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표] 금기의 역사, 73년 만에 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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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표] 금기의 역사, 73년 만에 풀리다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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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표_ 여·순10·19에서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까지

“여·순사건은 분단사의 마지막 금기이자, 민족사의 과제였다.”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의 말처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조용했습니다.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기념하며 1948년 10월 19일부터 오늘까지의 시간을 요약해 담았습니다. 꺼내기 망설였던 우리의 역사를 마침내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진실을 바로 세우고자 연대하고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목과 갈등을 넘어 평화와 해원으로 나아간 이들의 발자국들을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사진. 칼 마이던스
사진. 칼 마이던스

1945

08.15 해방

 


1948

02.07 남조선노동당, 민주주의민족전선 ‘2·7 구국투쟁’ 전개
        남한의 단독선거와 단독정부 수립 반대
        미 군정, 남로당 불법단체 선포

04.03 제주4·3항쟁 발생, 미군 진압 개시

05.04 여수 14연대 창설

05.10 남한 단독 총선거 실시

08.15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

10.19 여순항쟁 발발
07:00 미, “LST 19일 20시 출항하라”는 명령 하달
21:00 여수 14연대 봉기, 무기고와 탄약고 접수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파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진정한 인민의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 - 제주토벌출동거부병사위원회, <애국국민에게 호소함> 중

10.20

01:30 봉기군, 여수 읍내 진입시작, 관공서 및 주요기관 검거
06:00 봉기군, 여수 시내 장악
오전  봉기군, 여수·순천 인근 지역 응원 부대 파견
        이승만 정부, 언론 통제
        미임시군사고문단 정부 비상회의 소집
15:00 인민대회 개최(약 1~2천명 운집)
        봉기군, 순천 시내 점령

10.21 
육군총사령부, 반군토벌전투사령부 광주 설치, 봉기군토벌작전계획 수립

10.22 
언론, ‘국군 제14연대반란’으로 보도 
이승만 정부, 여수·순천 지역 계엄령 선포
순천 서면 학구에서 토벌군과 봉기군 첫 전투
봉기군, 외곽지역(지리산, 백운산)으로 퇴각

10.23
09:30 토벌군(부산 제5연대), 여수상륙 시도
부산 해군 LST함 선상 박격포 공격
11:00 토벌군, 순천 시내 전역 탈환
오후  순천 전역 봉기군 협력자 색출

10.24
오전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등 21명 처형
        칼 마이던스 등 기자단 순천 도착, 취재 시작

10.25 대한민국 국무회의, 여수·순천지역 계엄령 선포

 

자백을 받아낼때까지 그 사내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때렸다가…자백을 한 다른 사람 전부와 똑같이 운동장 저쪽에 있는 호 속에 쳐 넣어지고 그곳에서 총살되었다. 이름도 죄명도, 누가 심문하고 누가 사형을 집행했는가도 기록되지 않고 그렇게 소멸되었다. …그러는 동안 그 광경을 여자들과 아이들이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괴로운 체험 가운데에서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총살되기 위해 끌려가면서 완전히 침묵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한마디의 항변조차 없었고, 동정을 바라는 울부짖음도 없었고 신의 구원을 바라는 어떤 중얼거림도 없었다. - 칼 마이던스

10.26 
토벌군, 무차별 포사격, 여수 시내 화재 발생
토벌군, 여수 시내 주요 거점 장악
봉기군, 광양·구례 방면으로 대부분 퇴각

10.27 
오전  이승만 정부, ‘민간인 반란’으로 발표
14:00 토벌군, 여수 시내 주요 거점 장악
오후  토벌군, 여수 전역 협력자 색출

10.28 제14연대 해산

11. 초 부역혐의자 집단학살
부역혐의가 있는 민간인들을 종산국민학교에 수용하고, 이중 수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만성리에서 집단학살함 

11.23 전남 동부지역 초토화작전 시행
이승만 정부 미군정의 묵인 아래 초토화작전 시행. 구례 지리산, 광양 백운산, 순천 조계산 등에서 무고한 민간인들 대규모 학살

12.01 <국가보안법> <임시우편단속물법> 발효
이승만 정부, 군대, 교육계, 법조계 등 사회 전반에서 대대적인 좌익 색출

 

