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문화재 발굴하는 전남문화재연구소

‘또 영락이네.’ 부풀었던 기대가 바람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다. 이미 2호 석곽에서 영락, 그러니까 유리구슬과 얇은 금속판 장식들이 꽤 나온 터다. ‘역시 다 부서졌겠지.’ 비관적인 말이 자꾸 입안에서 맴돈다. 1호 석실에서 여기까지 휩쓸려 왔다면 분명 가루가 됐을 것이다. “이것 좀 보세요!” 다급한 목소리에 튀어오르듯 다가간다. 금동관 조각이다. 비록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이 남아있는 꽤 큰 조각이다. 언뜻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같아 보인다. 일제강점기 이후 100년 만인가…. 온몸의 잔털이 솟는다.

전남문화재연구소 송장선 연구원의 회상이다. 그는 영암군 내동리 쌍무덤 발굴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연구소는 2018년부터 쌍무덤 연구를 시작했다. 3년의 시간동안 고생한 끝에 2020년 4월, 5~6세기 마한의 물건으로 보이는 금동관(편)을 발견했다. 마한의 강력한 수장이 영암에 터를 잡고 통치했음을 증명하는 유물이다.

발견된 유물을 살펴보고 있는 연구원(ⓒ조현아)
발견된 유물을 살펴보고 있는 연구원(ⓒ조현아)

전남문화재단 소속 전남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 조사와 연구, 발굴 등을 하는 수행기관이다. 그중에서도 매장된 문화재를 찾는 일을 주로 한다. 매장문화재 연구는 지표조사부터 시작된다. 역사기록, 향토사 연구자료, 기존 조사기록 등 문헌정보들을 토대로 지형, 지질, 행정구역 등 자연지리, 인문지리적 환경을 꼼꼼하게 살펴 문화재의 성격을 가늠한다. 현장조사는 보통 육안으로 파악한다. 최근에는 지오레이더나 전자탐침봉, 항공촬영 등 첨단장비를 투입하기도 한다. 

연구원들은 매장문화재에 대한 사전조사뿐 아니라 민속자료와 고유지명, 전설, 민담 등 인근의 유무형 자료들을 수집한다. 그러고 나서야 발굴에 들어간다. 발굴은 학술정보를 얻기 위해 선제적으로 추진하거나, 건설·개발 등이 진행되기 전 실시한다. 내동리 쌍무덤 발굴은 학술목적으로 접근한 대표적인 사례다.

영암군 내동리 쌍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 왼쪽이 100년 만에 발견된 금동관 세움장식이다.
영암군 내동리 쌍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 왼쪽이 100년 만에 발견된 금동관 세움장식이다.

 

문화재 발굴이 곧 역사의 발견

광주전남혁신도시 개발사업이 진행됐던 나주시 산포면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조선시대 기와가마터 등이 발굴됐다. 주암댐 건설로 수몰된 순천시 송광면 마을에서는 선사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에 이르는 토기와 석기들이다. 장성~담양간 북광주IC 신설공사 부지에서 삼국시대 대규모 취락지가, 화순~이양간 도로 확포장 공사를 앞두고 구석기 석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발로 인해 사라지기 전 이뤄진 발굴들이다.

나주 영동리 마을주민들은 대숲을 개간하던 중 밭이라 생각했던 곳이 고분임을 발견했다. 고대 영산강 세력과 신라 관계의 실마리가 되고 있는 영동리 고분군이다. 순천시 승주읍 평중리, 동네 사람들은 어느 날 쉼터를 잃었다. 기분좋은 분실이었다. 마을 어귀에서 쉴 곳이 되어 주던 당산나무 바위가 청동기 시대 지석묘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순천시 주암면 어왕리, 두 주민은 문화재 마당을 가지게 됐다. 이웃간 담장으로 여태 사용되고 있던 거대한 돌이 알고보니 고인돌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지근거리에, 어쩌면 우리가 지금 밟고 서 있는 땅 아래에도 유물이 잠자고 있는지 모른다. 전남문화재연구소처럼 매장문화재를 조사하는 전문기관은 전국적으로 173개가 있다. 약 2,700명이 일한다. 이중 전남에는 10여 개의 기관이 존재한다.

