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최초 민관협업형 공립대안학교 담양 송강고 개교 1년돌아보기

전남 최초의 민관협업형 공립대안학교*로 탄생한 담양 송강고등학교가 개교 1년을 맞이했다. 생애 창업, 학교 너머 학교, 상상 밖의 상상을 지향하는 송강고는 ‘창조적 괴짜’를 길러내고자 한다. 한 해의 결실이 달고 알차 보인다. 열매는 바로 학생들의 몸짓과 눈빛에서 드러난다. 송강고의 첫해살이를 함께 살펴보자. 

*2016년부터 교육부 정책으로 송강고를 포함해 전국 5곳에 민관협업형 공립대안학교가 설립됐다. 전남에서는 송강고가 유일하다.

담양 송강고 드론 사진 ⓒ마동욱
담양 송강고 드론 사진 ⓒ마동욱

 

단계별 성장 이끄는 ‘길 위의 학습’

지난 12월 9일, 송강고는 ‘휴먼라이브러리 결과공유회’를 열었다. 첫 번째 발표자인 1학년 김성은 학생은 ‘크리스천 작가’ 탐구 결과를 발표했다. 성은 학생은 만나고 싶은 작가를 섭외하고 서울행 동선을 짰다. 여러 서점과 도서관 방문, 작가 인터뷰 등으로 알차게 채운 2박3일이었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전국 각지의 전문직업인과 현장을 취재하며 자신의 관심사와 진로를 탐색하는 프로젝트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내는 이 과정은 송강고 학생들이 1년간 기른 심신의 근력을 모두 활용하는 자기성장 여정이다.

교과, 창업, 치유 어우러진 교육과정
일반교사와 산학교사로 꾸려진 교사진

여행 학습, 논술형 평가, 담쟁이회 등
적극성과 창의성 쑥쑥 키우는 학교

휴먼라이브러리 결과공유회에서 발표 중인 김성은 학생(위)과 로드 스쿨 후 학생들이 작성한 소감문(아래)
휴먼라이브러리 결과공유회에서
발표 중인 김성은 학생(위)과
로드 스쿨 후 학생들이 작성한 소감문(아래)

자동차를 좋아하는 2학년 배준혁 학생은 금형공장부터 폐차장까지 다녀오고, 자동차 대리점들을 인터뷰했다. 선물용 음료수를 사들고 주저없이 노크했다. 중학생 때라면 상상도 못 했을 적극성에 스스로도 놀랐다. 준혁 학생은 “6월 제주도 로드 스쿨 경험이 아니었다면 (대리점 가서) 말도 못 걸었을 거에요. 제주 이후 제가 바뀌었거든요.”

그의 말이 송강고의 첫해 성과를 잘 보여준다. 봄부터 겨울까지, 길 위에서 학습하는 시기별 로드 스쿨은 학생들의 단계적 성장을 이끌었다. 학생들은 늦봄, 완도 생일도 무인도 체험에서 서로 돕고 챙기는 공동체의식을 몸으로 익혔다. 무인도 체험에서 쌓은 소속감은 초여름 9박10일 제주에서의 팀별 활동의 바탕이 됐다. 

학부모회장을 맡은 김규미 씨는 제주에 간 아들 세현 군의 뒤를 밟았다. 남편과 제주로 가서 아들이 속한 팀을 멀리서 몰래 지켜봤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던 아들과 갈등을 빚다가, 송강고를 추천 받아 보냈던 터다. 그 아들이 뙤약볕에 물 한 병 들고 묵묵히 팀원들과 걷고, 활발하게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감동적이었다. 멀리서 지켜보며 울었다. 이후 아들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됐다. 아들은 여름방학 내내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2학기 개학한 후 학부모들을 만났더니 모두 아이들 변화가 감동이라고 입을 모으더라.”

1학기를 마감하며 학생들은 자신이 부쩍 성장했음을 실감했고, 학부모들은 학교와 자녀에 대한 믿음을 키웠다. 2학기는 그 리듬을 타고 전개됐다. 섬진강 3박4일 자전거종주는 학생 25명 모두가 176㎞를 완주했다. 한해 길 위의 학습 마무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 휴먼라이브러리였다. 

