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지질여행❺ 무등산

숱한 좌절, 눈부신 승리의 전시장

전남 지질여행❺ 무등산

 

1980년 5월 18일 분화한 미국 세인트 헬렌스 화산(ⓒ위키피디아)과 화순 백아산에서 본 무등산
1980년 5월 18일 분화한 미국 세인트 헬렌스 화산(ⓒ위키피디아)과 화순 백아산에서 본 무등산

1980년 5월 18일, 태평양 저편 미국 북서부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폭발했다. 그 위력이 어마어마해 분출 기둥이 상공으로 24㎞나 치솟았다. 그날, 태평양 이편의 도시 광주에서 5·18민중항쟁이 일어났다. 부당하고 잔인한 국가폭력에 맞선 시민들의 정의로운 대폭발이었다. 5·18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끼친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열흘간의 항쟁이 무참히 진압된 직후, 광주의 한 신문사는 무등산 사진을 1면에 크게 싣고,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라는 장문의 시를 게재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의 탄압 때문에 참상을 보도하지 못했던 울분과 슬픔의 표시였다. 사진 속 무등산은 광주를 목격한 눈이었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푸른 손길이었다.

 

무등산 반전 과거의 단서

무등산은 광주와 화순, 담양에 걸쳐있다.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워 ‘어머니의 품’으로 비유되거나, 이름에 빗대어 등급이 없는 ‘평등한 산無等’으로 풀이되곤 한다. 그런데 약 8500만 년 전의 무등산 일대는 1980년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처럼 맹렬하게 폭발하는 화산이었다.

무등산 정상부에는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기둥들이 서 있다. 지질학적 이름이 주상절리columnar joint다. 이들이 없었다면 무등산은 우리나라의 숱한 산들처럼 융기와 침식으로 생겨난 산지지형 정도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주상절리는 화산 폭발 때 용암이나 화산재가 굳으면서 생성되는 경관이다. 즉 과거 그 땅이 뜨거운 불의 지대였다는 증거가 된다. 웅크린 한 마리 순한 동물 같은 무등산이 알고 보니 전설적인 검객이었달까. 이제는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아가는 고수, 그의 과거를 알려주는 단서가 바로 주상절리인 셈이다.

무등산 정상부에는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라 불리는 거대한 주상절리들이 서 있다. 사진은 광석대와 그 사이의 암자 규봉암 ⓒ신병문
무등산 정상부에는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라 불리는 거대한 주상절리들이 서 있다. 사진은 광석대와 그 사이의 암자 규봉암 ⓒ신병문

고생대까지 한반도는 잠잠한 대륙이었다. 얕은 바다에 잠겼다가 다시 육지가 된 지역도 있다. 중생대가 되자 한반도는 화산과 지진으로 들썩거렸다. 지금의 일본처럼, 한반도는 두 개의 지각판이 부딪치는 지대에 위치해 땅이 불안정했던 것이다. 지하의 마그마는 화산으로 폭발하거나, 지표 근처까지 올라와 화강암으로 굳었다. 우리나라 곳곳에 흔한 화강암은 뜨거웠던 중생대의 흔적이다.

중생대의 말기인 백악기의 한반도는 불의 시대의 정점이었다. 무등산 화산활동도 이때의 일이다. 화산은 시간 차를 두고 세 번가량 폭발했다. 그 사이사이에도 수차례 마그마가 관입했다가 지하에서 굳었다. 화산 폭발 때 용암과 화산재는 무등산을 중심으로 인근 화순, 담양 쪽으로 흘러내리고 쌓였다. 이처럼 무등산 화산체火山體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됐다.

