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활용 상상더하기

한때는 삶터였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하루의 1/3을 보내며 꿈을 키웠다. 아이들은 미래였다. 어른들은 학교의 성장이 마을의 발전이라 믿었다. 학교의 필요needs에 민감했고 손을 보탰다. 어떤 곳은 아예 학교를 직접 세우기도 했다. 인구가 감소했고 마을은 늙어갔다. 아이는 성장해 떠났고 찾아오는 아이도 점점 줄었다. 결국 학교가 문을 닫았다. 빛바랜 교사와 잡풀 무성한 운동장만 남았다. 길게는 몇 십 년 홀로 있었다.

폐교는 교육청과 지자체, 마을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빈 건물은 흉물이 되었고,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간의 정책들은 ‘어떻게든 활용’에 초점이 맞춰 있었다. 매각하거나 대부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지역의 구심점, 문화의 중심지, 마을공동체의 터전으로서 학교의 역할이 사라지게 된 것이었다.

올해 전남교육청은 폐교 정책의 기조를 새로 세웠다. ‘폐교를 지역민에게’로. 학생, 주민, 지역의 성장 거점으로 학교가 존재하도록 지자체, 마을공동체와 손을 잡았다. 이미 여수 돌산중앙초, 순천 승남중외서분교장, 곡성 도상초, 영광 홍농남초계마분교장이 변화에 들어갔다. 주민쉼터, 청소년 체험공간, 생활·체육·문화·복지시설, 도농교류의 거점으로 탈바꿈한다. 변화는 올 하반기에 확인할 수 있다. 

<함께 꿈꾸는 미래> 6월호가 산, 바다, 산업단지, 마을의 대표적 입지에 있는 학교 4곳을 추려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2021년 지금 시점에서 이 글은 완전히 허구임을 미리 알려드린다. 다만, 지자체와 마을공동체의 눈길을 끌어, 머지않아 성지글*이 되길 바라본다.
*성지글 = 성지순례에서 유래한 신조어. 사건 발생을 예고하거나 예측한 글

 

화순초 수만분교 '별 보러 가자'

무등산 자락, 수만리 캠핑장. 옛 화순초 수만분교였던 이곳은 요즘, 연인들의 1박2일 여행지로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주말마다 예매를 위한 클릭 전쟁이 치열하다. 

대한민국의 알프스라고도 불리는 수만리에서는 느림의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낮에는 산길과 마을길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산책로 ‘무돌길’을 걷고, 너른 산비탈을 한가로이 거니는 양떼들과 만나 휴식을 누린다. 밤엔 캠핑장에 마련된 밤도깨비책방과 천문대 ‘야행성’이 문을 연다. 밤도깨비책방에선 집보다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한 달에 한 번 작가를 초청해 함께 밤을 새는 특별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마을로 귀향한 젊은 청년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선 간식과 따뜻한 음료를 판매한다. 특히 화순 지역에서 재배한 파프리카로 만든 케이크가 인기 메뉴다.

화순초 수만분교  
수만리 1·2·3·4구 학생들이 다니던 학교다. 1960년 3월 동면북국민학교로 문을 열었다. 1973년 화순동국민학교로 개칭됐고, 1989년 분교가 되었다. 1996년 졸업생을 끝으로 이듬해 3월 폐교되었다. 학교 부지 치고 매우 아담해 소박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위치 화순읍 수만리 75 면적 건물 362㎡, 토지 5,014㎡  

 

고흥 화계초 여주분교장, 농산어촌체험 한방에

고흥 점암면 여호리, 고흥반도의 평화로운 바닷가 마을이 학생 체험활동과 가족단위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여호리는 바다와 갯벌, 산까지 어우러진 다채로운 풍경을 자랑한다. 팔영산, 여호항 등 천혜의 환경을 기반으로 주민들은 협동조합을 세우고 공동체 사업을 시작했다. 낡은 폐교를 글램핑장으로 바꾸고 농산어촌체험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고흥군과 도교육청이 힘을 모았다. 