제주 로드 스쿨의 한 때(왼쪽)와 모두가 완주한 섬진강 자전거종주(오른쪽)(ⓒ송강고)
제주 로드 스쿨의 한 때(왼쪽)와 모두가 완주한 섬진강 자전거종주(오른쪽)(ⓒ송강고)

 

생애 창업 공방교육… ‘크리에이터’ 키운다

송강고는 ‘생애 창업 공방교육’을 표방하고 있다. 교과수업과 공방교육이 교육과정의 두 기둥을 이룬다. 일반 과목도 배우고, 미래산업 분야도 탐색할 수 있게 한 것. 이 체제는 ‘한국 현실에 맞는 교육과정을 만들자’는 고민에서 탄생했다. 일반 공교육과 함께 가면서 학생들이 현실세계를 구체적으로 접하고 자기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게 했다. 인공지능(AI)수학을 가르치는 등 일반교과도 창의적 방식을 지향하고 있다.

공방교육은 크게 3개 분야다. 첨단공방(메이커스페이스, 신재생에너지, 3D, 드론, AI, 광산업 등), 감성공방(디지털미디어, 애니메이션, 음악창작, 디자인, 웹툰, 일러스트, 다큐멘터리 및 영화 제작), 전통공방(목공예, 도자기, 금속공예, 천연염색 등) 교육이 진행된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다양한 민간 전문가 20여 명이 ‘산학교사’로 참여해 공방교육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민과 관의 협업형 학교다. 송강고가 말하는 ‘창업’은 구체적인 직업으로서 창업뿐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진로와 기술 등을 포함한다. 

기존 대안학교들이 주목해온 치유와 자기성찰 기능도 갖고 간다. 즉 교과, 창업, 치유의 세 요소가 어우러진 학교다. 거의 매월 진행된 로드 스쿨을 비롯해 휴먼라이브러리·상상 공작·생애 창업 프로젝트 모두 이 세 측면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존 공립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거나 좀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던 학생들이 주로 송강고를 찾아왔다.

유자청을 만드는 학부모들(위)과<br>​​​​​​​교실 테라스가 모두 연결된 본관동(아래)
유자청을 만드는 학부모들(위)과
교실 테라스가 모두 연결된 본관동(아래)

1년 과정을 모두 마친 지금, 학생들은 대체로 만족하는 것 같다. 지필평가는 학기 말에 치르는 기말고사뿐인데 과목당 2~6문항의 논술형이다. 선다형이나 단답형 문제는 없다. “(논술형은 까다롭지만) 사실 그런 방식이 맞다”고 학생들도 수긍한다. 목공 담당 강성 교사는 “프로젝트를 마칠 때마다 학생들이 크게 성장하는 게 보인다. 서로 협업하면서 소통하고 대화하는 기술이 늘고 있다”고 말한다.

자치력도 나날이 자랐다. 학생 모두가 참여하는 담쟁이회(학생회)는 ‘학생시민생활협약’을 직접 만들고 준수하고 있다. 얼마 전, 학생들은 학교 근처 로컬푸드 매장에서 무분별하게 군것질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담쟁이회는 ‘주 2회 이내, 정해진 시간에 명부를 쓰고 다녀오자’고 약속했다. 학교가 제시한 규정이 아니라 ‘우리들이 함께 만든 약속’이기에 자발성을 더욱 발휘하게 된다.

