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 ‘야생조류 조례’ 공동발의한 노안남초 5·6학년

함께 꿈 ❶

“‌새들에게 비행의 자유를” 법까지 만든 당찬 학생들
나주시 ‘야생조류 조례’ 공동발의한 노안남초 5·6학년
 

나주시의원과 공동 발의, 본회의 통과
국립생태원 등 도움 받아 조례안 마련

학교에 들어서니 새 그림이 그려진 깃발이 태극기와 나란히 펄럭이고 있다. 깃발 속 새는 노안남초등학교를 상징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새이다. 어느 학교나 교목校木, 교화校花는 있다. 학교의 상징 중 하나로 교조校鳥를 채택한 경우는 드물다. 붉은머리오목눈이가 오래전부터 노안남초를 대표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즈음 교조의 지위를 얻었다.

이 조례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야생조류가 건축물의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 등의 시설물에 충돌하여 부상을 입거나 폐사하는 것을 줄이고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12월 29일 제정·공포된 「나주시 야생조류 충돌 저감 및 예방 조례」 제1조(목적)이다. 많은 지자체들에 유사한 조례가 있지만 나주시 조례는 특별하다. 노안남초 5~6학년(2023년 기준) 학생들이 주도하여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노안남초 학생들과 유새영 선생님, 그리고 황광민 시의원이 공동으로 발의해 본회의를 통과시킨 조례이다.

누구나 조례 관련 의견을 낼 수 있지만, 공식적인 절차는 지자체 의회 의원이 진행시켜야 한다. 학생들은 청소년 의회교실을 열어 조례안 초안을 구상했다. 이어 2023년 7월 국립생태원 김영준 동물실장, 김윤전 연구원의 자문을 받아 조례안 최종안을 준비했다. 이 최종안이 황 의원에게 전달되었다. 황 의원은 곧바로 간담회를 진행했고(11월), 본회의에 상정(12월 19일)하여 통과시켰다.

황 의원은 “학생들이 완성도가 높은 조례안을 가지고 왔다. 상위 법령이라든가 다른 조례와의 관계 등을 검토해 조금 고쳤다. 새를 통해 생태환경 전반에 대한 관심,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로도 이어질 수 있어 의미가 큰 활동이라 생각한다. 어른들이 놓치고 있었던 사안을 아이들이 얘기해줘서 고맙고, 그래서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노안남초, 2021년부터 야생조류 모니터링
투명방음벽 문제점 발견해 충돌방지 조치

노안남초 학생들이 야생조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2021년이다. 학생들이 생태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도운 유새영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학생들은 두 해에 걸쳐 투명방음벽에 부딪혀 죽은 야생조류들을 모니터링했다. 특히 가장 심각한 곳으로 추정되는 공산면 상방리 복사초리삼거리의 방음벽(높이 2m, 길이 252m)을 집중적으로 관찰했다.

충돌이 확인된 곳에 스티커를 붙이고 사진을 찍는 방식으로 꾸준히 살폈다. 사체의 숫자를 세는 것으로는 정확한 통계를 내기가 어렵다. 새의 사체는 청소차가 수거해가거나 고양이가 먹어버리기도 해서다. 새가 충돌하면 표면에 분명한 흔적을 남긴다. 거기에 스티커를 붙이면 중복 집계를 피할 수 있다. 스티커는 아이들이 직접 그려 제작했다.

조사 결과 2021년 10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이곳 방음벽에 충돌해 죽은 새는 총 142마리에 달했다. 죽은 종은 텃새인 붉은머리오목눈이, 멧비둘기, 물까치, 박새, 방울새, 참새, 쇠딱따구리, 여름 철새인 되지빠귀, 물총새,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솔부엉이, 그리고 방울새 등으로 확인됐다. 노안남초 학생들은 5월 2일과 16일 두 차례 걸쳐 방음벽에 충돌해 사망한 새들의 사체를 수습하고 추모의식을 가졌다.

같은 해 6월에는 충돌 저감조치를 취했다. 노안남초 5~6학년 학생 29명과 교사, 조류충돌방지협회 회원, 학부모 및 시민 자원봉사자 등 총 76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방음벽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한 뒤 방음벽 패널 윗줄과 아랫줄에 10㎝ 간격으로 기준점을 찍은 뒤, 조류 충돌방지 테이프를 수직으로 이어 부착했다. 많게는 한 달에 30마리가 넘는 사체가 발견되었는데 저감조치를 한 이후부터는 한 두 마리 정도만 충돌한 것으로 조사됐다.

분명한 성과를 확인한 만큼 학생들은 저감조치 확대의 필요성을 느꼈다. 복사초리삼거리 외에도 조류 충돌이 심각한 방음벽은 더 있었다. 그 모든 곳에 학생들이 스티커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의 노력을 넘어선 공공의 조치가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한 해 뒤 조례안 제정 작업에 착수했고, 통과시켰다. 조례의 마지막 조항은 아래와 같다.

제7조(교육 및 홍보 등) 시장은 야생조류 충돌 저감 및 예방 시책에 대한 공감대 확산을 위하여 관내 초·중·고 학생 및 시민을 대상으로 교육·홍보 등을 실시하고, 제4조에 따른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다.

전라남도 22개 시·군 중 관련 조례가 마련된 곳은 여수와 순천 두 곳이다. 노안남초 학생들의 헌신적인 활동, 체계적인 노력으로 도내 세 번째 조례가 나주시에서 탄생했다. 조례 제정을 계기로 노안남초는 우리 땅의 텃새인 붉은머리오목눈이를 지난해 연말에 교조로 제안했다. 그림은 올해 6학년인 손우리 학생이 그렸다. 최고 의결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조 제안을 흔쾌히 승인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활동하면서 새들이 어떻게 죽는 줄 알게 되었다. 새들에게 관심을 가지다 보니 야생동물이나 고양이가 차에 치여서 죽는 것도 더 안타깝게 보였다. 야생동물을 지키는 활동들을 앞으로도 많이 하고 싶다. 지역의 어른들도 같이 참여해주면 좋겠다.”
6학년 김연우

 

“‌현장에 가서 관찰하고 기록한 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도 하고 있다. 활동하면서 새가 더 예쁘게 보이고, 새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다. 생태환경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겠다.”
6학년 유휘선

“‌아이들이 새를 살리는 과정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식과 생태감수성을 키울 수 있길 바랐다. 우리 곁의 가까운 곳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 하더라도 보는 눈이 생겨야 이해하고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례를 만들면서, 문제의식을 갖는 것부터 제도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까지 전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담임교사 유새영

글 김은태 사진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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