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교에서 본교 된 지 10년, 순천송산초 이야기

학교와 마을이 행복하게 어우러지는 공동체, 지역에 발 딛고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학생…. 전남교육이 꿈꾸는 모습이다. 순천의 한 농촌마을에 그 꿈이 현실로 펼쳐지고 있다. 별량면 송기리 구기마을에 있는 송산초등학교다.
여느 농촌학교처럼, 과거 송산초도 학생이 급감해 분교가 됐고 폐교 위기까지 갔다. 2011년, 송산초는 오히려 분교에서 본교가 됐다. 1982년 이후 지금까지 전남에선 학교 833곳이 문을 닫았다. 학생 수가 늘어 본교로 격상된 경우*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2005년 영광 묘량중앙초, 주민 요청으로 본교 승격. 2015년 해남 서정초, 학생 수 증가로 본교 승격)
2021년 현재 송산초 학생 수는 108명. 입학 수요가 많아도 늘 100여 명 규모의 작은 학교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1월엔 한바탕 크게, 연달아 ‘축제들’을 벌였다. 흥미로운 사건들이 수시로 벌어지는 학교지만 이번엔 판이 컸다. 뉴스에 보도되고, 순천, 여수 등 지역사회의 호응이 컸다. 본교가 된 지 만 10년, 송산초는 매일 새로운 기적을 쓰고 있다. 이 작은 농촌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완성된 ‘송산 사랑의 돈까스’를 선보이는 학부모들. 왼쪽부터 서영화, 정문희, 김선화 씨
완성된 ‘송산 사랑의 돈까스’를 선보이는 학부모들. 왼쪽부터 서영화, 정문희, 김선화 씨

 

 

# 송산초 학생이 알리는 여순사건

지난 11월 5일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 송산초 5~6학년 학생들이 여순사건을 다룬 연극 <잊을 수 없는 과거>를 공연했다. 아이들답게 진지하고도 경쾌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눈시울을 적시다가도 웃음을 빵 터뜨렸고, 막이 내리자 어린 배우들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여수·순천10·19사건의 희생자 유가족과 후손들이었다.

여순사건 발발 1년 후인 1949년 가을, 정부 진압군은 봉기군 협력세력을 색출한다며 전남 동부를 총칼로 유린했다. 추석을 맞은 순천 낙안면 신전마을에도 비극이 닥쳤다. ‘산사람들’의 심부름을 한 어린 소년에게 밥 을 먹이고, 옷을 줬다는 이유로 주민 22명이 한날한시에 죽임을 당했다. 이 사건을 송산초 학생들이 연극으로 만든 것. 어린이들의 시선으로 재현된 신전마을 이야기는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모두 연극이 처음이었지만 여름부터 열심히 임했다. “힘들어~ 힘들어~”를 입에 달고 연습했다. 정식 무대에 올라보니 긴장감이 밀려왔다. 공연 후 아이들이 달라졌다. 대사 없는 역할을 원했던 한 학생은 “내년엔 저 역할 해보고 싶다, 연기학원이라도 다니겠다”로 바뀌었다. 자체평가에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여순사건으로 시작했지만 다른 역사들도 다뤄보고 싶다.” “진심을 다해서 한다는 게 뭔지를 배웠다, 안 그러면 무대에서 다 티가 나니까!”

 

프로젝트를 이끈 5~6학년 담임교사들은 앞으로도 이 연극을 매년 이어가고 싶다. 5학년은 첫해의 경험을 녹여 멋진 선배 배우로 거듭날 테다. ‘극단1949’라는 이름도 학생들이 투표로 정했다.

아이들은 역사를 두루 공부하며 ‘여순사건은 1948년인데 왜 극단 이름은 1949인가’ 같은 질문에도 주저 없이 답하게 된다. 

 

학생들이 선보인 가능성에 화답하듯 순천교육지원청, 순천시,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 등 여러 기관들이 연극을 지원했다. 지역사회에 넘치는 공감의 물결, 첫 물꼬는 소설집 <잊을 수 없는 과거>가 텄다. 2년 전 송산초 학생들이 출간한 연작소설집이다.

