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 섬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든 책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살아 있었으나 정약전은 이미 하늘에 속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노론 벽파의 정치적 음모는 정약전에게 사상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천주교 탄압은 명분을 가장한 핑계였을 뿐이었다. 진짜 목적은 정적 제거였다. 정약전 한 사람에게만 향한 칼날도 아니었다. 동생 정약용을 비롯해 온 집안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먼 변방으로 유배를 떠났다.

1801년 음력 11월 22일 아침, 그는 나주 밤남정에서 동생 정약용과 헤어졌다. 거기서부터 둘의 유배길이 갈라졌다. 동생은 월출산을 넘어 강진으로 향했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길을 잡았다.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의 삶과 죽음이 갈라지는 그 길에서 형제는 울었다. 억울했지만 형제는 입으로 그 억울함을 옮겨 놓지는 않았다. 살아서 마지막인 그 길에서 다만 울었다. 온 생애를 모두 토해내듯 길게 울었다.

정약전의 길은 멀었다. 멀고 아득한 바다의 길, 거센 풍랑을 만난다면 그 바다가 곧 저승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흑산도에서 정약전은 조선의 바다생물이 살아 숨 쉬는 해양 백과사전 <자산어보>를 쓴다. 실체는 없고 언어만 남아 성을 쌓던 시대에 억울한 사상범의 몸으로 흑산에 유배된 한 사내의 눈부신 갱신의 결과물이 <자산어보>였다. <자산어보>는 조선이 섬기던 주자의 언어로 엮은 책이 아니었다. 정약전은 흑산의 바닷바람과 소금 냄새 속에서 얻은 살아있는 지식을 담아냈다.

하늘에서 본 흑산도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안다!”

성리학을 섬겼던 조선에는 <자산어보>와 같은 실용적인 저술이 거의 없었다. 굳이 이준익 감독의 영화가 아니더라도 <자산어보>는 익히 알려져 있으며, 그런대로 합당한 학문적 대접도 받고 있다. 그러나 <자산어보>를 써야만 했던 정약전의 내면까지는 알 수 없었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를 통해 시대를 논하고, 인간의 길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양반 정약전이 아닌 서자 창대에게서 나온다. “홍어 다니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다니는 길은 가오리가 압죠.” 그렇다면 왜 사람은 사람의 길을 모르는가? 정약전은 창대의 말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정약전은 언어 자체가 아니라 사람에게 쓰임이 있는 언어의 조합을 묶어내고 싶었다. 그 결과물이 <자산어보>였다.

정약전의 유배 흔적을 품고 있는 사촌서당
정약전의 유배 흔적을 품고 있는 사촌서당

<자산어보>의 세밀함이 그것을 증명한다. 흑산도 연해의 수족 226종을 담았다. 3권이 1책인데, 각 수족에 대한 묘사가 매우 세밀하다. 1권에는 비늘이 있는 물고기 인류鱗類를 담았다. 2권은 비늘 없는 물고기인 무인류無鱗類와 딱딱한 껍데기가 있는 어류인 개류介類를 소개한다. 3권은 기타 해양생물 잡류雜類를 기록했다. 

단순히 바다생물의 이름만 나열한 것이 아니다. 정약전은 창대와 함께 생물을 직접 채집하고 관찰했다. 해부를 통해 얻은 사실적 지식들을 상세히 묘사했다. 특히 사람이 먹을 수 있는지, 먹으면 어떻게 조리해 먹는지, 섭취했을 때 의학적으로 어떤 효과를 내는지까지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 과학적 깊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약전은 ‘인류’ 중 민어와 조기, 돗돔 등을 ‘석수어石首魚’로 따로 분류한다. ‘머리에 돌이 있는 물고기’로 갈래친 것인데, 실제로 그 물고기들은 귓속에 석회질의 돌 이석耳石을 품고 있다. 이석은 물고기들이 바다에서 헤엄칠 때 몸이 평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석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정약전은 이미 200년 전에 이석을 알고, 종으로 분류했다.

정약전 유배문화공원
정약전 유배문화공원

창대는 ‘자산어보’의 공동저자

자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의 서문에서 이미 밝히고 있다. “‘흑산’이란 이름이 어둡고 처량해 두려운 느낌을 줘서 비슷하게 어둠을 뜻하는 ‘자산’으로 대신 쓴다.” 창대를 만나면서 정약전에게 무서움의 이미지였던 ‘흑산’은 다른 삶의 무늬로 변환된다. 흑산도에서 정약전은 이 나라의 주인이 성리학이 아니라 백성임을 알았고, 그 정신을 <자산어보>에 투입시켰다.

창대는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영화에서처럼 과거에 합격할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학문적 깊이가 상당했다. 정약전은 <자산어보>를 쓰기 위해 섬사람들을 두루 만나보는 중에 창대를 만났다. 그는 <자산어보>에 공동 집필자 창대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섬 안에 장덕순, 즉 창대라는 소년이 있었다. 두문불출하고 손님을 거절하면서까지 열심히 고서를 탐독하고 있었다. … 성격이 조용하고 정밀해, 대체로 초목과 물고기와 물새 가운데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을 모두 세밀하게 관찰하고 깊이 생각해 그 성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믿을 만했다. 나는 드디어 이 소년을 맞아 함께 묵으면서 물고기의 연구를 계속했다.”

자산어보
자산어보

창대가 영화 <자산어보>에서 청어의 척추 뼈마디 숫자로 영남산(74개)과 호남산(53개)을 구분해 내는 것은 재미를 위한 허구가 아니다. 실제 <자산어보>에 기록된 내용이다. <자산어보>에는 ‘조사어’라는 게 나온다. 몸의 일부로 낚시줄을 늘어뜨려 다른 물고기를 유인해 잡아먹는 물고기다. 이 물고기는 ‘아귀’다. 수심 50m에 사는 아귀의 먹이사냥 모습을 정약전이 실제로 봤을 리 없다. 창대에게서 얻은 지식이었을 게 분명하다.

<자산어보>를 통해 정약전이 가려던 세상은 어디였을까?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창대에게 건네는 말을 통해 하나의 세상을 제시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적자도 서자도 없고, 주인도 노비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 아마도 그 세상은 모든 백성이 주인인 세상일 것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 그런 세상이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다만 하나는 확실하다. <자산어보>의 주인은 모든 백성이다.

글 정상철  사진 신안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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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산어보>

개봉 2021. 3월 감독 이준익 장르 드라마 상영시간 126분 등급 12세 관람가

조선후기 실학자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우리나라 최초의 어류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기록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순조 1년, 신유박해로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흑산사람 창대와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 책을 써간다. 올해 백상영화대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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