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순천10·19 및 제주4·3 ‘평화·인권교육 공감한마당’

제주 중학생들이 여수와 순천을 찾아 여순10·19사건을 배웠다. 지난 봄 여수와 순천 중학생들이 제주를 찾아 제주4·3을 공부했다. 이에 대한 화답 성격이다. 이번 2박3일 일정은 현장답사를 비롯해 관련 전시, 공연, 영화, 세미나가 어우러진 오감체험학습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전남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이 맺은 협약으로 마련됐다. 제주 학생들의 현장답사에 동행했다.

 

만성리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에 추모글을 전하는 제주 한림여중 학생들
만성리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에 추모글을 전하는 제주 한림여중 학생들

지난 10월 18일, 제주 한림여자중학교 2학년 학생들이 여수 만성리를 찾았다. 여수·순천10·19 73주년을 앞둔 날이었다. 아름다운 만성리 해변은 버스커 버스커의 히트곡 ‘여수 밤바다’의 배경이다. 73년 전 이곳에선 민간인 학살이 벌어졌다. 학살지에 세워진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앞에 학생들이 섰다. 긴 비문 대신 말줄임표만 새겨져 있다. 

“60주년 때 세운 위령비입니다. 진상규명도 아득하고, 주민들 사이 이견도 해소되지 않아 결국 점 여섯 개로 침묵했어요.” 박병섭 순천문화재단 이사가 설명했다. 학생들은 제주4·3평화기념관에 있는 백비를 떠올렸다. 아무 것도 적지 않은 비석은 앞으로 밝혀야 할 진실을 의미했다. 제주 백비와 여순 위령비는 꼭 닮았다. 홍세현 학생은 “말줄임표가 과거 원통했던 침묵과 진실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여섯 개의 점을 풀어나가는 게 나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은 전남교육청이 2박3일(17일~19일) 일정으로 마련한 ‘여순10·19 및 제주4·3 평화·인권교육 공감한마당’의 두 번째 날이자 현장답사일. 답사는 하루를 꼬박 채웠다. 아침 8시 30분, 여수 숙소를 출발해 만성리 학살지, 형제묘, 진남관, 14연대 주둔지를 둘러봤다. 순천으로 옮겨가 점심식사 후 장대공원, 순천대, 매산등, 팔마체육관의 여순항쟁탑 참배까지 마치고 나니 오후 5시. 체력 좋은 성인에게도 만만치 않은 코스와 내용이다. 학생들은 어깨를 주무르고 기지개를 켜면서도 눈빛만큼은 종일 반짝반짝했다.

 

제주4·3과 여순10·19는 하나!
손잡은 두 교육청

만성리 형제묘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과 교직원
학생들은 동백꽃 배지를 나눠달았다.

지난 3월 전남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이 여수에서 ‘평화·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제주4·3과 여순10·19를 함께 배우고 알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바탕이 됐다. 한 달 뒤 4월에는 한림여중이 손님맞이를 했다. 여수 안산중과 순천팔마중 학생들이 제주4·3 사적들을 둘러보고, 세 학교 공동으로 4·3 수업을 했다. 가을이 되면 전남이 제주를 초대하기로 했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한림여중 이현주 교사는 “학생들이 여수에 오기를 무척 기대하고 기다렸다”고 말했다.

두 역사가 하나라는 인식으로 두 교육청이 손을 잡았다. 제주4·3과 여순10·19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기의 최대 비극으로 꼽힌다. 1948년 4월 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제주 민중이 봉기했다. 민족 분단을 막으려는 외침은 그러나 잔혹하게 짓밟혔다. 미군정에 이어 수립된 남한정부도 제주도민을 탄압했다. 섬 전역에서 오래도록 무차별 학살이 벌어졌다. 

그해 10월, 여수에 주둔한 국군 14연대에 제주도 진압 명령이 떨어졌다. 군인들은 ‘동포를 죽이러 갈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를 일으켰다. 여수와 순천 주민들이 봉기군에 동조하면서 여순10·19가 일어났다. 저항은 전남 동부 전역으로 확산됐다. 일제강점기, 미군정을 거치며 억눌린 외침들이 터져 나온 것. 신생 남한정부는 제주와 전남 동부의 정당한 열정을 무차별 진압했다. 분단 반대, 친일 청산, 토지 개혁을 외친 목소리들이 불순한 것으로 내몰렸다.

 

여순10·19는 73주년이 된
올해 6월에서야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됐다. 
제주4·3-여순10·19의 전국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1948년 4월 이후 일련의 그 사건들은 유례를 찾기 힘든 국가폭력의 사례로 남았다. 봉기군과 주민들은 명예회복은커녕 긴 세월 불온한 국민으로 낙인찍혔다. 하나의 사건인 제주와 여순은 같은 고난을 감내해 왔다.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 계속됐으나 사건 발생 50여 년이 지나서야 국가 차원의 노력이 시작됐다. 1999년 말 제주4·3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2014년에 4·3희생자 추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여순10·19는 73주년이 된 올해 6월에서야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됐다. 제주4·3-여순10·19의 전국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두 교육청이 힘을 모은 것이다.

