로, 강과 바다

 

1900년대 인천항구 모습 ⓒ문화재청
1900년대 인천항구 모습 ⓒ문화재청

“물자를 옮기는 방도로는 말이 수레보다 못하고, 수레는 배보다 못하다 …(중략)… 배로 오가는 장사꾼은 반드시 강과 바다가 서로 통한 곳에서 이득을 얻고 외상 거래도 한다.”

<택리지>(이중환)의 한 대목이다. 넓은 길이 없던 시절, 말이나 수레는 짐을 옮기는 ‘양’의 한계가 분명했다. 길의 표면이 울퉁불퉁해서 깨지기 쉬운 옹기나 도기 같은 물건들은 운반하기 어려웠으니 물류의 ‘질’에도 제약이 많았다.

기관차, 신작로, 아스팔트도로 등 근대적 발명품들이 등장하기 이전, 강과 바다는 물류의 고속도로였다. 여러 종류, 많은 양의 물건을 육로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운반할 수 있었다. 청자와 옹기를 빚었던 강진의 가마터가 바닷가에 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중환은 18세기 조선의 실학자였다. 대략 300년 전 그의 진단을 오늘날에 적용해도 유효하다. 약간의 변화가 있었고 스케일이 커졌을 뿐이다.

중세시대 바다는 국토를 광역으로 넘나드는 물류기반이었다. 강은 내륙의 구체적인 장소로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날랐다. 지금 바다는 전세계를 넘나드는 물류기반이다. 강의 역할은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 철도나 화물트럭 등이 대신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적 차원의 ‘복합물류’의 시대인데, 그 중심에 ‘해양’이 있다. 해양의 개념과 역사를 ‘힘(power)’의 관점, 그리고 세계사적 흐름에서 조망해보자.

 

몽골-대항해 시대-미국의 패권

 

영화  속 범선과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 리베이라 광장의 18세기 무렵 풍경화(출처ⓒ위키피디아)
영화 속 범선과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 리베이라 광장의 18세기 무렵 풍경화(출처ⓒ위키피디아)

미국의 전쟁사학자 알프레드 마한1840~1914은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1890)이라는 책에서 ‘해양력(Sea Power)’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마한은 “해상을 통해 각국과 교역할 수 있는 경제 능력과 교역로를 보호할 수 있는 해군력”을 강조하면서 “강대국이 되려면 일명 ‘씨 파워’를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단적인 예로 미국이 20세기 초강대국이 된 데에는 알프레드 마한이 강조한 ‘씨 파워’ 덕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에 동시에 배를 띄울 수 있으며, 강길을 이용한 내륙수운이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또한 군사 및 비군사적 측면에서 바다를 이용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적 역량을 갖춘 국가이다.

스페인 발렌시아 항구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스페인 발렌시아 항구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한편 영국의 지리학자 해퍼드 매킨더(1861~1947)는 “유럽의 역사는 유라시아 대륙, 즉 ‘랜드 파워’로부터 온 자극 및 압력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 규정한다. 아시아가 유럽에 미친 영향은 13세기경 몽골의 침략이 대표적이다. 몽골군은 말의 기동력, 곧 ‘랜드 파워’를 바탕으로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아시아의 ‘랜드 파워’에 밀리던 유럽은 바다에 눈을 돌려 대항해시대(15~17세기)를 열었다. 이 즈음부터 아시아는 유럽의 ‘씨 파워’에 밀리면서 식민지로 전락했다. 이른바 제국주의 시대(18~20세기)는, 말의 기동력에 의존하는 ‘랜드 파워’의 시대가 끝나고, 선박으로 대표되는 ‘씨 파워’ 시대의 부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씨 파워’

 

​​​​​​​바다자원을 캐고 있는 시추선(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바다자원을 캐고 있는 시추선(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바야흐로 21세기는 경제제국주의의 시대이다. 국가 간 경계를 구획 짓고, 천연자원의 보고이며, 세계물류의 70% 이상을 넘게 담당하는 바다의 중요성은 가늠조차 어려울만큼 크다. 오늘날 해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영역이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다. 해양력 구축 및 강화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이다.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의 중간에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의 경유지, 각축장이 되면서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대륙과 해상의 접점에 있는 특성을 잘 활용하여 ‘씨 파워+랜드 파워’를 구축하면 놀라운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북쪽이 막혀 ‘랜드 파워’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의 ‘씨 파워’는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2022년 기준 전국 항만 위치도 ⓒ항만청
2022년 기준 전국 항만 위치도 ⓒ항만청

전남 또한 우리의 씨 파워에 상당한 역량을 보태고 있다. 전국 12개의 신항만 중 2개(광양, 목포)를 갖추고 있으며, 전국 31개의 연안항 중 11개가 전남의 바다에 있다. 특히 광양항은 일반화물 물동량 국내 1위, 부산-인천에 이어 컨테이너 물동량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물류의 핵심 인프라다. 뿐만 아니라 전시에 부산항을 대체할 보급기지(Two Port) 정책로서 안보 기여도도 높다. 다음호부터 해양, 물류, 경제 등의 관점에서 전남의 항만과 바다의 역할을 하나 둘씩 살펴보자.

이정우 자문 김현덕(순천대 물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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