무등산 입석대
무등산 입석대

화산이 폭발할 때는 용암을 비롯해 주변 암석과 재 등 온갖 화산쇄설물이 분출한다. 대량으로 쌓인 무등산 분출물의 일부가 식으면서 5~7각형 모양의 수직 기둥이 형성됐다. 왜 그런 모양일까. 자연 상태에서 물질이 수축하며 굳을 때 가장 안정적인 결정체 모양이 육각형이라고 한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긴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주변 토양층이 풍화되고 침식되면서 약 11만5천 년 전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학계는 처음에 무등산 주상절리가 용암이 굳은 것으로 보았다. 2010년대, 무등산 지질공원 등재를 위한 본격 연구가 진행됐다. 이때 주상절리를 이루는 성분이 용암이 아닌 화산재가 쌓여 굳은 응회암임을 알아냈다. 화순 고인돌공원의 고인돌이나 무등산 서석대, 입석대, 광석대는 같은 시대 같은 원리로 생성된 것이다. *<함께 꿈꾸는 미래> 6월호 참조

 

주상절리와 너덜겅, 치열한 생애의 훈장

 

주상절리가 풍화돼 형성된 덕산너덜
주상절리가 풍화돼 형성된 덕산너덜

우리나라의 주상절리 지형은 수십 곳에 이른다. 유명한 화산섬인 제주도와 울릉도, 용암이 넓은 대지를 흘러간 철원·포천 한탄강 일대, 포항·울산 등에 많다. 이런 지역의 주상절리는 모두 신생대 때 만들어졌다. 제주도 중문해안에 검은 현무암질 용암이 굳어서 생성된 주상절리가 그 예시다.

국내 최대 규모인 무등산 주상절리는 중생대 말기에 태어났다. 신생대 화산은 풍화와 침식을 아직 많이 겪지 않아, 화산체 모양이 형성 당시 모습대로 남아있다.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 백두산 천지, 울릉도 성인봉 등이다. 사람으로 치면 청년기인 한라산·백두산과 달리 무등산은 중년의 시기를 살고 있다. 얼굴에 약간의 주름이 지고 적당히 나잇살이 찐, 산전수전을 겪으며 성격이 둥글둥글해진 사람과 같다. 긴 세월 풍화와 침식을 겪었기에 용암이 폭발한 화구가 정확히 어딘지, 마그마가 분출한 후 비어버린 지하의 ‘마그마 방’은 어디인지 등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주상절리와 너덜겅이 한눈에 들어오는 무등산 정상부
주상절리와 너덜겅이 한눈에 들어오는 무등산 정상부

무등산은 주상절리 경관으로 사람들을 매혹한다. 보통 주상절리는 해안가에 많은데, 무등산은 해발 800m가 넘는 산중에 있다. 규모 역시 세계적 수준이다. 지질학적 가치가 큰 무등산은 2018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2022년 9월 재인증 심사를 위해 무등산을 찾은 각국 심사위원들은 주상절리의 위용에 감탄했다.

산전수전 무등산이 품은 훈장이 또 있다. 신생대 4기가 되어 지구는 빙하기를 겪었다. 고위도 지역은 사철 내내 땅이 얼어붙은 빙하지대였고, 한반도는 땅이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빙하 ‘주변부’ 지대였다. 무등산 주상절리는 긴 세월 겨울에 얼고 여름에 녹기를 반복하면서 마침내 일부가 쪼개지고 무너져 내렸다. 집채만한 바위들이 흩어져있는 ‘너덜겅’ 경관이다. 너덜겅은 돌이 많이 흩어진 비탈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무등산 덕산너덜, 지공너덜 등은 멀리서도 잘 보일 만큼 면적이 광활하다. 이는 풍화되기 전의 주상절리 역시 규모가 컸음을 말해준다.

주상절리와 너덜겅은 무등산이 불의 시대 중생대, 그리고 얼음의 시대 신생대 빙하기에 겪은 극적 경험을 증언한다. 한반도 지질사의 큰 사건인 무등산은 광주라는 대도시를 품고 있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과 인구 140만 대도시의 조합은 한국에서 흔치 않다. 그리고 광주와 전남은 한국 민주주의 운동의 이정표가 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무등산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 도시의 인간사를 포개어 생각하게 된다. 넓게 무너진 너덜겅은 숱한 좌절의 역사처럼, 우뚝 선 주상절리는 눈부신 승리의 역사처럼 보인다. 산도 사람도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냈다.

글·사진 이혜영 자문 강성열(지리학박사·광양백운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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