한림여중 학생들은 여수에 오기 전 4·3과 10·19를 공부했다. 전교생 모두가 참여했고, 2학년 학생 12명이 대표로 여수에 왔다. ‘복면가왕 미술프로젝트’ 수업에서 여순 사건을 인상적으로 구현한 학생들이 뽑혔다. 백은교 학생은 여순의 비극을 상징하는 ‘손가락총’을 가면에 그려 넣었다.

 

평화세대를 위한 오감체험 프로그램

한림여중생들이 비행기를 타고 온 제주-여수 구간은 국내선 항공로 중 가장 짧다. 목숨 걸고 제주-여수 뱃길을 거부한 여수 14연대 청년들, 그들의 궁극적인 바람은 평화였다. 73년 후 제주의 십대들이 그 길을 평화롭게 날아서 왔다.

2박3일 프로그램은 유기적으로 구성됐다. 공연, 전시, 영화 등의 콘텐츠로 여순10·19를 탐색했다.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미항 여수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도 했다. 미디어와 문화에 민감한 세대에게, 이 구성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낯설고 묵직한 역사를 친근하게 만나게 하기 때문이다. 박금만 화가의 여순사건 그림을 감상한 후 다음날 그 사적지를 직접 찾는 식이었다.

 

여수 신월동 14연대 주둔지의 무기고 터를 둘러보고 있는 중
여수 신월동 14연대 주둔지의 무기고 터를 둘러보고 있는 중

해설자 박병섭 씨는 순천대 운동장에서 흑백사진들을 펼쳐 보였다. 1948년 미국 <라이프>지 소속의 칼 마이던스 기자가 기록한 여순사건 사진들이었다. 사진 속 상황으로 들어가 보자. ‘저 사람이 반란군 동조자였던 것 같다’고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 진압군은 지목당한 그를 끌고 나가고, 이어 총소리가 들린다. 삶과 죽음이 농담처럼 갈린 잔혹한 시절. 흑백사진은 ‘손가락총’이 벌어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상황을 세 개의 산봉우리가 내려다본다. 

 

순천대 운동장에서 ‘손가락총’을 설명하는 박병섭 순천문화재단 이사.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삼산 봉우리다.
순천대 운동장에서 ‘손가락총’을 설명하는 박병섭 순천문화재단 이사.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삼산 봉우리다.

“저쪽을 보세요”라는 안내에 학생들이 고개를 돌리니, 세 개의 산봉우리 ‘삼산’이 있었다. 사진 속 장소에 앉은 학생들은 전율을 느꼈다.

답사지 곳곳에 제주가 포개어졌다. 여수 만성리 형제묘는 문자 그대로의 형제 묘가 아니다. 1949년 1월 군인과 경찰 진압군이 주민 125명을 끌고 와 총살하고 불태웠다. 유가족들이 나중에 와보니 시신 잔해들이 뒤엉켜 분리가 불가능했다. 형제처럼 다 함께 있으라고 그 자리에 큰 묘를 만들었다. 한림여중 학생들은 제주 ‘백조일손지묘’를 떠올렸다. 제주4·3 때도 뒤엉킨 시신들을 수습할 수 없어 하나의 거대한 묘를 썼다. 조상은 백 명이지만 후손은 하나가 되었다.

 

만성리 형제묘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과 교직원
만성리 형제묘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과 교직원

 

여순 희생자 위령비는 제주 백비를
만성리 형제묘는 제주 백조일손지묘를
여수 중앙동과 진남관 주변은
제주 관덕정을
종산초교(현 중앙초)는
제주 북촌초교를 닮았다. 

학생들은 “제주4·3과 여순10·19가 정말 닮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민대회가 열렸던 여수 중앙동과 진남관 주변은 제주 관덕정을, 민간인을 무차별 처형한 종산초교(현 중앙초) 운동장은 제주 북촌초교를 닮았다. “학교 공간은 소중한 배움터이다. 그런데 과거 난리가 나면 이 공간은 무서운 장소로 변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학교 운동장엔 10월의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다.

 

순천 팔마체육관 뜰에 있는 여순항쟁탑에 새겨진 글귀를 읽고 있는 제주 답사단
순천 팔마체육관 뜰에 있는 여순항쟁탑에 새겨진 글귀를 읽고 있는 제주 답사단

순천 팔마체육관 여순항쟁탑 앞에 섰다. 비석에 새겨진 ‘항쟁’이라는 글자가 힘있게 느껴졌다. “제주4·3 때 문형순 서귀포경찰서장은 주민 학살 명령을 거부했다. 한국전쟁 때의 차일혁 토벌대장, 5·18민중항쟁 때의 안병하 경찰서장도 마찬가지였다. 부당한 지시를 목숨 걸고 거부한 이들을 우리가 잘 기억하면 좋겠다.” 참배를 끝으로 학생들은 답사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이들 2000년대생들은 평화에 익숙하다. 한 세대 전 학생들만해도 호국의 달 6월이 되면 ‘반공포스터’를 그려야 했다. 포스터 속 북한 지도자는 뿔 달린 괴물이 되곤 했다. 답사단이 여수 신월동 14연대 주둔지에 갔을 때다. 주둔지는 일제 때 조성돼 쭉 군사시설로 사용됐고, 현재는 ‘한화’ 기업이 사용하고 있다. “한화는 무엇의 줄임말일까요?”라는 질문에 한 학생이 명랑하게 외쳤다. “한국의 화합!” 한화는 다이너마이트와 화약류를 제조하는 기업 ‘한국화약’의 머리글자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재잘재잘, 핸드폰으로 브이로그(동영상일기)를 찍으며 답사를 기록했다. 평화의 세대가 기억하고 열어가는 ‘그들의 역사’가 기대된다.