여호에선 문어낚시 등 바다체험, 바지락캐기 등 갯벌체험, 감자캐기 등 농촌체험까지 가능해 학교 단위 참여가 활발하다. 농산어촌의 삶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것. 고흥우주발사전망대가 20분이면 갈 수 있어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 멀리 서울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자자해 주말엔 가족나들이객으로 북적인다. 덕분에 항구 주변 수산시장, 포장마차들의 매출이 대폭 늘었다고.

고흥 화계초 여주분교장
본관은 옛날식 단층 건물이며 상당히 낡았지만 위치가 아주 좋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학교와 바다가 마주본다. 학교 뒤로는 팔영산이 펼쳐진다. 1994년 폐교됐다. 위치 고흥 점암면 여호리 244 면적 건물 694㎡, 토지 6,315㎡

 

광양태금중, 귀가가 늦어도 환영받는 이유?

“끝나고 세탁실에서 탁구 한 판 할 거지?” ㄱ철강 김 대리가 동료에게 말했다. 세탁실과 탁구, 이 낯선 조합이 광양국가산업단지 노동자들의 귀가 시간을 늦추고 있다. 이상한 점은, 늦은 귀가를 가정에서 적극 권장하고 있다는 사실. 노동자들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옛 광양태금중 자리에 문을 연 주민복합센터다.

일반적인 문화체육시설에 무인 작업복세탁실을 갖춘 노동자 친화형 공간이다. 산단 노동자들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이 세탁되는 동안 탁구나 배드민턴 등 체육활동을 즐기고, DVD도서관에서 영상을 관람한다. 세탁비도 저렴하다. 분식 식당도 있어 요기도 해결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는 야외에서 버스킹 무대가 선다. 운영·관리는 태인동 어르신들이 만든 협동조합에서 맡았다. 노동자 복지와 주민 편의, 어르신 일자리까지 창출해 최근 생활SOC 부문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광양태금중
공단으로 둘러싸인 주변 환경과 학교 건물의 안정성 문제로 인해 2011년 광양제철중으로 통폐합되었다. 1975년 3월 개교 후 36년 만이다. 이후 태인동 주민들은 주민복지시설로 활용하는 방안들을 지자체에 제안했다. 위치 광양시 태인동 303 면적 건물 1,841.88㎡, 토지 8,193㎡

 

장성 약수중, 사랑에 빠진 뱅크시(?)

그래비티 아티스트 뱅크시가 다녀간 것으로 추정되는 낙서가 발견돼 전남 장성이 발칵 뒤집혔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장성의 노랑마을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 낙서가 발견된 장소는 ‘북하예술촌’이다. 청년작가들이 상주하며 예술활동을 펼치는 곳이다. 최근 이곳 출신 작가 5인이 국립현대미술관이 뽑은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해 예술인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 수상자 J.N 작가는 “내장산, 축령산, 방장산, 장성호, 황룡강 등 아름다운 자연과 백양사 등 사찰, 어린이와 청소년, 마을주민과의 만남들이 모두 영감의 원천”이라며 소감 대신 북하예술촌의 장점을 꼽았다.

작가들은 약수초 학생, 마을주민들을 자신들의 작업에 수시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지역에 예술적 감성을 불어넣고 있다. 청년작가들의 작품들은 마을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점들이 예술의 상업성과 예술의 허례허식을 비판해온 뱅크시의 맘에 든 것 아닐까 하고 미술계는 추측하고 있다. 

한편 북하예술촌은 폐교였던 약수중학교를 리모델링한 공간이며, 작가의 거주공간, 작업실, 전시관뿐만 아니라 주민커뮤니티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장성 약수중 
북하면 소재지에 위치한 학교로 2018년 3월에 폐교되었다. 장성읍까지 15분, 광주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노령산맥 자락에 위치해 유장한 산세를 자랑한다. 내장산국립공원, 장성호, 백양사 등 관광자원이 풍부해 숙박시설이 늘어나는 추세다. 위치 장성 북하면 약수리 428-1 면적 건물 2,045.3㎡, 토지 15,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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