하늘에서 본 영암군 내동리 쌍무덤
하늘에서 본 영암군 내동리 쌍무덤

지난해 매장문화재 발굴이 진행된 곳은 전국적으로 4,294곳. <e-나라지표>의 문화재 발굴조사 현황에 따르면 매년 지표·발굴조사 건수는 늘고 있다. 공업단지, 택지개발, 도로건설 등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전남은 경상도랑 비교하면 전문기관이 적은 편이에요. 거기는 45개 정도 있거든요. 신라·가야문화권에 대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니까요.” 송장선 연구원의 말이다.

경남은 지난 30여 년간 가야 유적을 꾸준히 발굴·연구해왔다. 송 연구원은 “경상권에서 문화재 발굴이 더 활발했기 때문에 관련 산업이 발전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문화재 연구·발굴이 곧 역사의 발견이에요. 전남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는 문화재 연구가 중요해요. 다행히 최근에는 전남지역 마한문화권의 문화재 발굴이 활발해요. ‘특별법’ 통과 덕분이죠.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문화재 발굴은 정부 지원이 크게 작용하니까요.”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팔할

송 연구원이 말한 ‘특별법’은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이다. 이 법은 마한역사문화권을 포함하고 있다.(당초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문화권 등 4개 권역이었다.) 이를 토대로 전남은 마한문화유적 세계유산 등재, 대규모 마한문화권 정비사업 추진, 국립마한역사문화센터와 마한유적발굴체험관 건립, 마한역사테마길 운영 등을 계획하고 있다.

마한은 그동안 학술적으로 베일에 싸여 있었다.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과 가야 4개 문화권이 널리 인정된 근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이다.(두 책은 우리 역사를 신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때문에 마한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려왔다. 1917년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 9호분에서 화려한 금동관이 발견된 후 광주·전남·북 지역에서 마한 관련 유적이 꾸준히 발굴됐지만, 영산강유역고대문화권으로 표현되어 왔을 뿐이다. 임영진(마한연구원장), <예향> 304호. ‘잃어버린 역사 마한을 깨우다’ 수록 글 참고

전남지역 마한 연구가 급물살을 타자 학자들의 기대도 커졌다. 영산강 유역을 기반으로 한 마한은 독자적인 경제·문화를 일궜다. 백제에 흡수되지 않은 ‘마지막 마한’이 영산강 유역이었다. 국내 최대규모 장고형 고분 ‘해남 방산리 장고봉 고분’(82m), ‘함평 예덕리 고분’ 등은 영산강 유역의 마한이 해상무역을 통해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활약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원들이 쌍무덤을 빙둘러 판 주구(도랑)에서 발견된 토기들
연구원들이 쌍무덤을 빙둘러 판 주구(도랑)에서 발견된 토기들

현재 전남지역 마한 유적은 모두 751곳(국가지정 4곳, 도지정 33곳, 나머지는 비지정)이다. 308곳은 발굴조사가 이뤄졌거나 이뤄지고 있고, 나머지 443곳은 미발굴 상태다. 

“문화재는 과거로부터 건너온 타임캡슐 같은 거예요. 후대에 전해지기 위해서 엄청난 시간을 견뎌낸 기록들이에요. 우리는 과거를 조우하는 기쁨에 중독된 사람들이죠. 저도 처음 나간 현장에서 주먹도끼를 팠는데, 십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제가 구석기 전공이거든요.”

송 연구원은 지난 1년 중 300일 이상을 이곳 쌍무덤에서 보냈다. 질릴법도 한데, 쌍무덤, 주먹도끼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빛나고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문화재 발굴은 현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팔할이다. 뜨거운 태양과 매서운 칼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비바람에 맞서 싸우는 일이다. 

“대개 유물이 발굴된 후에야 언론에 노출되다 보니 연구원들이 주로 붓만 들고 일하는지 아셔요. 그런데 삽 드는 일이 더 많죠. 여기 현장도 저희가 다 손으로 판 거에요.(하하)”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 질퍽한 땅을 뛰어다니다 황토색이 되어버린 운동화, 주차장 구석에 차려진 컨테이너 휴게실이 연구원들의 수고를 가늠케 한다. 2~3년 동안 공들여 수십미터 씩을 파내려갔지만 허탕인 경우도 있다.

전남의 미발굴 마한유적 443곳은 아직 열리지 않은 타임캡슐의 규모다. 수많은 가능성들이 웅크리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마한 연구는 이제 출발이다. 길을 찾은 고고학 연구자들의 탄성이, 전남 곳곳을 누비는 역사 꿈나무들의 발자국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하다.

 

글 조은애  사진 전남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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