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택리지]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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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택리지]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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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섬진강, 탐진강, 보성강… 전남의 강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 김정호가 <대동여지전도> 발문에 쓴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을 의역한 말이다. 우리네 인문지리의 밑바탕 원리라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 갔을 때 쓰는 ‘분수령’이라는 어법이 여기서 나왔다.

물은 산에서 출발해 낮은 곳, 열린 곳으로 흐르며 물줄기를 만든다. 다른 산에서 태어난 여러 물줄기들은 산의 흐름이 끊기는 곳에서 만나 합쳐진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물줄기들의 구조는 나무처럼 보인다. 바다가 뿌리라면, 본류는 줄기, 지류는 가지에 해당한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물줄기들의 영역을 ‘분수계分水界’ 또는 ‘유역계流域界’라 하는데, 보통은 줄여서 ‘수계’라 부른다. 산은 사람살이를 나누고, 물은 사람살이를 잇는다. 수계가 같을 경우 삶의 빛깔에 공통점이 많다. 같은 물에 기대어 살고, 그 물줄기를 이용한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이다.

전남의 강 개념도
전남의 강 개념도

전남의 경우 크게 갈래 쳐 3개의 수계로 구획된다. 영산강(115.5㎞), 섬진강(212.3㎞), 탐진강(51.5㎞)이다. 각각 300리, 500리, 100리로 가늠한다. 영산강의 시원은 담양군 용면 용추봉이며, 바다로 빠져드는 하구는 목포이다. 탐진강은 장흥군 유치면 국사봉~강진, 섬진강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광양이다.

억울한 건 보성강이다. 보성군 웅치면 제암산 자락에서 출발한 보성강은 곡성군 압록면에서 섬진강 본류와 몸을 섞는다. 영산강보다도 긴 120.3㎞에 길이인데도 ‘독자적’인 강으로 대접받지 못한다. 자신만의 하구를 갖지 못해서이다.

 

들판을 가르고 산줄기를 흐르고 

근대 이전, 강은 내 삶터 가까운 곳에서 함께 부대낀 물줄기를 의미했다. 까닭에 생활권에 따라 강의 이름이 제각각 있었다. 가령 탐진강의 경우 장흥에서는 예양강이었고, 강진에 이르러 탐진강이었다. 섬진강의 경우 압록강(곡성), 악양강(구례~하동)이었고, 하구에 이르러 섬진강이었다. 극락강(광주), 사포강(함평) 등으로 영산강의 이름 또한 굽이에 따라 다양했다.

토목기술이 발달해 수계 전체를 관리할 수 있었던 근대 이후, 시원부터 하구까지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강 이름이 통용됐다. 섬진강이나 탐진강처럼 대개는 하구의 강이름을 채택했다. 다만 영산강은 중류에 위치한 영산포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들판의 중심부를 크게 휘감으며 흐르는 영산강
들판의 중심부를 크게 휘감으며 흐르는 영산강

영산포는 흑산도에 딸린 영산도 주민들이 14세기 중엽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된 공간이다. 광주와 나주 등 내륙에서 서남해안의 섬까지 이어지는 영산강 교역체계의 광활함을 짐작케 한다. 영산포의 ‘특산물’이 홍어인 이유도 설명해주며, 사람살이를 잇는 물길의 특성도 보여준다.

영산강은 한강, 금강, 낙동강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대강으로 꼽힌다. 길이 및 면적이 섬진강보다 작지만, 거느리는 유역이 전남·광주의 핵심 곡창지대를 관통해 그 중요성을 높이 친 것이다.

들판의 중심부를 크게 휘감으며 흐르는 영산강은 탁한, 그러나 영양분을 풍부하게 머금은 황토강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무안군 몽탄면 명산리, 나주군 다시면 구진포 등이 ‘장어’로 유명하다. 황토강이 주는 특별한 선물에 다름 아니다.

