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와 억새

생태계

누가 연약하다고?

갈대와 억새

 

고향 마을 앞에는 아이들이 놀기 좋은 적당한 크기의 강이 흘렀다. 물은 맑았고, 모래와 자갈, 그리고 제법 큰 바위가 알맞은 비율로 강바닥을 점유하고 있었다. 건설경기가 활황이던 시절이었다. 3~5년 간격으로 몇 차례에 걸쳐 덤프트럭이 드나들며 모래와 자갈과 큰 바위들을 퍼갔다. 강바닥은 먹다 만 밥처럼 헝크러졌다. 큰 비가 오고나면 울퉁불퉁했던 강바닥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평탄화됐다. 모양이 바뀐 강에서는 새로운 식물들이 등장했다. 해가 바뀌면 또 다른 식물들이 강의 이곳저곳에서 솟아올랐다.

어떤 이유로 새 땅이 생기면 어김없이 풀과 나무들이 자라난다. 해가 지나면 풀과 나무들의 구성이 달라진다. 달라지는 과정을 ‘천이遷移’라 한다. 달라진다는 것은 그 내부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는 의미이다. 몇 년간의 경쟁단계를 거치고 나면 천이를 멈춘다. 지난해에 봤던 풀, 또는 나무들이 올해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천이의 최종 단계 식물군락을 ‘극상極相’이라 한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구역에는 갈대가 무성하다. 강의 중하류, 연중 2~3차례 물에 잠겼다 금세 빠지는 강의 둔치는 대부분의 공간을 물억새가 점령하고 있다. 평범한 산에는 참나무나 소나무가 많다. 어떤 산의 정상부는 온통 참억새가 뒤덮고 있다. 모두가 그 땅의 경쟁에서 살아남아 극상을 형성한 최후의 승자들이다.

 

갈대와 억새를 구별하는 방법

상사화와 꽃무릇처럼 갈대와 (참/물)억새도 헷갈린다. 간단한 구분법은 ‘사는 곳’이다. 갈대는 연중 물기가 마르지 않는 땅을 좋아하고, 참억새는 산에서 살며, 물억새는 물빠짐이 좋은 강의 둔치를 과점한다. 강의 둔치는 물억새와 갈대가 ‘분점’하기도 한다. 순천만과 영산강 하구언에서 춤추듯 흔들거리고 있는 녀석들은 갈대이고, 장흥 천관산 정상부의 광활한 능선을 장악하고 있는 식물군락은 참억새이다. 광주에서 나주 방향으로 흐르는 영산강가에서 은빛으로 나풀거리고 있는 녀석들은 물억새이다.

헷갈림을 구분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색깔과 모양이다. 갈대는 하얀색을 기본으로 갈색이 섞여 있다. (참/물)억새는 햐얀색이 아주 강해 빛의 각도에 따라 은빛을 내기도 한다. 억새는 빗질을 잘 한 머리카락처럼 가지런하고 날씬하다. 갈대는 억새에 비해 덜 가지런하고 조금 뭉툭하게 보인다. 둘 다 충분히 자란 늦가을에 구분이 가능하다. 어린 시절에는 구분이 어렵다.

갈대와 억새는 모두 생태계에 좋은 기여를 한다. 갈대는 질소를 빨아들여 잎과 줄기에 저장하고, 중금속을 뿌리에 쌓는다. 특히 참억새는 줄기에 다량의 탄소를 저장한다. 강물을 맑게 하고, 산 공기를 청정하게 정화시키는 것이다. 넓게 군락을 이루다 보니 갈대숲과 (참/물)억새숲에는 여러 종류의 새들이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번식을 한다.

 

갈대와 억새의 생존 전략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이 있다. 앞뒤 문장을 함께 살펴보면, 인간은 갈대처럼 연약하지만 ‘생각’하는 힘이 있어 존엄(위대)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마도 파스칼은 바람 앞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갈대=연약’의 뜻으로 가져왔을 것이다. 하지만 갈대는 연약하지 않다. 흔들림은 전략이다. 큰 바람에 나무는 부러지거나 뿌리가 뽑히지만 갈대는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도 뽑히지도 않는다. (참/물)억새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줄기 속을 비워 몸을 가볍게 하는 방식으로 삶을 도모했다. 조동례의 시 ‘갈대’가 갈대의 생존전략을 가장 잘 표현한다. (* ‌파스칼의 유고집 <팡세>에 담긴 말. 팡세 Pensées는 ‘생각’이라는 뜻이다.)

저 홀로 쓰러지고
저 홀로 일어서는 갈대에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지 말라
꺾이고 싶어도 꺾일 수 없는
유순한 천성이 서러워
온몸으로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을
끊임없이 베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별하는 일이
베어도 도로 붙는 물 같은 일이지만
자칫 제 몸에 상처 날 일이지만
갈대가
이쪽저쪽으로 기울어보는 것은
제 나름대로
살 길을 모색하는 몸부림인 것이다

고향 마을의 강에는 모래도, 자갈도, 바위도 없다. 도회지의 어느 아파트 벽으로 팔려갔거나, 누군가의 저택을 떠받치는 석축의 일부가 되어 힘겹게 버티고 있을 것이다. 갯벌처럼 습하고 물렁해진 그 빈자리를 온통 갈대가 메웠다. 딱딱한 돌들이 했던 물의 정화를 부드러운 식물들이 이어받은 셈이다.

 

글 이정우 사진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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