여순민중항쟁으로 이승만은 강고한 우익체제를 구축했다. 예비검속, 연좌제를 실시했고, 보도연맹을 창설했다(30만 명 이상을 죽임). 군대로부터 완벽히 좌익세력을 청산하는 숙군사업을 완성했으며… 모든 변화를 구축하는 계기가 바로 여순민중항쟁이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민중항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공권력에 대한 공포감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불신감만 키웠다. 우리는 너무 몰랐다. 우리는 너무 조용했다. - 도올 김용옥 <우린 너무 몰랐다 :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항쟁> 중


1949

01.13 제4차 고등군법회의 사형 언도자 125명 집단학살


1950

07.16 보도연맹 사건, 애기섬 학살
한국전쟁 발발 직후 국군철수과정에서 생긴 민간인 학살 사건. 국민보도연맹은 좌익전향자들을 중심으로 만든 조직인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부·경찰은 초기 후퇴과정에서 여수보도연맹원을 총살 후 바다에 버렸다. 엄마섬, 애기섬에 끌려간 이들만 120명이 넘는다고 한다.


1960

05.23 제4대 국회 양민학살진상조사특위 구성


1961

05.16 박정희 군사정부, 국회특위 자료 폐기(군사정부 포고령 제18호)


1983

소설 <태백산맥> 연재 시작


1995

06.01 여수·여천지역사회연구소 출범
1997년 1월 7일 (사)여수지역사회연구소로 명칭이 변경됐다. 여순사건과 관련해 피해자실태조사, 자료집 발간, 위령제, 심포지엄 등을 하고 있다.


1998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 정부’ 출범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움직임 본격화
 
10.12 희생자 암매장 학살지 전국 최초 발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여수KBS, 여수MBC, 호명동 일대 발굴 시작, 총탄구멍 난 두개골 포함 5구 유골 발굴 

10.19 <여순사건 실태조사 보고서> 발간


1999

09.14 호명동, 봉계동 장개골에서 엎드러진 채 죽은 두개골 1구 외 유골잔해 다량 발굴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서울MBC <이제는 말할수 있다> 제작팀


2000

01.12 제주 4·3특별법 제정(2014년 국가추념일 제정)

10.19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지역민의 명예회복을 위한 전남 동부지역 공동대책위원회’ 구성,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 촉구 청원서 국회 제출(시민 4천여 명 서명 참여)


2001

04     16대 국회 김충조 국회의원 ‘여순사건 특별법’  첫 발의 (2004년 폐기)

06.20 여순사건유족연합회 출범(여수, 순천, 구례유족회)


2003

10.31 노무현 대통령, 제주4·3사건 공식 사과


2005

05.31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 제정

12.01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출범


2006

04.01 순천 여순항쟁탑 건립(순천팔마운동장)
순천 시민의 성금과 순천시 지원으로 마련되었다. 설계는 양해웅, 글씨는 신영복, 앞뒷면 글은 박두규, 제작 기획은 위계룡이 맡았다. 탑 아래 받침돌은 한반도, 위아래로 갈라진 돌의 모양은 좌우이념 대립과 한반도 분단, 위로 뻗은 여러 돌은 희생자의 넋과 통일 의지를 상징한다. 초기 명칭은 ‘여순사건위령탑’이었지만, 2020년 5월 ‘여순항쟁탑’으로 바꿨다.


2008

07.07 순천 서면 구랑실재 유해발굴

07.26 순천 매곡동 유해발굴 개토제


2009

01.08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희생자 명예를 회복할 특별법 제정 국가 권고

09.13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 건립(여수)
정부 차원의 여순사건 관련 위령 시설이 전무한 상태에서 여수시가 여순사건유족회와 여수지역사회연구소의 요청을 받아들여 설치했다. 위령비의 전면에는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여순사건이 일어난 날 1948년 10월 19일과 비를 세운 날짜 2009년 10월 19일이 적혀있지만 끝내 비문은 새기지 못하고 ‘말줄임표’가 대신하고 있다.


