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객_ 감자

 

맛객

구황救荒에서 하지夏至
감자

 

마크 와트니는 모래폭풍에서 조난된다. 날카로운 것에 아래 복부를 찔려 몸 상태도 심상찮다. 재난을 맞은 장소는 화성火星, Mars이다. 설상가상, 그가 죽은 줄 알고 있는 화성 탐사 동료들은 고향별 지구地球, Earth로 귀환 중이다.

와트니는 천재 식물학자이면서 낙천주의자다. 화성 기지로 돌아와 대충 상처를 수습한다. 곧이어 생존 모드에 들어간다. 구조가 올 때까지는 어림잡아 4년. 68일치 식량으로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2015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마션>의 초반부다. 감독은 시작부터 주인공을 극한으로 몰고 간다. 식량저장고에는 추수감사절용 감자 한 봉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감자일까.

삶은 하지감자

감자는 생명력과 생산성으로 요약 가능하다. 옥수수, 밀, 쌀에 이은 4대 식량작물이다. 원산지는 안데스 산맥. 양분과 물이 적은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란다. 가뭄과 추위에도 잘 견딘다. 성장속도가 빠르고 다른 작물보다 면적 대비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다. 냉동건조하면 몇 년간 탄수화물, 비타민C 등 영양분을 손실 없이 저장할 수 있다.

감자는 대표적인 구황작물救荒作物이다. 황荒량한 삶을 구救원한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감자는 인간의 역사에 무겁게 기록돼있다.

19세기 초 아일랜드 사람들 1/3이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다. 가난한 아일랜드 소작농들은 감자를 먹으며 영국인 지주들의 착취를 견뎠다. 1847~1852년, 약 5년 간 ‘대기근Great Famine’이 아일랜드를 휩쓸었다.

감자 역병 때문이었다. 대략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고, 총 200만 명 가량이 정든 고향을 버리고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 중에는 미국 44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할아버지도 있었다.

대기근 속에서도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 지주들의 착취는 줄지 않았다. 대기근에서 겨우 빠져나온 아일랜드인들은 독립투쟁을 시작했고, 1921년 마침내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났다. 대기근의 앙금은 지금까지도 남아, 아일랜드와 영국 사이는 여전히 좋지 않다.

감자의 우리나라 전래 경로는 ‘네덜란드 상인→중국→간도’의 북방설, ‘영국 상선→전북 해안’의 남방설이 있다. 내 기억에 어머니가 감자라는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앞에 꼭 ‘북’ 또는 ‘하지’라는 말을 넣어서 북감자, 하지감자라고 했다. 북쪽에서 왔다고, 하지夏至 무렵인 6월 21일경 수확한다고 각각 붙은 수식어였다.

감자로 차린 소박한 한 끼 밥상

6~10월이 제철인 하지감자는 여름철 별미였다. 갓 삶아 포실포실 김이 나는 감자에 약간의 소금만 곁들이면 충분했다. 뜨거운 감자를 먹으며 이열치열의 말뜻을 깨달았다. 열무김치를 얹어 먹으면 최고였다. 내 세대에게 감자는 구황의 무거움을 벗고 비교적 가볍게 소비돼왔다. 요즘 대세인 감자칩이나 감자튀김이 그러하듯이. 

하지감자로 된장국, 전, 볶음 한 상을 차렸다. 오래 끓여낸 국은 감자와 된장이 상호작용한 성공적인 결과물이 됐다. 감자전분이 퍼진 국물은 진득했고, 된장은 감자 세포 곳곳에 구수하게 침투했다. 식용유에 당근과 함께 볶아낸 따끈한 감자채는 밥과는 다른 탄수화물의 풍미로 입안을 가득 채웠다.

노릇노릇 튀기듯 지져낸 감자전은 요샛말로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의 절정이었다. 수분을 빼고 소금과 기름만 보탰을 뿐인데 쫄깃한 감자전은 완벽했다. 추적추적 비라도 내렸다면 막걸리 한 병은 거뜬히 비웠을 것 같다. 

화성인Martian인 와트니는 시행착오를 거쳐 화성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한다. 감자로 생존의 물적 토대를 다진 다음에야 구조받을 채비에 본격 나선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자는 희망의 근거였다.

감자에 생존의 희망을 건 영화 속 주인공은 내게 너무 무거웠다. 지구의 현실에서는 하지감자로 남아주길 바란다. 구황의 처지는 누구에게나 아프고 괴로운 상황 아닌가. 

글·사진 노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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