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릇

생태계

일부러 고쳐 부르고픈 이름

꽃무릇

상사화? 꽃무릇? 헷갈린다. 간단한 구분법 두 가지가 있다. 여름(7~8월)에 피면 상사화이고, 가을(9~10월)에 피면 꽃무릇이다. 상사화의 꽃 빛깔은 연분홍, 꽃무릇은 짙은 붉은색이다.

둘은, 잎과 꽃이 피고 지는 순서로도 구분할 수 있다. 상사화 잎은 3월이 되기도 전에 나와 초여름에 말라 죽는다. 이후 꽃대가 솟아 꽃을 피운다. 꽃무릇은 늦가을에 꽃이 시들어 떨어진 다음 잎이 나 겨울에 푸르게 자란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상사화相思花는 상사병相思病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병이라고 하는데 의학사전에는 없는 용어다. 국어사전에는 있다. 대략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병”으로 설명한다. 영어사전에도 lovesickness라는 단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랑으로 인한 마음의 병은 인류 공통의 ‘질환’인 것 같다.

 

상사화축제의 속내

 

꽃무릇의 다른 이름으로는 석산石蒜, 피안화彼岸花가 있다. 중국, 일본에서 각각 그렇게 부른다. 석산은 ‘돌 틈에서 나온 마늘 모양 뿌리’1)라는 뜻이다. 꽃무릇의 생태특성을 착실하게 반영한 작명이다. 피안화는 ‘저 세상의 꽃’이라는 의미로, 꽃무릇을 죽음과 연관시킨 사회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영어 이름은 Red Spider Lily, 붉은 거미 백합이다. 꽃잎보다 긴 수술이 거미 다리 같다 하여 붙여졌다. 직관적이다. 석산, 피안화, 붉은 거미 백합… 말이 태어난 문화권의 특질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 상사화와 꽃무릇은 구분하면서도 섞어 쓴다. 가을에 상사화축제를 벌이는 곳이 있는데, 정확히는 꽃무릇축제라 해야 옳을 것이다. 상사화라는 이름에는 애잔한 이야기가 있으나 꽃무릇에는 이야기를 추적할 수 있는 어근語根이 없다. 백합과에 속하는 ‘무릇’이라는 식물이름 앞에 ‘꽃’을 붙인 조어이다. 축제를 벌이는 지자체 공무원이 상사화와 꽃무릇의 차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를 축제이름에 담고자 의도적으로 쓰는 오명誤名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알뿌리를 가진 여러해살이 풀’이자 ‘수선화과 상사화속’에 속하는, 사촌지간의 식물이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상사화라면, 꽃무릇 또한 상사화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둘 다 상사화라 하고 ‘봄상사화, 가을상사화’로 구분하는 게 이해도 쉽고 자연스럽다. 아예 이렇게 이름을 바꾸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두 꽃의 다른 이름이 있는데 개가재무릇(상사화), 가을가재무릇(꽃무릇)이다. 상사화라는 멋진 이름을 개가재무릇이 독점하는 것은 아무래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상사화라는 이름을 공유할 수 있는 어떤 타협책이 나오면 좋겠다. 상사화축제를 벌이는 지자체가 꿋꿋하게 이름을 고수하여 ‘의도적인 혼선’이 계속되면 멀지 않은 시기에 타협책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사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꽃

 

꽃무릇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일본기원설’이다. 사실 꽃무릇의 원산지는 중국이고,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갔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 잡초생태학 연구의 권위자인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석산(꽃무릇)의 원산지는 중국 양자강 부근인데, 거기로부터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온 몇 포기 안 되는 석산이 일본 전체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2)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전해졌다면 일본학자가 이렇게 말했을 리 없다.

꽃무릇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상사화도 마찬가지다.) 매우 더디게 알뿌리만으로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다. 개체 수를 비약적으로 늘리려면 알뿌리를 잘라 옮겨 심어야 한다. 이 작업은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장소에 꽃무릇이 있다면, 누군가의 손길이 거기에 닿았다는 뜻이 된다. 꽃무릇은 사람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꽃보다 특별하다.

지금은 주로 관상용으로 쓰이지만, 오래전 꽃무릇은 먹을 것이 없을 때 배고픔을 해결하는 ‘최후의’ 구황식물이었다. 알뿌리에는 독과 함께 녹말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독성식물이지만 알뿌리를 짓찧어 물속에서 잘 주물러 찌꺼기를 걸러낸 다음 다시 물로 여러 차례 씻고 가라앉히는 조작을 되풀이하면 독성이 제거되고 질 좋은 녹말을 얻게 된다”.3)

모든 독은, 동시에 약이기도 하다. 꽃무릇의 알뿌리에는 구토를 일으키고, 신경을 마비시키는 독성분이 들어 있다. 이 알뿌리를 약재로 쓴다. 기침, 가래, 임파선염에 말린 약재를 복용하면 약효가 좋다. 종기에는 생알뿌리를 짓찧어 환부에 붙이기도 한다.

구황식물이자 약재로도 효능이 좋은 까닭에 집 뒤꼍, 사찰 주변에 무더기로 심어 두었을 것이다. 꽃무릇은 붉은 꽃의 강렬한 시각적 경험뿐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한 생활재료까지 제공해 주는, 아름다우면서도 고마운 ‘가을상사화’이다.

 

글 이정우 사진 오종찬

 

1) 이영득, <풀꽃 이야기 도감>, 황소걸음, 2021.

2) 이나가키 히데히로, <풀들의 전략>, 도솔오두막, 2006.

3) *장준근, <산야초백과>, 넥서스BOOK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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