2010

12.30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해산
2005~2017년 여순 관련 사건 730건을 신청받아 712건 처리

 

강태효 외 123명이 여수시 일대에서 국군 소속 부대원, 수도경찰대, 여수경찰서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사살되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진실이 규명되었으므로 ‘진실규명’으로 결정한다.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반기 보고서 6권, 413쪽


2011

01     18대 국회 김충조 의원 등,‘여순사건 특별법’ 재발의(2012년 폐기)
 
10     순천 희생자 유족들, 포고령 위반 및 내란혐의 유죄판결 재심 청구

 


2013

02     19대 국회 김성곤 의원 등,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2016년 폐기)

 


2016

03.09 ‘순천시 여수·순천 10·19사건 등 한국전쟁 전후 지역민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

 


2017

04.06 20대 국회 정인화 의원 등,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2020년 폐기)

 


2018

04.12 여수시, ‘여수·순천 10·19사건 지역민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등에 관한 조례’ 제정
광양시는 2018년 11월, 고흥군은 2019년 10월 ‘여순사건’ 관련 조례 제정

07.04 순천대 여순연구소 출범
순천시 여순사건구술채록 사업을 수행하며 피해자, 유가족 등의 증언을 채록하고 있다. 잡지 <시선 10·19>를 발간하고, 학술대회 등을 통해 여순사건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10.01 20대 국회 이용주 의원 등,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2020년 폐기)

10.20 여순항쟁 관련 첫 오페라 <1948, 침묵> 첫 공연

11.14 20대 국회 윤소하 의원 등,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2020년 폐기)

11.19 20대 국회 주승용 의원 등,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2020년 폐기)

 


2019

01.13 20대 국회 김성환 의원 등,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2020년 폐기)

02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시민대책협의회 출범
한국진보연대를 중심으로 민주노총·전농·민변·주권자전국협회·가톨릭농민회 등 60여 개 시민사회단체 참여

03.21 대법원 전원합의체, 여순사건 재심 개시 결정

04.18 여순10·19 재심 대책위원회 출범
대법원이 ‘여순사건’ 재심을 ‘결정’하면서 순천 법원에서 열릴 재심 재판을 앞두고 전남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박병섭 전 중등학교 교사와 주철희 박사·박소정 전 순천YMCA 이사장이 선임됐다.

06     여순사건서울유족회 출범

07     여순사건 시민추진위원회 구성

12     여순사건 미공개 사진집 <1948, 칼 마이던스가 본 여순사건> 발간

 


2020

01.20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사건 무죄 첫 선고
철도기관사로 일하다 처형당한 고 장환봉 씨 사건. 1948년 10월 반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법원에서 내란과 국권 문란죄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형이 집행됨.

이번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한다…여순사건 희생자들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단한 절차를 더는 밟지 않도록 특별법이 제정돼 구제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재판부

07.28 21대 국회 소병철 의원 등, ‘여순사건 특별법’ 발의(국회의원 152명 공동 발의)

10.19 제72주년 합동추모제(최초로 민·관·군·경과 피해자 유족들 참석)

10.05 여순10·19 항쟁 역사관 개관(순천)
사단법인 여순사건 순천유족회 2층 위치. 여순사건과 관련한 기록물이 18개 주제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11.26 ‘전라남도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 조례’ 제정

 

제정이 늦어진 이유는 뿌리 깊은 적색 공포증 때문이에요. 이승만은 여순을 적색 지대로 표현했고, 14연대를 반란군대로 낙인찍었어요. ‘반란 사건에 무슨 특별법을 만드느냐’는 반감이 수십년 동안 사회 전반에 깔렸었지요. - 이영일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2021

06.29 ‘여순사건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16대, 18대, 20대 국회를 거쳐 21대 국회에서 드디어 통과됐다. 
여순사건 73년 만이다. 첫 발의부터 20년이 걸렸다.
여순사건 특별법은 재석의원 231명 중 225명이 찬성했다. 

08.19 여순10·19범국민연대 출범

09.10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역사바로세우기 범국민위원회 발족

10.19 영화 <동백>개봉, 전국 상영

여수·순천 10·19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이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민주주의 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1조

참고자료
·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여순사건 답사자료-사건전개 일지’
· ‘여순항쟁기록전’ 주철희 박사 전시자료(2018.9.29.~10.27.)
· 뉴시스 ‘[일지] 여순사건 발발·특별법 제정까지’(2021.6.29.)


함께보면 좋은 기록물 (유튜브에서 검색하시면 볼 수 있습니다)
· KTV 영상기록 <진실 그리고 화해>(2020. 8. 13.)
· KBS광주 <여순사건 60년 잃어버린 기억> (2021.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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