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었다 봄 바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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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었다 봄 바다에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04.01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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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꾸미

장흥 장재도선착장에서 배가 떴다. 20분 남짓 달리던 배가 장흥·보성·고흥을 거느린 득량만 한가운데에 섰다. 고흥반도 샛바람에 배는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어부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리 쳐놓은 부표 아래 매달린 줄을 3단 롤러에 걸었다. 줄을 따라 소라방(소라형)과 꽃방(조개형)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쭈꾸미에게 소라와 조개 모양의 방을 내주고 그 몸을 거둬들이는 어로 방식이었다.

50cm 간격으로 700~800개 정도 달린 소라방과 꽃방 한 줄에서 30여 마리의 쭈꾸미가 올라왔다. 평소보다 10~20마리 적은 양이라고 했다. 경복호 김성태 선장은 “득량만에서 나온 쭈꾸미가 특히 부드럽고 최상품이다. 뻘(갯벌)도 좋지만 여기 놈들은 키조개, 새조개, 꼬막을 먹고 자란다”고 말한다. 목소리에 자부심이 넘친다.

득량만 가운데 선 쭈꾸미잡이 배. 줄을 거둬들이면 소라방과 꽃방 속에서 쭈꾸미가 나타난다.
득량만 가운데 선 쭈꾸미잡이 배. 줄을 거둬들이면 소라방과 꽃방 속에서 쭈꾸미가 나타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쭈구미를 준어(蹲魚, 속명 죽금어竹今魚)로 소개했다. 蹲(준)은 ‘쭈그리고 모으는’ 모습을 기록한 듯하다. 쭈꾸미는 위협을 느끼면 다리를 모아 머리를 감싼다. 쭈꾸미 발음이 연상되는 속명은 당시 사람들의 입말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봄 쭈꾸미는 산란기인 3월부터 5월 10일까지 잡는다. 그후 8월 31일까지는 금어기다. 가을 쭈꾸미는 9월 부터 잡기 시작한다. 큰 놈은 길이 15cm가 넘고, 몸을 움츠리면 어른 주먹만 하다. 예닐곱 마리가 1kg을 훌쩍 넘긴다. 봄 것은 알이 차 크고, 가을 것은 어리고 잽싸다.

어부들에게 쭈꾸미는 꽃이다. 잡는 도구를 꽃방으로, 어장에 떠 있는 오색 부표들을 꽃밭으로 부른다. 언젠가 장흥 출신 한승원 소설가는, 바다에도 산이 있고 들이 있다고 했다. 건강한 산과 들이 있는 바다에 아름다운 꽃인들 없으랴.

4월 쭈꾸미는 알이 꽉 찼다.
4월 쭈꾸미는 알이 꽉 찼다.

산과 들의 봄꽃을 뒤로하고 어부들은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간다. 8시간 고된 물일을 버티며 정붙일 상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쭈꾸미가 꽃으로 보이는 순간 노동은 꽃놀이가 되고, 물일은 꽃잔치로 바뀔 터다. ‘쭈꾸미=꽃’은 노동과 바람의 조건 아래서 성립했을 것이다.

노랗게 알이 찬 쭈꾸미 숙회를 식탁에 올렸다. 끓는 물에 3분 남짓 데친 쭈꾸미가 꽃처럼 활짝 피었다. 꽃잎을 닮은 다리가 입안에서 야들거린다. 꽃받침 같은 머리를 15분 더 삶아 통째로 깨문다. 꽉 찬 알과 먹물이 터지고 비벼지며 득량만 바다가 밀물처럼 몸을 점령한다. 때 맞춰 얼마 남지 않은 벚꽃이 거리에 꽃비를 뿌린다. 거리도 식탁도 바다도 꽃 사태다.

글 노해경 사진 마동욱

*쭈꾸미는 주꾸미의 전라도 말입니다. 자장과 짜장 모두 쓰이는 것처럼 쭈꾸미도 주꾸미와 함께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라도 사람들의 말로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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