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택리지] 뗄 수 없는 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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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택리지] 뗄 수 없는 한 몸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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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광주, 그리고 전남

518, 1187은 광주 시내버스 노선 번호이다. 518은 1980년 5월 18일의 민중항쟁을 의미한다. 1187은 무등산 정상 천왕봉 높이(공식적으로는 1186.8m)이다. 518번 버스는 옛 상무대영창 터, 전남대 정문 등 5·18항쟁 관련 주요 사적지를 지나 망월동 묘역에 이른다. 1187번 버스는 무등산 동북편 입구인 원효사가 종점이다.

조선시대 전라도는 지금의 전남과 전북 전체를 포괄했다. 갑오개혁(1894~1896)으로 전남과 전북이 분리되었다. 전남에 속했던 광주는 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큰 도시로 팽창하기 시작했다. 갑오개혁 이후 약 90년 뒤인 1986년 광주는 전남에서 독립해 광주직할시가 되었다. 두 해 뒤에 전남 광산군이 광주 광산구로 편입되면서 오늘날 ‘광주광역시’라는 행정구역을 갖추었다.

1980년 5·18항쟁 당시 광주는 ‘전라남도 광주시’였다. 무등산은 1972년 전남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2013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일제강점기 광주의 인구는 15만 명 안팎이었다. 1980년에는 85만 명, 현재는 140만 명이다. 광주 인구의 주축은 전남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비유하자면 전남은 ‘광주의 뿌리’라 할 수 있다.

광주를 대표하는 최대 공간은 무등산이다. 광주를 대표하는 최고의 사건은 5·18이다.(이 경우 ‘광주’라는 말은 전남이라는 문화권 내의 광주이다. 사람, 역사, 교류 등에서 광주와 전남은 분리할 수 없다. 이하 ‘광주’는 ‘전남 문화권 내의 광주’로 읽어주길 바란다.) 무등산이 풍토라면, 5·18은 인문이다. 풍토가 인문을 낳고, 인문이 다시 풍토와 교감하면서 서로를 확장시킨다. 무등산과 5·18, 그리고 전남과 광주는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다.

 

전남대 정문 앞을 지나는 광주 518버스. 518버스는 광주항쟁 관련 주요 사적지를 지나 망월동 묘역에 이른다. ⓒ장진주
전남대 정문 앞을 지나는 광주 518버스. 518버스는 광주항쟁 관련 주요 사적지를 지나 망월동 묘역에 이른다. ⓒ장진주

 

 

무등산과 5·18 광주공동체

무등산은 물과 생명을 가득 품은 두툼한 흙산이다. 산의 8부 능선 즈음에 물이 나오는 샘터가 있다. 물은, 동화사(터)나 규봉암이 자리잡을 수 있는 배경이다. 이 같은 형질을 흔히 토산土山이라 한다. 비교하여 지리산이 토산 형질이다. 산 능선에서도 물이 나온다. 거대한 바위가 우뚝 솟은 월출산은 전형적인 화산火山이다. 조금만 올라가더라도 물 구경하기가 어렵다.

특이하게도 무등산은 화산의 형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산 곳곳에 쪼개진 큰 돌들이 무리지어 있는 ‘너덜겅’을 확인할 수 있다. 정상 부근에는 깎아 놓은 듯, 바위들이 곧추 선 입석대, 서석대, 광석대를 만날 수 있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주상절리’(기둥모양의 돌들이 다발로 묶여 서 있는 모습)여서 오래 전 무등산이 화산폭발로 생겨났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흙은 부드럽고 바위는 딱딱하다. 흙이 생명을 품고 지킨다면 바위는 그 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5·18이 그랬다. 광주공동체는 무등산의 흙처럼 밥과 피를 나눴다. 서로의 생명을 지켜줬다. 또한 광주공동체는 부당한 폭력에 맞서 총을 들었다. 무등산의 서석대처럼 굳건히 버티고 서서 모두가 숨죽일 때 너덜겅마냥 한데 모여 구르고 깨지면서 반독재 민주주의를 외쳤다.

그래서일까. 시인 김준태는 금남로의 핏자국이 채 씻기지도 않은 1980년 6월 2일 <전남매일신문> 1면에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 죽음과 죽음 사이에 / 피눈물 흘리는 / 우리들의 /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라는 절규의 언어를 내 놓았다. 배경 사진은 무등산이었다. 광주와 무등산과 5·18을 하나로 융합시킨 것이다.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 인쇄 전 교열본.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이날 실릴 예정이었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소중한(오마이뉴스 기자)
왼쪽이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신문〉 1면 인쇄 전 교열본. 오른쪽이 최종 인쇄본이다. 이날 실릴 예정이었던 김준태 시인의 109행짜리 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는 33행으로 짤려 인쇄됐다. ⓒ소중한(오마이뉴스 기자)

시인 김남주는 “보라 / 산은 무등산 그대가 앉으면 만산이 따라 앉고 / 보라 / 산은 무등산 그대가 일어서면 만파가 일어선다”고 노래했다. 광주가, 그리고 5·18이 지니고 있는 절대적, 보편적인 의미를 무등산으로 환유한 격정의 노래가 아닐 수 없다.

