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웹툰·애니메이션 산업

#1. “얘들아 그만 놀고 밥 먹어라.”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달려온다. 그런데 밥상이 아니라 TV 앞에 앉는다. 만화영화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치키치키차카차카초코초코초 나쁜 짓을 하면은~’ 아이들은 흥겹게 따라 부르며 머리카락을 뽑아 ‘후’ 부는 시늉을 한다. 1991년 10월 금요일 저녁시간,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집 풍경이다. 

#2. 아이가 태블릿PC를 켠다. 화면에서는 안경 낀 펭귄 한 마리와 그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펼친다. 아이는 왼쪽 오른쪽 앞뒤로 부지런히 따라 한다. “아침 체조 끝났으면 우리 한글놀이 하자.” 엄마가 제안한다. 화면이 전환되고 춤추던 펭귄과 그 친구들은 가나다라 낱말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2021년 휴일, 5살 아이의 아침 모습이다.

앞에 것은 KBS 2TV에서 방영된 <날아라 슈퍼보드>이고, 뒤에 것은 유튜브 ‘뽀로로’ 채널에 올라온 <뽀롱뽀롱 뽀로로> 중 하나다. 둘 다 만화영화이다.

위에서부터 <타요>, <배추도사 무도사>, <날아라 슈퍼보드>, <아기공룡 둘리>, <영심이>  

만화영화(이하 애니메이션으로 통칭)는 뭇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아이들의 애정과는 별개로 2000년대 이전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달려라 하니><옛날 옛적에><아기공룡 둘리><영심이><검정 고무신> 등 일부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해외 작품들이 강세였다. <미래소년 코난><피구왕통키><은하철도999><짱구는 못말려> 등 우리가 TV에서 봤던 애니메이션의 상당수는 해외작(특히 일본)이다.

애니메이션은 창의적인 스토리와 고도의 기술력, 예술성의 집합체다. 초기 한국 애니메이션은 극장판(장편) 위주로 제작되었는데, 대부분 흥행에 실패했다. 들이는 품에 비해 돈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국내 업체들은 창작보다 주로 미국, 일본 등 해외업체의 하청을 받아 일했다. 분위기가 바뀐 건 1990년대부터다. 우리네 애니메이션의 뿌리를 찾고 대중문화 상품으로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 세계와 겨루자는 담론이 생겼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2010년 전후로 크게 도약했다. 스마트폰 보급, OTT* 플랫폼 다양화 등으로 급성장한 미디어 산업의 영향을 받았다. <뽀롱뽀롱 뽀로로><로보카 폴리><라바><변신 자동차 또봇><치링치링 시크릿 쥬쥬><엉뚱발랄 콩순이와 친구들> 등 한국 기업이 창작한 유아·아동용 애니메이션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에는 유튜브 채널 ‘스마트스터디’의 <핑크퐁 체조영상> 영문판이 조회수 70억 3700만 회를 돌파하면서 전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넷플릭스, 유튜브 등. 

왼쪽부터 <달려라 하니>, <엉뚱발랄 콩순이>, <핑크퐁 상어가족>, <뽀롱뽀롱 뽀로로>

 

순천, 웹툰·만화 특화도시 선언

전라남도는 만화(웹툰)·애니메이션·캐릭터 관련 산업 육성에 각별히 힘쓰고 있다. 지원금, 사무실 공간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해 관련 기업들을 지역에 유치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행정안전부의 ‘콘텐츠산업 청년일자리 리쇼어링 프로젝트’ 사업을 운영하며 전문인력의 고용도 지원하고 있다. 청년들이 순천에 거주하면서 웹툰·애니메이션 분야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 월 230만 원 가량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순천시는 ‘웹툰 특화도시’를 선언하고 웹툰·애니메이션 산업 생태계 조성에 적극적이다. 웹툰 작가들의 창작공간 순천글로벌웹툰센터를 마련했고, 디지털 애니메이션센터 설립을 추진중이다. 지역 대학들과 협약을 맺고 전문가도 키운다. 청암대는 올해 웹툰콘텐츠학과를 신규 개설했고, 내년에는 제일대가 애니메이션학과를 신설한다.

전라남도와 순천시의 투자와 노력 덕분에 웹툰·애니메이션 기업 20여 개와 제작인력 200여 명이 순천시로 왔다. 세계 10대 애니메이션 전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한 동우에이앤이(주), 그린프로덕션, 에이쓰리스튜디오, 애니하우스썬, 까르떼디엠 등 중견 기업들이 터를 잡았다. 전남 청년들이 지역에 거주하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선순환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주)민트토이 나주본사. 휴게실엔 게임기와 음료 냉장고가 놓여있고, 사무실 곳곳에는 피규어와 캐릭터용품들이 아기자기 자리한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주)민트토이 나주본사. 휴게실엔 게임기와 음료 냉장고가 놓여있고, 사무실 곳곳에는 피규어와 캐릭터용품들이 아기자기 자리한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다.

