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전남② 전라도 말 '게미'

전라도 출신의 평범한 성인이라면 누구라도 음식에 대한 자기 기준이 있다. 동시에 그 기준을 충족시켜주는 식당을 알고 있으며, 그 식당에 앉아 ‘자기 음식’에 얽힌 지극히 사적인 사연과 의미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풀어 놓을 줄 안다. 어느 전라도 사람이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음식 구라’를 풀지 못한다면,  심각하게는 아닐지라도, 농반진반으로나마 ‘세상 어떻게 살았냐?’는 핀잔을 듣게 된다. 

외지인들이 전라도에 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서는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SNS공간에 사진과 품평을 올린다. 대부분이 엄청나게 많은 반찬 ‘가짓수’를 강조한다. 전라도 음식의 특별함이 반찬 가짓수로 인식되는 것 같다. 음식 맛 좋은 곳이 반찬 수도 많은 건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한정식’이 곧 전라도 음식이라는 오해가 발생한다.

한정식은 일제시대 들어 직업을 잃은 궁중 요리사와 각 지역에서 한양으로 몰려든 지방 음식의 복합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다소 복잡한 역사적 기원을 가진 게 한정식이다. 전라도 음식에 충실한 상차림을 정작 전라도에서는 한정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하튼 전라도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맛이다. 반찬의 많고 적음은 부차적인 것으로 본다. 반찬 종류가 많으면서 맛이 없으면 오히려 더 지탄을 받는다.

회, 보리굴비, 삼합, 게장, 생고기, 떡갈비, 육전, 전복, 꼬막…,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강진 한정식 ⓒ강진군

좀 더 섬세하게 전라도 음식에 접근하자면 권역마다 지역마다 고유한 재료, 향신료, 조리법들이 있다. 가령 전남 여수에서 진도에 이르는 해안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삼치를 먹겠다고 혈안이다. 구례나 순천 같은 전남 동부 출신들은 라면을 끓여 먹을 때도 ‘젠피’를 뿌려 그 향을 음미한다. 전남 중부 갯벌이 좋은 장흥 출신이라면 봄 키조개나 겨울 매생이를 먹을 때 제 고향산인지를 기어코 따진다. 어느 지역 출신이든 각자의 ‘레시피’가 있어서 음식을 놓고서는 먹는 방법과 조리법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다투는 일이 흔하다. 그 다툼에 승자는 없다.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툰다. 다툼을 즐긴다. 다툼까지도 음식 맛, 음식 문화의 일부로 기능하는 셈이다.

전라도 사람들의 경우 누구랄 것도 없이 공통으로 갖는 경험이 있다. 전라도 바깥으로 나갈 일이 생기면 지레 음식 걱정부터 하는 것이다. 사흘 정도 서울 출장을 다녀와야 하는데 하루하루 먹을 일이 갑갑하다거나, 아이들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놀러 가자는데 끼니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하면 모두가 그것을 ‘큰 걱정’으로 인정해준다. 물론 내게는 부산 광안리 어느 횟집에서 저녁 한 끼를 아주 맛있게 먹은 경험이 있다. 서울에도 맛있는 집이 지천으로 깔려 있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마음 편하게 발길 닿는 곳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대충 한 끼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바깥 음식 무용담’을 경쟁하듯 이야기하기도 한다.

섬진강 민물고기에 시래기와 양파 등의 신선한 야채를 넣고 끓인 구례 매운탕 ⓒ구례군

“와~ 정말 심하드라. 포장마차에서 어묵국을 칠천 원에 팔드라고. 우리는 그냥 서비스 아니냐. 그래, 서울인께 돈 받고 파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그란디 문제는 칠천 원짜리 어묵국이 맛도 없다는 거여. 파도 안 뿌리고 주드랑께.”

“아야~ 그것은 암끗도 아니다. 음식이 안 맞으믄 중국집 가서 짬뽕 시켜 묵는 것이 우리 전라도 사람들의 지혜 아니냐. 근디 세상에 짬뽕까지 맛이 없어. 이것이 국순지, 우동인지, 짬뽕인지 구분이 안가드랑께.”

“참말로 배부른 소리들 하고 자빠졌네. 아침에 숙취 풀라고 유명하다는 콩나물해장국집 갔는디 맹물에 콩나물 담가 붓드라. 밥은 떡밥이고. 아이고, 맛없단 말은 못하고 대충 묵은 척하다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속 풀었다. 도대체 육수라는 개념이 없는 거 같어. 울 집은 된장국 하나를 끓여도 멸치는 기본, 표고버섯에 다시마에 파뿌리까지 넣어서 육수 우려 낸디.”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비싸디 비싼 한우를 구워 묵는데 나온 밑반찬이 우리 동네 라면집 밑반찬보다 적다는 사실이여. 계절에 맞는 반찬은 아예 구경도 못해. 깍두기하고 김치면 땡. 그것이 전부여. 상추는 온놈으로도 아니고 잘게 썰어서 나와부러. 봄 되면 취나물 뿌스레기라도 내 놔야 쓸 것 아니냐.”