 

송산초 5~6학년 학생들이 여순항쟁을 다룬 연극 <잊을 수 없는 과거>를 공연했다. 2019년 6학년 학생들이 창작한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소설과 연극의 배경이 된 순천 낙안면 신전마을 유가족들이 공연을 관람했다.

2019년 봄, 6학년 담임인 이만옥 교사는 학교 시설 관리자인 강질용 씨로부터 우연히 고향 이야기를 들었다. 바로 신전마을 민간인 학살이었다. 충격을 받은 이만옥 교사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과 이 역사를 공부하기로 했다. 국어와 사회를 통합해 여순사건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 6학년들은 신전마을을 답사하고 주민들을 인터뷰했다. 피해자 유가족의 재심재판도 방청했다. 최종목표는 소설 쓰기였다. 13명 전원이 참여해 팀별로 혹은 단독으로 5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신전마을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태로 되살아났다.

“여순 공부와 소설 쓰기가 각각 만만치 않은데 둘을 병행하느라 학생들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손에 쥐고, 출판기념회까지 치르고 나니 힘든 건 잊고 뿌듯해했어요. 몰입해서 긴 프로젝트를 처음 해본 거니까요.” 이 교사의 회고다.

소설집이 출간되자 순천과 여수 지역사회의 격려가 잇따랐다. 그때의 6학년들은 지금은 대부분 별량중 2학년에 다니고 있다. 출간 후 2년이 흘렀고, 지난 여름엔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를 기념해 후배들은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었다. 선배들은 소설 출간 때 받은 기부금의 일부를 연극 조명 설비에 지원했다.

송산초 6학년의 ‘주제 중심 교과통합 수업’은 2019년 여순사건 프로젝트에 이어, 2020년에는 기후위기, 노동인권을 다뤘다. 올해엔 5학년과 함께 별량정책마켓을 추진했다. ‘별량면의 예산을 어떻게 쓸까’라는 주제로 별량면 8개 마을을 모두 답사하며 주민과 기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축사 갈등, 고속도로 소음 등 농촌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프로젝트는 인근 혁신학교인 별량초, 별량중과 함께했다.

학교가 있는 마을부터 별량면 전체, 이웃 낙안면, 멀리 여수까지…. 깊이 있게 살피는 지역공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태도, 긴 호흡으로 탐구하는 주제별 학습,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건강한 전남인으로, 세계시민으로 성큼 자라고 있다.

 

 

# 학생, 교직원, 학부모… 서로를 세우다

송산초(당시는 ‘별량초 송산분교’)는 2007년 폐교 위기에 처했다가 새로운 공동체형 학교로 거듭났다. 순천시내 학부모와 교사들이 ‘지역밀착형 작은학교’를 꾸리기로 하고 송산초를 발굴해 의기투합한 것.

학교가 활기를 띠면서 시내 학생들과 별량면 농촌학생들이 점점 더 찾아들었다. 2010년에는 무지개학교(전남형 혁신학교)로 지정돼 더욱 탄력을 받았다. 학부모들은 자비로 통학버스를 마련해 시내 학생들을 통학시켰다. 마침내 송산초는 본교로 승격됐다. 교육주체들의 활발한 소통은 ‘송산초 시즌2’의 특징이자 학교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시·읍 지역 학생이 면 지역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제한적 공동학구제가 시행되면서 시내 학생들이 송산초로 전학 오기가 더 쉬워졌다. 이제 통학버스 운영도 전남교육청의 지원을 받고 있다. 올해는 전남 미래형혁신학교로 지정됐다. 쿵짝쿵짝, 작은학교의 힘찬 행보에 전남교육청도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지리산 종주 체험을 되살린 트리하우스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학부모들
지리산 종주 체험을 되살린 트리하우스 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학부모들