나주혁신도시에 본사를 둔 ㈜민트토이도 순천에 지사를 내고 리쇼어링 프로젝트 사업에 참여했다. 민트토이는 3D 애니메이션, 가상 증강 현실 등의 융복합 콘텐츠를 기획·제작한다. 스톰 워리어스, 아레스 등을 애니메이션을 자체 제작하고, 뽀로로, 또봇V, 쥬라기캅스, 브레드이발소 시즌2, 콩순이 등 유명 애니메이션의 외주를 맡아 수행하며 성장하고 있다.

“외주로 뛸 때는 합성, 특수효과 FX, CF, 모션그래픽, 배경 디자인 등 주로 영상의 후반 작업을 담당해요. 지금은 자체 제작보다 외주가 많지만, 우리만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어요.” 김다정 마케터가 말했다.

최근에는 딥러닝(스스로 학습하는 컴퓨터)을 이용한 3D 어플리케이션 ‘셀피토이’를 개발했다. 실제 얼굴 사진을 올리면 실물과 닮은 캐릭터를 자동으로 생성하고 나만의 피규어를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를 활용해 3D 애니메이션 시리즈 ‘하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편은 ‘인서의 하루’. 직원인 이인서 씨를 모델로 한 생활 애니메이션이다. 민트토이는 “앞으로 시민들이 참여해 자신의 캐릭터와 이야기가 담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민트토이에서는 합성, 특수효과 FX, CF, 모션그래픽, 배경 디자인 등 영상의 후반 작업을 담당한다.
(주)민트토이에서는 합성, 특수효과 FX, CF, 모션그래픽, 배경 디자인 등 영상의 후반 작업을 담당한다.

본사와 지사(순천, 베트남)에 직원 70여 명이 근무한다. 출근 10시 퇴근 7시로 정해놓고는 있지만 근무시간은 자유로운 편이다. 대신 마감일이 닥치면 매우 바쁘다. 다른 회사와 제작 공정이 톱니처럼 물려 있어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하기 때문. 

“야근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럴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이직률은 높지 않아요.” 프로젝트 매니저 조아라 씨가 말했다. 민트토이의 전신 네이비에서도 일했던 그는, 흔들림 없이 계속 일하는 이유를 ‘사랑’이라 말했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가장 먼저 보는 기쁨을 계속 느끼고 싶어서”라며 웃었다. 조 씨는 애니메이션 <빅히어로>를 ‘덕질*’하고 있다. *덕질=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

화기애애하게 회의하고 있는 직원들
화기애애하게 회의하고 있는 직원들

민트토이 이충훈 대표도 창업 이유를 같은 동기에서 찾는다. 이 대표의 책상 벽에 걸린 족자 글귀에 눈이 멈춘다. ‘이 오타쿠* 짜식, 축하한다.’ 이 지경(?)이니 민트토이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진심과 애정을 동료의 가장 중요한 자질로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오타쿠=한 분야에 매우 열중하는 사람. 오덕후, 덕후

이 대표는 “관련 학과를 졸업한 전공자들이 보유한 고급 기술은 귀하죠. 그런데 꼭 전공자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우리 회사에는 국비 교육과정을 수료해서 입사하신 분도 많아요. 업무 능력은 경험을 하다보면 늘 수 있지만, 관심과 애정은 그런 류의 것이 아니니까요”라고 말한다. 내적 동기가 최고의 팀워크와 최상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주)민트토이가 자제 제작한 애니메이션. 왼쪽부터 스톰 워리어스, 아레스, 인서의 하루.
(주)민트토이가 자제 제작한 애니메이션. 왼쪽부터 스톰 워리어스, 아레스, 인서의 하루.
인서의 하루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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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콘텐츠산업진흥원은 <콘텐츠산업 2021년 전망보고서>에서 코로나19 이후에도 애니메이션 소비가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세계 최대 OTT 서비스 ‘넷플릭스’는 2017년부터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을 고객으로 하는 다양한 애니메이션 제작에 직접 투자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시장은 ‘초록불’이다. 전남에 자리잡은 ‘애니광’들이 ‘덕후’의 열정으로, 시대의 바람을 타고 역량을 활짝 꽃피우길 기대한다.

 

글·사진 조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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