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아는 사람 노릇 쉽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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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아는 사람 노릇 쉽지 않구나!”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2.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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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시대를 겨눈 매천 황현
매천의 고향 광양 서석마을
매천의 고향 광양 서석마을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을 떠올린다. 망한 나라의 마지막 선비였던 그의 일생을 따라가 보면 눈 속에서 고매하게 피어난 매화 꽃잎 한 장을 만나게 된다. 매천 황현, 문장으로 시대를 겨누었던 사람. 그는 삶으로 글 아는 자의 숙명을 무겁게 깨우쳤다. 그의 문장은 상강에 내리는 서릿발처럼 날카로웠고, 적막을 깨우는 외마디 외침처럼 강했다.

나라가 망한 지 1주일이 지난 1910년 9월 7일 새벽, 지리산 구례 월곡리에 은거하던 매천은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그고 오래 침묵했다. 이윽고 붓을 들어 네 수의 절명시絶命詩를 남겼다. 명문이었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니
무궁화 나라는 이미 사라졌구나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옛일 돌이켜보니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

지식인의 슬픔이 느껴지는 생의 마지막 글이었다.

매천은 왜 죽어야만 했던가? 그의 일생을 돌아보면 망한 나라 조선에 그가 지켜야 할 의리 따위는 없었다. 과거에 나아가 1등을 하고도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2등으로 밀렸다. 능력보다 뇌물과 간판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그가 모든 걸 다 버리고 서울을 떠나 구례 땅에 은거한 것도 조선에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문장으로 시대를 겨눈 사람, 매천

매천 황현

매천은 광양 서석촌에서 태어났다.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난 매천이 과거에 합격해 가문을 다시 일으키는 게 아버지의 오랜 꿈이었다. 20대에 매천을 서울로 올려 보냈다. 

매천은 상경과 함께 이건창李建昌을 찾아갔다. 명망가의 후예였으며, 조선에서 최연소인 15세에 과거에 급제한 인물이었다. 이건창은 죽기 직전 <당의통략黨議通略>을 완성해 조선후기 사회 당쟁의 폐단을 낱낱이 밝혔다. 첫 만남에 이건창은 매천의 사람됨을 금세 알아봤고,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1883년 고종은 널리 인재를 구하는 보거과保擧科를 공포했고, 매천은 응시했다. 1등으로 합격했지만 지방 선비라는 이유로 2등으로 떨어졌고, 분개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거처를 구례로 옮긴 매천은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간청으로 1888년 성균관 생원시를 봤고, 1등으로 합격했다.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매관매직이 만연한 나라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는 구례 만수동으로 돌아와 후학을 기르고 저술에 몰두했다. 다시는 서울에 가지 않았다. 그는 당대를 세밀하게 기록했다. 권력을 앞에 두고 맞붙은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싸움, 그 사이에 낀 고종의 나약함에 대해 비판했다. 외세를 등에 업은 개화파의 행태도 꼬집었다. 특히 외세의 침략과 백성들의 저항을 기록한 <매천야록梅泉野錄>과 일제침략과 항일의병활동을 기록한 <오하기문梧下記聞>은 그의 시대비판 정신이 매우 돋보이는 기록이다.

1898년 강화도에서 이건창이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매천은 강화도로 갔다. 낙향 후 처음 먼 길을 걸었다. 이건창이 죽으면서 남긴 말은 이러했다. “황현을 한 번 보고 죽는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매천은 구례에서 강화도까지 600리 길을 한걸음에 달려가 친구의 죽음 앞에서 대성통곡했다. 

황현 생가(아래)와 내부(위)
황현 생가(아래)와 내부(위)

 

매천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

1910년 8월, 나라가 망했다. 그 소식은 구례에도 날아들었다. 이미 매천은 1905년 을사늑약 때 죽음을 결심했었다. 살아서 허망한 목숨이 5년 더 유예되었을 뿐이었다.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틀 후 매천은 절개를 위한 죽음을 선택했다. 절명시와 유서를 남긴 뒤 그는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남은 소주에 아편을 타서 마셨다.

매천이 밝힌 죽음의 이유는 이러했다. ‘나에게 죽을 만한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가 선비를 기른 지 5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그 어려움을 위해 죽는 자가 하나도 없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내 위로는 하늘이 내린 도리를 저버리지 않았고, 아래로는 평소 읽었던 책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어둠 속에 길이 잠들어도 참으로 통쾌함을 느끼리라.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매천 황현이 쓴 절명시
매천 황현이 쓴 절명시

나라를 위해 선택한 죽음, 그러나 매천도 사람이었다. 선비에게도 죽음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는 약사발을 마시려다 세 번이나 입에서 떼었다. 아침에 죽어가는 그를 찾아온 동생에게 매천은 고백했다. “죽기가 쉽지 않더군. 약을 마시려다가 약사발을 세 번이나 떼었다네. 내가 이렇게도 어리석은가.” 그 한마디에 글 아는 자의 모든 고뇌가 담겨 있었다. 동생은 의식이 남아 있는 그를 살리려 했지만 매천은 거절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닭이 두 회 우는 소리를 듣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편을 마시고, 꼭 하루 만이었다. 비장을 넘어선 장엄한 죽음이었다.

역사는 밀면서 밀려 올라간다. 그러므로 역사는 시간 속에서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의 바위 속에서 되살아나 오늘을 밀어낸다. 매천 황현의 삶은 오늘을 보는 오래된 거울이다. 나라는 여전히 어둡고, 글 아는 사람 노릇은 갈수록 버거워진다. 매천이 목숨 값으로 이루려고 했던 것들, 읽은 책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삶이 어쩌면 어리석은 시절을 건너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일 것이다.

구례 매천사. 매천 황현이 절명시를 남기고 죽은 곳. 매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구례 매천사. 매천 황현이 절명시를 남기고 죽은 곳. 매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글 정상철 사진 장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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