2학년 담임인 정용재 교사는 “우리 학교는 교육 3주체인 학생, 교직원, 학부모가 균형 있게 이끌어간다. 상호작용이 활발하고, 합의내용이 학교 운영에 잘 반영된다”고 소개한다. 2월에 교직원과 학부모가 모이는 ‘시안토론’, 연 5회 교직원-학생-학부모가 모이는 총회 ‘송산한자리모임’ 등에 학부모 참여율이 매우 높다. 학교는 행사를 평일 저녁 7시나 휴일에 잡아 학부모들이 편하게 참여할 수 있게 한다. “휴일이어도 학생 참여 행사는 수업일수에 포함되니 교사 부담도 적다”고 정용재 교사가 덧붙인다. 지속가능하고 내실있는 행사를 위해 교육주체 모두에게 부담을 줄여준다.

이렇다보니 교육과정에는 구성원들의 뜻이 최대한 반영된다. 덕분에 교사들은 자신감 있게 수업을 하고, 학생들도 신나게 공부할 수 있다. 특히 학생 스스로 주도하는 자치활동이 많다. 고치기·생일파티·공간혁신·도서관운영 등 9개 분과활동, 목공부·음식부·농사부·영상제작부 등 노작을 중시하는 프로젝트 등이 진행되고 있다. 가령 고치기분과 학생들은 교정을 매의 눈으로 살피며 부실한 곳을 찾아내고, 생일파티분과는 학생들의 생일파티를 창의적으로 기획한다. 자치활동은 무학년제로 운영돼 여러 학년이 어울린다. 회장, 반장 같은 위계는 따로 없고 각 분과에서 고학년들이 ‘이끔이’로 활동한다. 

 

도전활동 내용을 학교 공간혁신 테마로 녹여냈다. 무인도체험을 본 딴 동굴놀이터를 설명하고 있는 박노훈 교장
도전활동 내용을 학교 공간혁신 테마로 녹여냈다. 무인도체험을 본 딴 동굴놀이터를 설명하고 있는 박노훈 교장

학년별 도전활동은 학생들이 고대하는 큰 행사 중 하나. 지리산둘레길 1박2일, 무인도 체험 2박3일, 영산강 자전거 종주, 지리산 종주 등이다. 도전활동은 학교 공간혁신사업의 테마로도 반영됐다. 학부모들도 자원봉사를 하러 갈 만큼 인기 프로그램이다. 평상시 학부모대표회는 봉사분과, 교육분과, 차량분과로 나누어 활동한다. 교육분과는 학교 신문을 만들고, 차량분과는 통학버스 노선을 짜고 관리한다.

놀빛송산마을학교와 진행한 농사 체험.
벼 화분을 만들고 관찰일지를 쓴 2학년생들

놀면서 빛나는 ‘놀빛송산마을학교’도 송산공동체의 한 축이다. 마을 주민들, 학부모들이 조직한 이 마을학교는 송산초와 함께 지역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학년들은 올봄 별량면 농부들로부터 벼의 생장과정을 배우고, 벼 화분을 키웠다. 매월 생태놀이 수업 때는 인근 산에 오르고 생태지도를 그리고, 냇가에서 물놀이도 한다. 학생들이 별량면의 생태와 마을살이를 흠뻑 체험하는 시간이다.

여기까지, 지면한계상 간략히 소개한 송산공동체의 일상이다. 학교 안팎으로 배움거리가 가득하니 순천시내에서 아예 이사를 오는 가정들도 있다. 학부모 정문희 씨는 아들을 입학시킨 직후 학교 옆으로 이사왔다. 이주 6년째, 나름 농촌생활의 감을 익힌 그는 지금 놀빛송산마을학교 생태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교 정문 앞에는 구기마을 경로당이 있다. 마을에 활기가 돌고 아이들 재롱도 볼 수 있으니 어르신들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학교 정문과 마주보는 구기마을회관
학교 정문과 마주보는 구기마을회관

 

 

# 마침내 ‘2021 송산 사랑의 돈까스’

송산공동체의 내공은 지난 11월 20일 열린 ‘송산돈까스나눔’에서 만개했다. 학부모대표회 봉사분과는 매년 11월 ‘사랑의 돈까스’를 500여 팩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해왔다. 그런데 올해, 사건이 일어났다. 4학년 학생의 아버지가 사고를 당해 큰 화상을 입은 것. 수차례 수술에, 수 천 만원의 비용이 예상됐지만 역부족이었다. 4학년 담임이 이 비보를 학교에 전하자 순식간에 송산공동체가 뭉쳤다. 돈까스를 대량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치료비에 보태기로 했다. 

