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전남교육가족을 소개합니다

4️⃣

 

“‌라이벌은 유튜브! 도서관은 재밌는 곳”

장성 문향고 장효경 사서교사

 

“01:00 opening-

유독 보름달이 크게 떠올라 밤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오늘, 문향 FM입니다. 열두 시 자정이 되자마자 수많은 사연이 유성우처럼 이곳으로 쏟아져 내렸는데요. 오늘은 왜인지 아주 긴 자장가를 들으며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듭니다. 오늘의 사연입니다.”

장성 문향고등학교 학생들이 펴낸 에세이집 <오늘의 사연입니다>(2022) 책날개에 적힌 구절이다. 밤 한 시에 시작된 이야기는 새벽까지 이어진다. 세 시, 네 시, 다섯 시…. 밤을 꼬박 지새우고 아침 6시, 동틀 무렵 클로징 멘트가 흘러나온다. 도서 <긴긴 밤>(루리 저)을 함께 읽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각자의 이야기를 심야 라디오 콘셉트로 엮었다. 기획, 편집 모두 학생들의 아이디어다.

문향고는 2020년부터 매년 두 권의 책을 펴냈다. 한 해 동안 진행한 독서토론 수업과 독서동아리 활동의 결과물이다. 2020년에는 <아, 존재 자체로 나는 빛나>와 <감정 팔레트>, 2021년에는 <감성구역 161호>, <Death or Change>, 2022년에는 <오늘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를 펴냈다. 2023년에는 <Personal word>, <또 다른> 책을 냈다. 학생들은 매년 12월 말에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장효경 사서교사는 일련의 과정들을 기획하고, 학생들을 지원한다.

“2020년 문향고로 왔어요. 그전까지는 사서교사가 없었어요. 도서관에 오니 문을 막고 있는 커다란 서가들이 먼저 눈에 띄었어요. 출입문 세 곳 중 한 곳만 사용하느라 그랬다는데, 그 하나마저 이중 출입문이더라고요. 그야말로 철통보안이었던 거죠.(하하) 도서관은 언제나,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어야 해요. 문을 막고 있던 책장 위치를 바꿔 출입문 세 군데를 활짝 열었어요.”

전교생이 한 해 책 한 권 다함께 읽기
토론하고 글 쓰며 깊이 더해가

장효경 교사는 한 해에 책 한 권을 읽는 ‘한 책 읽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책을 한 권만 읽는다니, 너무 적지 않나 싶었지만, 1~3학년이 함께 꼼꼼히, 몇 달에 걸쳐 제대로 읽는다. 다 읽고 나면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비경쟁 토론의 장을 연다. 올해의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30개의 주제를 뽑아 30개의 원탁을 꾸렸다. 한 주제당 15분씩 3번, 관심 있는 원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선후배, 친구 할 것 없이 열띤 토론을 펼쳤다. 전교생이 같은 책을 읽었기 때문에 진행이 어색하지 않았다.

“비경쟁 토론은 정답이 없어요. 내가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의식을 느끼는 친구와 이야기하며 사고의 확장을 경험해요. 반대로 경쟁 토론도 해요. 그때는 상대의 논리를 파고드는 법을 배우죠. 학생들이 ‘책 한 권으로 이렇게 여러 이야기가 가능하구나’라며 놀라요. 단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고, 표현하고, 나누면서 진정한 독자가 되어보는 거죠.”

장효경 교사는 학생들이 일상 곳곳에서 책을 접하도록 돕는다. 책을 읽는 일이 도서관 안에 갇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날이 좋으면 책을 들고 운동장에 나간다. 가까운 광주에 있는 매력적인 독립서점을 탐방하고, 책방지기의 철학을 인터뷰한다. 지역 도서관과 협력해 다양한 인문학 강좌도 연다. 작년에는 이슬아 작가가 학생들의 에세이를 사례로 글쓰기 방법을 지도해주었고, 올해 5월에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동물농장> 속의 법과 우리 사회의 법을 생생하게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확장되는지 느꼈으면 해요. 그래서 독서 활동과 외부 활동들을 촘촘히 연결하고요. 사서교사라고 하면 도서관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세요. 실제 사서교사들은 바쁘고 활발하답니다.(하하)”

문향고 학생들, 에세이 책 매년 2권 내
책 표지부터 삽화까지 직접 그려

경험이 다양하니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절로 샘솟을 수밖에. 글감이 모이면 편집은 미술 수업과 연계해 학생들이 책 표지와 삽화를 모두 직접 그린다. 1년 간의 숙성을 거쳐 나온 책이라 깊이가 남다르다.

2021년 학생들의 책 출간 소식을 접하고 김완 작가가 직접 학교에 연락해 온 ‘사건’도 있었다. 그해 학생들은 김 작가의 책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완독했다. 김완 작가는 “책 내고 받은 그 어떤 상들보다 문향고 학생들의 글과 이야기에 훨씬 큰 감동을 받았다. 전남 장성에서 자라는 어린 문인들의 작품을 읽는 내내 나는, 현업 작가로서 스스로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다. 그만큼 완성도가 높았다”며 찬사를 보내왔다. 문향고 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2023년 도서관 운영 유공 포상’에서 장관 표창을 받았다.

도서부 1학년 강주은 학생은 장효경 교사를 보며 사서교사를 꿈꾸게 되었다. “SNS 세대다 보니 짧은 글쓰기에 익숙했는데, 선생님께 긴 글을 쓰는 방법을 배워서 좋았어요. 책까지 만들어서 신기했고요. ‘효경 쌤’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이 내년에 다른 학교로 가신다니 아쉬워요.” 곁에서 듣고 있던 장효경 교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분주하게 뛰다 보니 어느덧 떠날 때가 됐네요. 그간의 노력을 격려하는 상까지 받아 기쁘고요. 요즘 사서교사들의 최대 고민은 미디어 시대에 학생들에게 어떻게 책의 가치를 전할까에요. 2023년에 전남교육청에 독서교육전담팀이 신설되면서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어요. 계속해서 따뜻한 시선과 응원을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장효경 교사의 바람이다.

노현서 사진 강성관

저작권자 © 전남교육소식 함께꿈꾸는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