학생들이 자기다운 진로 찾고
고교만 졸업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 살아가는 능력 갖추게 하자

2학기 들어 학부모회도 활발해졌다. 제주 로드 스쿨로 마감한 1학기는 큰 여운을 남겼고, 여름방학이 끝나자 학부모들도 서로 소통하고 싶어했다. “신생학교에 보내놓고 내심 불안해했었는데, 학부모들이 학교에 신뢰를 갖게 됐기 때문”이라고들 말한다. 학부모들의 단체채팅방은 아이들의 변화상을 나누느라 분주하다. 12월 9일 송강고에서는 휴먼라이브러리 결과공유회에 이어 유자청 담그기 행사도 열렸다. 학부모들이 연말을 맞아 학교 인근 봉산면 독거어르신들에게 유자청을 전하기로 한 것. 논의는 더 이어졌다. 폐교된 봉산초 양지분교 터가 송강고로 재탄생하기까지 도와주신 교육계 관계자분들에게도 유자청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판이 커졌고, 학부모 절반 가량이 참여했다.

 

“올해는 40% 완성, 3년 내 80%가 목표”

송강고는 학년당 15명, 총 45명 정원의 작은학교다. 첫해인 2021년도는 25명(1학년 15명, 2학년 9명, 3학년 1명)으로 한해살이를 마쳤다. 2년차에 들어서는 지금, 선명완 교장은 ‘3개년 그림’을 이야기한다. “학교가 틀을 잡는 데는 3년이 필요하다. 개교 준비부터 지금까지는 밑그림을 그린 시간이었고, 대략 40% 정도 완성된 상태로 본다. 2년차는 70% 정도, 3년차에는 80% 정도 완성해야 한다. 나머지 부족한 점을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명완 교장. <br>​​​​​​​학생들이 나무로 만들어준 교장선생님 캐리커처
선명완 교장.
학생들이 나무로 만들어준 교장선생님 캐리커처

선명완 교장은 구성원들 간의 토론과 논쟁, 때로는 고성이 오가는 싸움까지를 모두 불가피한 과정으로 보고 있다. 매년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해봐야 하고, 민주적인 의견 조율이 꼭 필요하기 때문. 예상대로 개교 첫해는 치열했다. 선 교장은 고유 권한인 인사권만 빼고 학교 운영에 관한 모든 것을 교직원들이 논의해 함께 결정하게 했다. 이른바 공동경영이다. 송강고 교사진은 일반교사 9명, (상주하는) 산학교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일반교사들은 공립대안학교에 꿈을 갖고 지원해 찾아왔고 모두가 각자의 비전을 갖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고성이 오갔을지 몰라도 송강고의 첫해는 전체적으로 안정적으로 보인다. 여기엔 개교 준비부터 이끌었던 선명완 교장의 역할도 컸다. 그는 대안교육특성화학교인 강진청람중학교 교장이었다. 2019년부터 송강고 개교 준비 추진위원장을 겸임하며 산파 역할을 했다. 덕분에 강진청람중의 운영 노하우도 송강고에 녹아들었다.

“송강고는 특성화고냐 일반고냐고 외부에서 묻기도 하는데, 우린 기존 매뉴얼을 따라가는 메이커maker가 아니라 자기 매뉴얼을 만드는 크리에이터creator 양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교가 스스로 공교육의 창조적 괴짜가 되자, 혁신은 혁신학교에서 하고, 우리는 더 나아가자, 이렇게 추구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이 고교만 졸업해도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능력과 이유를 갖추게 하고 싶다.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학생에게) 독립운동과 같다. 여행프로그램을 많이 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송강고가 추구하는 ‘창업’은 기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 이상의 진로 개척을 의미한다.
송강고가 추구하는 ‘창업’은 기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 이상의 진로 개척을 의미한다.

2년차 송강고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일은 건물 증축이다. 제2기숙사, 교실 증설이 필요하다. 공방교육이 이뤄지는 공방동은 특히 공간이 협소하다. 강성 산학교사는 “장비들은 잘 갖춰졌는데, 행위들이 이뤄질 공간이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송강고는 시설 증축 내용을 담은 발전계획을 전남도의회에 제출한 상태다. 실험실습은 공방동, 창작은 본관동으로 세분화하고, 일반 교과수업은 숲속 목조건물을 지어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시설 증축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는 2023년도부터 6학급(학년별 2학급, 정원 90명) 체제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해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전학 문의가 쇄도했고, 2022년도 신입생 모집은 2.1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입학전형 일자가 늦은 편이라 “여기 떨어지면 갈 데가 없을 것 같아” 지원하기 어렵다는 토로가 많았다. 올해부터는 입학전형을 앞당기기로 했지만, 교육수요 충족을 위해서는 90명 정도가 적절해 보인다.