무등산無等山은 ‘무유등등’無有等等이라는 불교용어에서 나왔다. 없고無 있음有이 고른等 까닭에 평등이라는 말도 필요 없는 최고의 상태, 곧 ‘화엄’을 말한다. 이 맥락에서 황지우의 장시 <화엄광주>가 나왔다.

무당산, 무돌산 등 무등산 이름의 기원은 여럿이다. 하지만 그 기원이 무엇이든 무등산이 5·18 광주공동체에 닿아 있다는 점은 ‘운명적’이다. 숨 쉬는 사람이기만 하면 모두가 한가족이었던 5·18광주야말로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절대공동체’ 였다. 평등이라는 말도 필요없는 무유등등, 화엄광주였던 것이다.

 

 

옛 전남도청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무등산은 2014년 12월에 국가지질공원이 되었다. 이어 2018년 4월에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공식 인증되었다. 명칭은 ‘MUDEUNG UNESCO GLOBAL GEOPARK무등 유네스코 글로벌 지오파크’이다. 세계 44개국 169개의 지질공원 중 하나다. 국내에는 제주, 청송, 한탄강, 무등산 등 4곳이 있다.(자세한 내용은 무등산지질공원 홈페이지 https://geopark.gwangju.go.kr 참조)

무등산은 중생대 백악기 말, 화산폭발로 생겨났다. 앞서 말한 곧추선 바위 무리 중 광석대의 주상절리대는 너비 7m로 세계 최대 크기이다. 무등산 자락에 속하는 화순 서유리 공룡화석지, 담양·광주·화순 등 인근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유산들이 풍부하다는 점도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된 배경이다. 무등산을 통해 과거 10만 년 동안의 기후변화를 알 수 있어 세계적인 학술 가치 또한 크다고 한다.

 

무등산 규봉암. 쪼개진 큰 돌들이 무리지어 있는 '너덜겅'은 마치 모두가 숨죽일 때 한데 모여 구르고 깨지면서 반독재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공동체 같다. ⓒ신병문
무등산 규봉암. 쪼개진 큰 돌들이 무리지어 있는 '너덜겅'은 마치 모두가 숨죽일 때 한데 모여 구르고 깨지면서 반독재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공동체 같다. ⓒ신병문

국내 광역도시 중 1천미터가 넘는 ‘뒷산’을 거느린 도시는 광주가 유일하다. ‘무유등등-빛고을’ 짝이 빚어낸 언어의 깊이, 역사의 무게도 특별하다. 게다가 지구적 가치가 담긴 지질 특성까지 지니고 있다. 이처럼 복합적인  의미들을 포괄하고 있는 또 하나의 공간이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옛 전남도청 자리에 들어섰다. 국내 최대의 문화시설물이다. 전체 콘셉트는 ‘5·18의미래’였다. 설계자는 두 가지를 염두에 뒀다. 첫째, 금남로-문화전당-무등산으로 시선이 이어지는데, 이 때 문화전당이 금남로에 선 시민의 눈높이 기준에서 무등산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둘째, 5·18의 상흔이 깊은 옛 전남 도청의 다른 건물들 보다 문화전당이 더 겸손해야(낮아야) 한다.

그래서 문화전당의 건물은 높지 않다. 주요 공간들이 지표면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지상은 시민들이 편하게 거닐 수 있는 공원 역할을 하고 있다. 전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구조를 지닌 건물이자 공간이다. 지상과 지하는 큐브 형태의 구조물이 이어준다. 하늘의 빛이 큐브를 통과해 지하에 닿는 것이다. 무등산과 광주의 의미를 체현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다른 이름은 ‘빛의 숲’이다. 

 

하늘에서 본 광주 시내와 무등산. 사잔의 가운데쯤 옛 전남도청, 분수대,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보인다. ⓒ장진주
하늘에서 본 광주 시내와 무등산. 사잔의 가운데쯤 옛 전남도청, 분수대,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보인다. ⓒ장진주

나주에 들어선 빛가람혁신도시는 ‘광주·전남 공동’이라는 수식어를 거닌다. 공공기관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당초에 혁신도시는 전국의 광역권 11군데에 조성될 예정이었다. 광주와 전남은 두 군데로 분산하지 않고 한 곳으로 모았다. 공공기관 중 규모가 가장 큰 한국전력을 유치하기 위한 결단이었다. 빛은 광주를, 가람은 강의 순우리말로 전남을 뜻한다. 한국전력은 빛을 만들어내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번호 <함께 꿈꾸는 미래>에 무등산과 광주를 소개했다. 자연과 인문의 상호영향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었다. 또 무등산과 광주를 매개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빛가람혁신도시에 담긴 의미를 소개했다. 전남과 광주는, 서로를 이해해야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는 거울 같은 존재다. 광주를 전남택리지 한 꼭지로 다룬 이유다.

광주는 당초에 전남이었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분리되어 있지만 ‘전남’을 대표하는 도시이다. 광주시민 대다수는 전남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며, 광주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전남과 인연을 맺으면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전남과 광주는 뗄 수 없는 한 몸이다. 광주는 도시로 압축된 전남이고, 전남은 들과 바다로 펼쳐진 광주다.
 

글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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