들판을 흐르는 영산강과는 달리, 섬진강은 대체로 산줄기 사이를 흐른다. 그래서인지 전북-전남-경남으로 이어지는 500리 섬진강 길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절경이 많다. 높은 산들이 물을 지속적으로 보내 그 빛깔이 맑다는 특성도 있다. 재첩, 다슬기, 참게, 은어 등 맑은 물을 좋아하는 어패류 음식이 섬진강 수계에서는 특히 발달해 있다.

전라도 동부 산악지대, 서부 평야지대의 중간 부분을 흐르는 강답게 탐진강은 산, 들, 바다가 아담한 크기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재첩, 다슬기, 참게, 은어의 고향이라는 점에서 물의 특성은 섬진강과 유사하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부산의 배가 탐진강 하구를 오갔다. 제첩을 사기 위해서였다. 대규모 모래채취, 농토 확보를 위한 간척사업으로 인해 재첩의 서식지는 갈대밭으로 변했다.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섬진강

강진 옴천면은 탐진강 상류 산골에 자리하고 있다. 목리는 드넓게 펼쳐진 탐진강 하구의 간척지 논을 일구는 마을이다. 강진 현지 사람들이 농담 삼아 말하는 “옴천 면장보다 목리 이장이 낫다”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탐진강은 예쁘고 작은 강이다. 아니, 작아서 예쁠 수도 있겠다. 모르겠다. 이대흠 시인은 탐진강을 두고 “어린 그녀의 손금 같은 강*”이라고 했다. 놀랍다. 설명하기 어려운 탐진강의 예쁨을, 설명하지 않는 언어로 ‘정확히’ 표현한 것 같은 느낌. 그가 장흥 출신이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물은 왜 너에게서 나에게로 흘러오나-탐진시편 6

 

흐르도록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몫

섬진강의 시인 하면 김용택을 떠올린다. 그는 임실군의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시를 썼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섬진강 1>은 섬진강을 통해 전라도 전체를 묶으려는 시도로 읽힌다.

 

…(전략)…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 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후략)…

 

짧은 시 속에 영산강, 섬진강, 지리산, 무등산이 더불어 어울리고 있다. 핵심어는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일 것이다. 강과 산에 기대어 사는 전라도 사람들의 깊고 강한 기질을 표방한 것이리라.

작가의 소망과는 달리 전라도의 강물은 마르고 있다. 댐 때문이다. 영산강 상류에는 담양, 광주, 장성, 나주 등 4개의 댐이 물을 가두고 있다. 탐진강에는 장흥댐, 보성강에는 보성강댐과 주암댐, 섬진강에는 옥정호(섬진강댐)가 물길을 가로막고 있다. 줄어든 수량은 생태환경을 크게 변화시킨다. 물이 얕아져 수운水運의 역할도 사라진 지 오래다.

산, 들, 바다가 조화로운 탐진강
산, 들, 바다가 조화로운 탐진강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고 했으나, 산은 물론 바다까지 건너고 있다. 보성강댐은 득량·예당·조성면 간척지 들판에 물을 공급해주고 있다. 장흥댐의 물은 서남해안의 섬에, 주암댐의 물은 광주시민에게 식수로 제공된다. 옥정호는 정읍 들판으로 흘러든다. 모두 ‘수계’를 건너뛰는 쓰임이다. 물이 산을 건너고 있는 셈이다.

다른 수계의 물을 빌려 써야 한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문명의 과잉착취이다. 현대의 토목기술은 산과 강으로 구획되어 오랜 시간 누적된 인문환경을 종횡으로 찢고 섞는다. 인위적인 찢김과 섞임으로 말미암아 주변의 산과 강이 나와 이웃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우리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로는 수원을 짐작할 수 없는 법이다.

공룡 발자국이나 절의 오래된 탑만을 찾아다닐 일은 아니다. 산과 강, 그것이 빚어낸 마을과 논이 우리 삶의 원형을 형성했다. 이번 여름에는 산과 강의 흐름을 살피는 ‘우리 안’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퍼내면 마를 수도 있는 강물이다. 흐르도록 지키는 것 또한, 그 물로 목을 축이는 이들의 몫일 수밖에 없다.

 

글 이정우  사진 장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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