숲이 특히 아름다운 교정(ⓒ송광고)
숲이 특히 아름다운 교정(ⓒ송광고)

갈 길도 멀고 할 일도 많은 이 신생학교는 교정이 특히 아름답다. 학교를 둘러싼 숲은 ‘아름다운 학교숲’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숲을 배경으로 건물들은 편안하게 땅을 가로지르고, 교문은 소박한 제주 정낭을 닮았다. 선명완 교장은 “리모델링을 하면서 건물 높이를 좀 낮췄다. 권위적이지 않은 건물이길 바랐다. ‘학교를 휴양림처럼 여기게 하자, 학생들이 자연치유를 할 수 있도록’이 목표였다.” 학생뿐 아니다. 숲과 캠퍼스가 예뻐 학부모들이 산책하러 일부러 찾기도 한다. 

무엇보다 교실마다 창밖으로 넓게 낸 테라스가 가장 인상적이다. 각자의 교실에 있다가 창밖으로 나오면 모두가 테라스로 연결되고, 만나게 된다. 광장 같은 테라스에서 조망하는 송강고의 2년차, 기대가 된다.

글 이혜영  사진 최성욱

 

 

 

다시 돌아가도 나는 송강고, 찜!”

송강고 재학생들의 생생 목소리

송강고 기숙사동 앞에 선 송강고 학생들. 왼쪽부터 정서윤, 배준혁, 김성천, 박세훈 학생
송강고 기숙사동 앞에 선 송강고 학생들. 왼쪽부터 정서윤, 배준혁, 김성천, 박세훈 학생

 

정서윤(1학년)

구례에 살다가 송강고 입학하면서 담양으로 이사 왔다. 인문계고를 다니다가 1년 쉬고 입학했다. 입시 준비에 다소 막막한 감이 있지만, 현실 직업과 삶에대해 생생하게 배우니 참 좋다. 미술에 관심이 있었는데, 여기 다니면서 동물 쪽, 가령 수의테크니션 쪽으로 관심사가 바뀌었다. (학교에서 강아지 세 마리를 키우고 있고, 서윤 학생도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중이다.)

배준혁(2학년)

광주에서 왔다. 일반 학교가 맞지 않아 자퇴하고 싶었는데, 어른들 부탁에 고등학교 1학년까지 마쳤다. 2학년 이틀까지 다니고 그만뒀고, 송강고를 알게 됐다. 다시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1학년 때 자퇴해 1년 쉬고 (송강고 개교에 맞춰) 1학년으로 정식 입학하고 싶다. 공방동 공간이 더 커지면 좋겠다. 교장샘이 ‘자동차 1대는 분해해보게끔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김성천(1학년)

난 광주 사람인데 광주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다. 대안특성화학교인 강진청람중을 나왔으니까. 그래서 휴먼라이브러리도 중학교 때 미리 맛을 봤다(웃음). 창업 관련 교육이 좋은데, 추세에 맞는 공부법도 더 자세히 알려주면 좋겠다. 가령 이 아이템으로 2년 후 창업한다면 전망이 어떨지, 같은 것. 6년 내내 대안학교를 다니는 셈이라서, 다른 학교살이도 좀 궁금하다. 

박세훈(1학년)

경기도 평택에서 일반 중학교를 졸업하고 왔다. 친가 외가가 모두 전남이라 이곳이 낯설지 않다. 주변에서 대안학교 왜 갔냐고들 묻곤 하지만, 다니는 내가 만족하면 된다. 다시 선택해도 여기로 올 것 같다. 제주 9박10일 걷고 팀별 활동을 하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해졌다. 휴먼라이브러리 일정도 좀 더 길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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