 

‘송산 사랑의 돈까스’ 행사. 간식부스를 꾸린 정유화 교감(오른쪽)과 학부모
‘송산 사랑의 돈까스’ 행사. 간식부스를 꾸린 정유화 교감(오른쪽)과 학부모
돈까스를 주문해준 순천 사람들
돈까스를 주문해준 순천 사람들

봉사분과장 정문희 씨의 설명이다. “최대 2,000팩까지 만들기로 하고 홍보를 시작했는데, 3일 만에 2,500팩 주문이 들어왔어요. 접수를 서둘러 마감했죠. 10년 넘게 해왔지만 과연 우리가 이 분량을 해낼 수 있을까, 긴장됐어요.” 봉사분과는 전날 재료 준비를 마쳐놓고 토요일을 맞이했다. 아침부터 송산식구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90명이 넘었다. 졸업생, 졸업생의 학부모도 상당수였다. 인근 별량중 교사들도 왔다.

“자~ 시작해 봅시다!” 오전 10시, 봉사분과장의 외침과 함께 제작라인이 가동됐다. 밀가루, 계란물, 젖은 빵가루, 마른 빵가루를 순서대로 묻히고 포장하고, 쉼없이 재료를 채우고…. 5개씩 담은 팩에는 ‘송산 사랑의 돈까스’라는 스티커를 붙였다. 주문한 이들은 송산초 재학생과 졸업생 가정들을 비롯해 삼산동부녀회, 별량면주민자치회, 순천시의회, 순천풀뿌리지원센터, 순천문화예술재단 등이었다. 수많은 순천사람들이 마음을 나눴다.

 

돈까스 2,500팩을 만들기 위해 뭉친 송산초 사람들
돈까스 2,500팩을 만들기 위해 뭉친 송산초 사람들
아들 서재원 군과 아버지 서신석 씨는 ‘송산초 선·후배’
아들 서재원 군과 아버지 서신석 씨는 ‘송산초 선·후배’

지역 로컬푸드는 무항생제 돼지고기를 저렴하게 제공했다. 정유화 교감의 남편 김정학 씨는 간식부스 운영을 담당했다. 원두커피는 이만옥 교사의 지인이 운영하는 카페 ‘동행’이, 샌드위치는 재학생 한율이네가 협찬했다. 박노훈 교장과 아내 최순금 씨도 분주히 움직였다. 교감의 순천 지인들은 배달팀을 맡아, 돈까스를 싣고 시내 각처로 배달을 나갔다. 방송부원인 4학년 정하랑 학생은 경쾌한 음악을 틀면서 어른들의 작업장에 활기를 더했다. 교장부터 교사, 학부모, 재학생, 졸업생, 주민 모두 협업에 익숙하니, 위계 없이도 톱니바퀴가 착착 돌아갔다.

졸업생 서재원(별량중2) 군은 아버지와 함께 왔다. 재원이네는 3대가 모두 송산초 졸업생이다. 아버지 서신석 씨는 “나 어릴 땐 학생 수가 1천 명까지 갔다. 근처 북초교도 있었는데 폐교되고, 송산초가 남아서 이렇게 활기차니 정말 뿌듯하다. 학교에서 가장 오랜 건물이 저 ‘독石건물’이었다”고 가리켰다.

돌벽의 연륜이 느껴지는 그 다목적실에서 사람들이 온종일 돈까스를 만들었다. 송산돈까스는 위기에 처한 한 가정을 구하고, 순천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온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송산공동체가 또 다른 10년, 아니 100년의 역사를 그 돌벽에 오롯이 새겨 가기를.

글 이혜영  사진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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