전라도 바깥에 있다가 음식 고생 잔뜩 하고 ‘귀향’하는 이들은 허겁지겁 지인에게 연락한다. 

“아야, 내 속이 지금 부글부글 한다. 서울에 메칠 있었드만 소화가 안되부러야, 거 머시냐, 기동이네서 돼지주물럭에 북어국 한 그럭만 묵자.”

“그 속 알제. 얼릉 오니라, 내가 속 풀어주께.”

나는 지금 전라도 음식 맛의 우월함을 노골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방문하는 외지인에게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일은 대한민국 어디에나 있는 일반적인 풍속이다. 광주전남을 누비면서 외지인들에게 맛집 안내할 기회가 많았다. 맛있다는 평가는 기본, ‘감동’이라는 표현도 다반사였다. 지나치게 맛있어서 무슨 약이라도 타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 이들도 여럿 있었다. 전라도 음식 맛의 우월성을 확신하는 근거다.

거꾸로 전라도 사람인 내가 타 지역에 가 누군가에게 맛집 대접을 받은 적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맛집을 소개하는 데 매우 신중했다. 내가 전라도 사람이어서 어지간해서는 ‘맛있다’는 소리를 듣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들은 마치 받아쓰기 채점을 앞둔 학생들처럼 조마조마해 했다. 소개받은 맛집은, 대체로 맛이 좋았고, 그래서 주저 없이 맛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전라도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 진짜 맛있는 곳”이라는 뒷말이 따라 나오곤 했다. 심지어는 잠깐 다녀온 미국 LA 코리아타운에서도 그 소리를 들었다. 어떤 만남이 있을 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저절로 ‘음식 소믈리에’가 되곤 했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얻게 되는 영광스러운 자격이 아닐 수 없다.

게미진 묵은지와 깻잎 장아찌, 배추얼갈이김치 등 반찬들과 미역국, 가마솥밥으로 정갈하게 차려낸 생선구이 백반. 영암의 어느 식당 ⓒ조현아

음식맛을 묘사하는 전라도 말 중에 ‘게미’라는 표현이 있다. ‘게미가 있다’, ‘게미가 쏠쏠하다’는 식으로 쓰인다. 알기로는 전남 지역 고유의 어법이다. 일이 바빠 대충 한 끼 해치우려는 생각으로 백반집을 찾아 들어갔다. 선술집을 겸한 서민식당이다. 밥과 국과 반찬을 허겁지겁 입 속으로 구겨 넣는데 어느 한 대목에서 의미심장한 맛이 번진다. 뭐지? 이 맛은 무슨 반찬에서 나왔지? 의문을 품고 살피니 토란대 무침이 낸 맛이다.(다른 반찬이어도 상관없다.) 무어라 딱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맛있다. 그때 말한다. “와따, 이것이 벨것도 아닌디 솔찬히 게미가 있네, 아짐~ 요거, 한 접시만 더 주시오~.”

게미라는 말을 알고 있는 전라도 사람이라 하더라도 ‘게미’의 개념을 단정 짓지 못한다. 제각각이다. 맵고 짜고 시고 달고 쓴 오미五味의 어느 하나로 귀속시키기 어려운 맛, 그럼에도 길게 여운이 남고, 교묘하게 입에 감기며, 어딘가에서 맛 본 것 같으면서도 그 경험이 기억나지 않는 맛이라고 하면 얼추 ‘게미’에 근접할 성싶다.

게미는 특정 음식에 연결되는 맛도 아니고, 규격화된 조리 방법, 요샛말로 ‘레시피’가 따로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어떠한 요리 장인이라 해도 ‘게미’를 규칙적으로 반복해 생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게미’를 맛보기 위해 무슨무슨 식당에 간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다만 ‘전라도 음식은 게미가 있다’는 말은 가능하다. 산, 들, 바다, 강, 바람, 먼지까지 전라도의 모든 요소들이 음식 솜씨 좋은 누군가의 손을 빌어 우연히 내는 맛, 그러나 긴 시간의 흐름을 타고서 전라도 이곳저곳에서 울퉁불퉁하게 끊이지 않고 나오는 필연의 맛, 증명하기 어려운 ‘구라’ 같은 맛, 그것이 ‘게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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