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여순10·19-제주4·3 평화인권교육 참여학생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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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여순10·19-제주4·3 평화인권교육 참여학생 후기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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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현(순천팔마중)

잘 몰랐던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 배우고 싶어서 이번 제주4·3-여순10·19 평화인권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한림여중 공동수업은 재밌었다. 여순10·19와 제주4·3을 나타내는 가면 만들기 수업이 신선했다. 강춘희 선생님의 강의는 슬펐고 생생했다. 제주4·3을 겪은 강춘희 선생님의 이야기가 마치 어제처럼 선명했기 때문이다. 급식에 나온 주먹밥 2개와 감자, 고구마를 보고 우시는 강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따라 울 뻔했다. 

제주 한림여중의 수업처럼 우리 전남에서도 재밌고 다양한 방식의 역사 교육이 진행되길 바란다. 역사 시간에 공예나 미술품을 만들면 학생들이 흥미롭게 참여하지 않을까. 급식 체험도 말이다. 더 많은 학생들이 여순10·19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제주4.3추모비 앞에서 헌화하고 있는 전남의 학생들

 

박혜준(제주 한림여중)

‘여수 밤바다’, ‘제주도의 푸른 밤’ 같이 여수과 제주의 아름다움에 관한 노래들은 많고 또 잘 알려져 있지만,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는 노래들은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아닌 그 속의 역사와 숨겨져 있는 진실을 알려 주는 노래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다. 그런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데 앞장설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순10·19 희생자를 기리는 위령제에서 유족들을 위한 편지 낭독을 들으며 가슴아팠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이별의 슬픔도 나눌 사람이 없었다는 그 마음이 안타까웠다. 이분들을 위해서 더 성장해야겠다는 다짐을 되뇌었다. 다음에 뵐 때에는 달라진 사회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문석형(순천팔마중)

제주4·3특별법은 그냥 제정되지 않았다. 국가의 사과와 인정을 위해 유족회, 재단 등을 비롯한 지역사회 많은 분들이 싸워주셨다. 그 노력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 하셨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우리가 각자 진실을 찾는 손전등이 되어 역사를 비추고 알리는 것이다. 한림여중처럼 여순10·19와 제주4·3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친구들과 기억하고 싶다.

 

홍일낭(제주 한림여중)

이틀이라는 시간,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여러 현장을 답사하고 전시를 감상하며 깨달은 점이 있다. 바로 ‘여순10·19를 기억하고 알리자’이다. 기억하지 못하면 알리지 못하고, 알리지 못하면 발전하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정윤수(여수 안산중)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다(T.S 엘리어트).”희대의 비극과 그에 따른 피해는 우리가 구사하는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다는 의미다.

문자로 접한 제주4·3과 여순10·19는 우리 민족의 가슴 아픈 역사였다. 그러나 이번 평화·인권교육으로 듣고, 걷고, 간접 체험하며 ‘나의 일’이 되었다. 유대인 600만 명 학살을 계획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 당시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 신 앞에선 유죄이지만 법 앞에선 무죄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검사는 “생각하지 않은 죄”라고 답했다 한다. 생각하지 않고 저지른 죄 ‘제주4·3’과 상관의 명령대로 하지 않아서 학살당한 ‘여순10·19’…….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학생으로서 공부하고 알려야겠다. 

 

김민주(제주 한림여중)

14연대 주둔지는 왠지 들어가기 전부터 으리으리한 느낌이 들었다.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이 넓은 곳이 무기고였다는 것에,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그 군인들은 그곳에 가득 차 있던 무기들이 같은 민족을 진압하기 위해 쓰일 줄 알았을까, 그런 명령을 받았을 때 얼마나 절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출구 앞에 서 있었다. 14연대 군인들은 제주도민 수만 명의 목숨을 가슴에 품고 이곳을 나갔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장소에 상세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훌륭히 보존되어 있는 만큼 설명도 충분히 되어있으면 좋겠다.

 

김민지(여수 안산중)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 지역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많은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과 ‘제주4·3’을 알고 있는 것처럼 ‘여순10·19’를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김채원(제주 한림여중)

현장 답사를 다니며 제주4·3에 비해 안내 시설이 부족하고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모습이 안타까웠다. 위령비나 위령탑 등이 만들어진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는 것을 들었을 때, 시민들이 마음을 합쳤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정부와 시민들이 협동하여 아픔을 걷어 내길. 제주4·3을 함께 이겨내 주었던 것처럼 나도 여순 시민들에게 힘을 주는 시민이 되길 다짐했다. 우리가 걷는 발자국들이 아픔 없는 미래로 가는 길을 트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순천 여순항쟁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제주 한림여중 학생과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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