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중학생 정백안․서경임 부부

정백안․서경임 부부
영암 군서면에 거주하며 영암읍장에서 생선장사를 하고 있다.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4년 전 목포제일정보중·고 초등문해 학력인정프로그램을 시작해 졸업, 올해 3월 중학교까지 진학했다. 빼어난 글솜씨를 자랑하는 서경임 씨는 자서전을 준비 중이다. 늦깎이 학생들의 꿈은 대학 졸업. ‘항시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마음으로 배움의 길을 즐겁게 걷고 있는 학생 부부다.

정백안 서경임 부부ⓒ최성욱

“자! 세계지도에서 우리나라가 어디 있나 찾아보세요.” 중학교 1학년 사회 시간. 스무 명 가량의 70대 어르신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그 한복판에 서경임·정백안 부부가 나란히 앉아 수업에 열심이다.

어르신들은 올해 3월 2일 중학생이 되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의 ‘초등문해 학력인정 프로그램’을 통해 진학했다. 학교 교육의 기회를 놓치고 살아온 성인들에게 초등 교육과정을 단기간에 이수할 기회를 제공하는 제도다.

“아버지가 세 살에 돌아가셨는디 어쩌겄어요. 다섯 살 때부터 놈의 집 애기를 업었어요. 산에 나무하러 가다가 학교 가는 또래 아그들을 보면 서러워서 소나무 뒤에 숨었지요.”

결혼 후 영암읍과 해남읍 오일장에서 생선장사를 하며 2남1녀를 키워낸 부부는 ‘자식들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교육시켜야 겠다’고 다짐했지만, 정작 본인들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 서경임 씨는 책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지인을 우연히 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남편을 설득해 늦깎이 초등학생이 된 계기였다.

“입학식 하던 날 애국가가 울리는데,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고요. 평생 수도 없이 들어왔는데, 그날 들었던 애국가는 어찌나 가슴에 맺히던지…. 낮에는 장사하고, 밤이면 숙제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잠이 쏟아지니까 머리를 여기저기 찧어가면서 글을 썼어요. 처음에는 받침도 틀리고, 잘못 쓰면 남들이 흉볼까봐 두렵기만 했죠. 근데 ‘내가 이 나이에 무서울 게 뭐 있나, 배우려고 왔는디 틀리면 선생님이 고쳐주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백안 씨는 어릴 적 한 학기 동안 국민학교를 다녔던 터라 간단한 글씨는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서경임 씨의 공부 욕심에 옆자리라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입학했다. 그는 요새 배움의 기쁨을 한껏 누리고 있다. 

서경임 씨와 정백안 씨가 쓴 시

“살면서 불편한 게 많았어요. 택배 같은 건 읽을 수 있는데, 긴 편지나 문서가 오면 면사무소에 가서 물어봐요.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창피하니까. 학교를 다니면서 글 배우는 재미도 있고, 마음도 넓어져요. 사람 만날 때 자신감도 생기고요. 딸한테 편지도 써봤는데, 부끄러워서 보내진 못하고 아직까지 갖고 있네요. 허허.”

부인인 서경임 씨는 용기를 냈다. 지난해 겨울 아들, 며느리, 딸, 사위에게 쓴 편지를 우편으로 보냈다.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자녀들이 글솜씨를 칭찬하더라고 수줍어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제 눈으로 글씨를 읽을 수 있어 전에는 남편 뒤로 슬그머니 숨었던 마음이 당당해지고, 오히려 남들 앞에 서서 읽고 싶어져요”라고 말했다. 

늦깎이 학생들은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 사랑을 못 받고 살았는데, 학교 다니면서 선생님들한테서 그 사랑을 다 받는 것 같아요. 어찌나 말도 따뜻하고, 한 자 한 자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는지, 내가 선생이라면 그렇게는 못할 것 같아요. 집에 가면 선생님 목소리 듣고 싶어서 학교 가고 싶고 그래요. 우리 선생님들이 천사라고 생각해요.”ㄱ

수업을 듣고 있는 정백안, 서경임 부부ⓒ최성욱

‘글을 쓸 때면 화장지 한 통을 눈물로 적셔가며 쓴다’는 서경임 씨의 포부는 특히 남다르다. 가난과 불운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던 자신의 인생을 꼭 자서전으로 남기고 싶다는 것. 일하느라 시간이 부족하다며 아쉬워하는 서 씨에게 김광복 담임교사가 지원을 약속했다. “어머니 자서전은 제가 도와드릴게요.” 남편 정백안 씨도 부인의 열정에 이렇게 응답했다. “어떻든지 열심히 공부해서 시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부부는 올해를 끝으로 장사도 그만둘 계획이다. 

“항시 오늘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생각으로 학교 다녀요. 건강만 따라준다면 대학까지 마치고 싶네요.” 늦깎이 학생들이 꿈을 이뤄, 몇 년 후 대입 인터뷰로 다시 만나 뵙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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