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에 이만큼 따뜻한 디가 어디 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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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에 이만큼 따뜻한 디가 어디 있다요?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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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무산김’ 생산하는 회진마을

겨울철 남해안 바다에서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은 해조류가 생산된다. 김, 매생이, 파래, 감태, 미역 등등. 이 중 김이 으뜸으로 꼽힌다. 김은 한자로 해태海苔, 곧 바다의 이끼라는 뜻이다. 바닷가 바위에서 자라는 자연 상태의 김이 육지의 이끼와 비슷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장흥군 회진면은 1923년 해태조합(장흥군 수협의 전신)이 만들어질 정도로 김 양식의 역사가 깊다. 100년을 훌쩍 넘긴다. 회진마을의 김 생산은 1980년대 초반까지 전통방식을 유지했다. 집집마다 겨울 빈 논에 덕장을 세워 물김을 말렸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성벽과도 같았다.

장흥 삭금마을 바다에 펼쳐진 김 양식장
장흥 삭금마을 바다에 펼쳐진 김 양식장

기계화, 공장화로 지금은 많이 사라진 풍경이지만, 장흥에서는 여전히 전통방식에 가까운 김 양식을 하고 있다. 김을 양식할 때 생기는 이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유기산이나 무기산을 뿌리는데, 장흥에서는 어가와 지자체가 뜻을 모아 산을 뿌리지 않는 김을 생산하고 있다. 이른바 ‘무산 김’이다.

김에 산을 뿌리지 않으면 생산량이 떨어진다. 매생이, 감태, 파래 등이 김발에 엉겨 붙어 김의 식생을 위협한다. 이것들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해조류이지만 김 양식하는 입장에서는 이물질인 셈이다. 어가는 이들이 김발에 자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김발을 물 위로 노출해 햇볕을 쬐어 김을 키운다. 그 수고가 갑절 이상이다. 대신 김 특유의 풍미를 갖출 수 있다.

 

수고의 대가는 짙은 바다 향

풍미가 빼어난 ‘장흥 무산김’을 만나기 위해 회진면 신상리 ‘해조수산’을 찾았다. 서승길·김숙자 부부가 26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 공장이다. 바다에서 김 원초물김를 직접 양식하고 공장에서 가공하여 마른 김을 생산하는 곳이다.

실내에서 사상체(김 종자를 받기 위한 김 성체)를 배양한 후 조개껍데기에 사상체를 이식하고 김 종자를 채묘한다. 채묘한 김발을 바다에 드리워 김을 키운다. 그렇게 키운 김을 11월 말부터 채취한다. 식탁에 오를 수 있는 마른 김은 12월부터 나온다.

이물질 제거 위해 염산을 쓰지 않고
수시로 물 위로 노출해 햇볕 쬐는
전통방식에 가까운 김 양식법 고수가
‘장흥 무산김’의 깊은 맛 비결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바다에서 키운 김 원초를 공장으로 옮겨와 바닷물에 깨끗이 씻는다. 이물질을 제거한 후 다시 세척하여 잘게 자른다. 자른 김을 민물로 또 한 번 세척한 다음 양성이라는 숙성과정을 거친다. 이후 김 틀에 물김을 넣고 건조하면 한 장의 김이 생산된다. 이 과정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

올해는 바닷물 온도가 김이 자라기 적정하여 작년에 비해 물김의 질이 좋고 수확량도 괜찮다고 한다. 공장에서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하니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깃든 산물이다. 게다가 날씨의 도움까지 있어야 하니 김 한 장에도 감사함을 느껴야겠다.

건조기 등 기계의 상태에 따라 찢어지거나 두께가 고르지 않은 ‘불량김’이 나올 수 있다. 이 경우 저렴한 가격으로 김 가루 공장에 납품한다. 체계적인 품질관리 또한 해조수산이 공을 들이는 부분이다.

김발에서 자라고 있는 김
김발에서 자라고 있는 김

김애단, 허미자, 이남순 어르신들은 신상마을에 사는 이웃들이다. 김 철이 되면 세 분은 한 조가 되어 공장에 출근한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기계에서 나온 마른 김을 100장씩 묶어 띠 작업을 한다. 100장씩 묶은 김을 ‘한 톳’으로 부른다. 어른신들의 하루 작업량은 600톳에서 700톳 정도이다.

“시한(겨울)에는 일이 없는디 김 공장에 나오면 같이 일한께 재미지고 돈도 벌고 좋제라. 그라고 김 말리는 열기 땜시 시한에 이만큼 따뜻한 디가 어디 있다요?” 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맙게 생각하는 어르신들의 삶이 존경스럽게 느껴진다.

 

장흥의 바닷가 마을 농한기 ‘효자노릇’ 톡톡

요즈음에는 김을 사시사철 먹는다. 전통방식으로 김이 공급되던 시절에는 겨울철에만 먹을 수 있는 고급 반찬이었다. 김 한 장을 갓 지은 밥에 참기름 두어 방울 떨어뜨린 간장을 살짝 올려 먹거나, 김장김치 쭉 찢어 함께 싸서 먹으면 바다의 향이 입 안 가득 채워진다.

김발을 바다에 걸기 위해 준비중인 어부들
김발을 바다에 걸기 위해 준비중인 어부들
무산김
무산김

대략 30여 년 전, 회진뿐 아니라 장흥의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예외 없이 김을 생산했다. 요즘처럼 공장에서 나오는 김이 아니었다. 집에서 맨손으로 물김을 세척하고 잘게 잘라 한 장씩 뜬 다음 김 덕장에 대나무 꼬챙이로 고정해 겨울바람과 햇볕에 말렸다.

그 시절의 정취는 사라졌지만, 약간의 기계화를 곁들여 ‘무산 김’의 형태로 장흥 회진에서 계속 생산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김은 어촌마을 농한기의 큰 소득원이고 우리 식탁의 귀한 반찬이다.

취재를 끝마칠 무렵 서승길 대표는 김 자라는 것을 보러 간다며 길을 나섰다. 바다로 향하는 활기찬 발걸음을 보며 올해 김 농사도 대풍년이길 기원해 본다.

글 장준혁 사진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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