 

순천 팔마체육관 뜰에 있는 여순항쟁탑
순천 팔마체육관 뜰에 있는 여순항쟁탑

 

한 자리에 모인 제주·여수·순천 학생들

답사가 끝난 저녁, 만남의 장이 마련됐다. 여수 라마다호텔 대회의장에 한림여중생들을 비롯해 전남과 제주의 교직원, 제주와 여순 유족회 사람들이 모였다. 제주4·3유족회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여순 답사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봄 제주를 방문한 여수 안산중과 순천 팔마중 학생들도 자리했다. 다시 만난 제주와 여순 십대들이 함께 사진을 찍으며 기뻐했다.

여수와 순천 학생들은 그간 각자의 방식을 찾아 4·3공부를 이어갔다. 사례 발표에서 안산중 학생들은 ‘제주4·3 평화·인권교육, 그 이후의 이야기’라는 이름 아래 그간의 역사동아리 활동을 소개했다. 전남 청소년미래도전프로젝트 일환으로 여순 사적지를 다니며 영상을 제작했다. 발표를 마친 정윤수·정유주 학생은 “제주4·3을 여수에 널리 알리고 싶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학교생활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순천 팔마중 학생들이 만든 에코백
순천 팔마중 학생들이 만든 에코백

순천팔마중 학생들은 ‘발맘발맘 역사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발맘발맘’은 ‘한걸음씩 앞으로’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전아현, 한소리, 전도완, 문석형 등 4명은 ‘알3 역사영상’을 제작했다. ‘알지 못했으나,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하는’ 역사라는 뜻. 학생들은 여수와 순천 곳곳의 10·19사건 표지판을 찍고 영상을 제작했다. 여름방학 때는 2박3일 제주 답사를 다녀왔다. 그간 찍은 영상을 최종편집하고 있고, 곧 유튜브에 올릴 예정이다. 발맘발맘 나아가는 이들은 굿즈(문화상품)도 제작했다. 제주와 여수·순천을 알리는 에코백을 만들었고, 앞으로 이모티콘과 그림톡도 만들 계획이다.

 

제주 한림여중 학생들의 독도 플래시몹
제주 한림여중 학생들의 독도 플래시몹

제주 쪽 준비도 알찼다. 한림여중 학생들은 답사 소감 발표 후, 다함께 독도 플래시몹을 펼쳤다. 미리 녹화해 방영한 ‘제주어 말하기’ 영상도 화제였다. 자막이 없었다면 이해하기 힘들만큼 제주어는 고유하다. 여수·순천 학생들은 외국어 듣기를 하듯 골똘히 집중했다. 한림여중 학생들은 “중간고사 끝나고 1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했다. 서로들 많이 친해졌다”며 웃었다.

 

제주 한림여중 이현주 교사의 교과연계 4·3수업 사례 발표
제주 한림여중 이현주 교사의 교과연계 4·3수업 사례 발표

한림여중 이현주 교사의 4·3수업 사례 발표는 교과 연계 프로젝트의 모범을 보여줬다. 사회·역사 과목을 담당하는 그는 그간 수업 방식의 다양화를 시도했다. 국어 시간에는 제주4·3을 다룬 대표소설 <순이삼촌>을 읽고 만화 그리기, 과학 시간에는 제주4·3 당시 기후 연상하기, 미술 시간에는 4·3 현수막 완성하기 등 과목의 울타리를 넘나들며 학생들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전남과 제주의 학생과 교사들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주4·3과 여순10·19를 열심히 잇고 있다.
여수·순천과 제주에서
평화의 꽃, 동백이 만개하고 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제주4·3과 여순10·19를 열심히 잇고 있었다. 전남교육청 이병삼 민주시민생활교육과장은 “지난 2월 국회에서 4·3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됐고, 6월에는 여순10·19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됐다. 역사의 전국화를 위해 앞으로도 두 지역이 연대하고, 평화·인권교육을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행사의 슬로건은 ‘동백, 평화와 인권으로 피어나다’였다. 활짝 핀 꽃이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꽃은 사람 목숨이 너무도 가볍게 툭툭 떨어져 내린 잔혹한 시절을 상징했다. 동백의 붉은 빛은 죽은 자들의 목숨이고, 살아남은 이들의 피울음이었다. 73년 후, 제주와 여순에서 동백꽃이 평화와 인권의 꽃으로 만개하고 있다.

학생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참석자들
학생들의 발표를 경청하고 있는 참석자들

 

글 이혜영  사진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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