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바다의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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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바다의 우유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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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으로 조개찜을 먹기로 했다. 초겨울 찬 바람은 조개를 먹을 때가 됐다는 신호였다. 집안일로 최근 몸과 마음 고생이 많은 아내의 기분도 새로운 음식으로 풀어주고 싶었다. 동네 음식점에서 3단 조개찜을 시켰다. 지난 겨울 이후 처음으로 조개를 대하는 시간이었다.

찜기 맨 위쪽 뚜껑을 열자 가리비 모둠이 나왔다. 수증기에 익혀진 가리비의 속은 아직 철이 이른 듯 씨알이 엄지손톱보다 작았다. 둘이 천천히 먹는 데도 가리비 한 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둘째 단에는 모시조개가 들어 있었다. 특유의 쫀득함은 반가웠지만, 신선함이 조금 아쉬웠다. 모시조개를 절반 정도 먹고 급히 마지막 단을 열었다. 

셋째 단은 굴이 차지하고 있었다. 순간 ‘그래 굴이 있어야 제대로 겨울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아내의 휴대폰이 울렸다. 장모님이 계시는 요양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택시를 잡아 5분 거리의 병원으로 향했다. 이번 겨울 굴과의 첫 만남이 이러했다.  

장작불에 구워지고 있는 장흥 남포굴(ⓒ마동욱)
장작불에 구워지고 있는 장흥 남포굴(ⓒ마동욱)

이 땅의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굴을 먹어왔다. 한반도 선사시대 패총조개껍질무덤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것이 굴 껍데기라고 한다. 조선시대 한 문헌은, 굴이 강원도를 제외한 7도 70고을의 토산물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의 굴 양식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만큼 굴은 우리 곁에 흔했고, 즐겨 먹던 음식이었다.       

굴은 맛과 영양이 좋다. 크고 단단한 껍질 속에는 바다의 맛이 옹골차게 집약돼있다. 굴은 회, 찜, 튀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되면서도 고유의 맛을 잃지 않는다. 부재료일 때도 특유의 맛으로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건강에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지니고 있어서 완전식품으로 분류되는 굴은 ‘바다의 우유’로 불려왔다. <동의보감>은 ‘먹으면 향기롭고 몸에 보탬이 된다. 피부를 가늘게 하고 얼굴색을 아름답게 한다’고 굴에 대해 적고 있다. ‘바다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라는 상찬도 덧붙여 놓았다.    

서양에서 굴은 매우 귀한 몸이다. 특별한 날, 각별한 사람과 비싼 레스토랑에서 고급 와인이나 샴페인과 함께 레몬즙, 식초, 핫소스 등을 곁들여 먹는다. 멋있어 보이지만 먹는 양은 매우 적다. 생굴을 숟가락 가득 떠먹거나 굴국밥 식으로 푸짐하게 섭취하는 한국인의 모습을 문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서양인들이 적지 않다. 서양에서는 굴 1개에 5,000원 정도 한다니 ‘충격’이 놀랄 일도 아니다.   

신안수산연구소에서 시범양식에 성공해 지난 여름 첫 출시한 개체굴(ⓒ신안군)
신안수산연구소에서 시범양식에 성공해 지난 여름 첫 출시한 개체굴(ⓒ신안군)

맛도 영양도 으뜸인 굴을 넉넉하게 먹을 수 있는 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운이다. 겨울마다 굴 몇 망씩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몸을 가진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차고 삭막한 겨울을 마뜩잖게 여기면서도 늘 기다리는 것은 아마도 굴 때문인 것 같다.

딱 하나 굴에게 아쉬운 게 있다면 여름에는 먹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름철 굴이 산란에 들어가면 독을 품고 맛도 떫어지기 때문이다. 굴이 그리워도 다시 찬바람이 찾아올 때까지 꾹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이런 아쉬움도 이젠 묵은 감정이 될 것 같다. 개체굴single oyster이 양식되기 시작하면서 굴은 사철 맛볼 수 있는 음식 반열에 올랐다. 전남에서는 신안과 고흥에서 개체굴이 양식되고 있다. 특히, 신안군은 어민 소득 향상과 청년일자리 창출 등을 목표로 개체굴의 연구와 종자 생산에서 양식·유통·교육까지 공을 들이고 있다. ‘신안1004굴’이라는 고유 브랜드로 몇 달 전에는 백화점 레스토랑에 납품까지 마쳤다. 일반 굴에 비해 가격은 비싸지만 맛과 향과 크기에서 경쟁력이 있는 신안 개체굴이 우리의 식탁에 오를 날도 머지않았다. 

이번 겨울, 첫 굴을 만난 그날 저녁에 장모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당신의 생신을 맞은 날이었다.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병원에 생신 떡을 가져다드렸다. 코로나 사태로 먼발치 병상에 의식 없이 누워계신 모습만 보고 병원을 나왔다.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 장모님의 치아가 변변찮아 무엇이든 편히 드시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굴이라면 조금은 편하게 많이 드실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 기회가 영영 없어져 섭섭하다. 어김없이 찬바람이 불어오고 다시 굴을 마주할 때면 장모님이 떠오를 것 같다. 이래서 음식은 기억인가 보다.

 

글 노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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