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꾸미
장흥 장재도선착장에서 배가 떴다. 20분 남짓 달리던 배가 장흥·보성·고흥을 거느린 득량만 한가운데에 섰다. 고흥반도 샛바람에 배는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어부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미리 쳐놓은 부표 아래 매달린 줄을 3단 롤러에 걸었다. 줄을 따라 소라방(소라형)과 꽃방(조개형)이 갑판 위로 올라왔다. 쭈꾸미에게 소라와 조개 모양의 방을 내주고 그 몸을 거둬들이는 어로 방식이었다.
50cm 간격으로 700~800개 정도 달린 소라방과 꽃방 한 줄에서 30여 마리의 쭈꾸미가 올라왔다. 평소보다 10~20마리 적은 양이라고 했다. 경복호 김성태 선장은 “득량만에서 나온 쭈꾸미가 특히 부드럽고 최상품이다. 뻘(갯벌)도 좋지만 여기 놈들은 키조개, 새조개, 꼬막을 먹고 자란다”고 말한다. 목소리에 자부심이 넘친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쭈구미를 준어(蹲魚, 속명 죽금어竹今魚)로 소개했다. 蹲(준)은 ‘쭈그리고 모으는’ 모습을 기록한 듯하다. 쭈꾸미는 위협을 느끼면 다리를 모아 머리를 감싼다. 쭈꾸미 발음이 연상되는 속명은 당시 사람들의 입말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봄 쭈꾸미는 산란기인 3월부터 5월 10일까지 잡는다. 그후 8월 31일까지는 금어기다. 가을 쭈꾸미는 9월 부터 잡기 시작한다. 큰 놈은 길이 15cm가 넘고, 몸을 움츠리면 어른 주먹만 하다. 예닐곱 마리가 1kg을 훌쩍 넘긴다. 봄 것은 알이 차 크고, 가을 것은 어리고 잽싸다.
어부들에게 쭈꾸미는 꽃이다. 잡는 도구를 꽃방으로, 어장에 떠 있는 오색 부표들을 꽃밭으로 부른다. 언젠가 장흥 출신 한승원 소설가는, 바다에도 산이 있고 들이 있다고 했다. 건강한 산과 들이 있는 바다에 아름다운 꽃인들 없으랴.
산과 들의 봄꽃을 뒤로하고 어부들은 새벽 3시면 어김없이 바다로 나간다. 8시간 고된 물일을 버티며 정붙일 상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쭈꾸미가 꽃으로 보이는 순간 노동은 꽃놀이가 되고, 물일은 꽃잔치로 바뀔 터다. ‘쭈꾸미=꽃’은 노동과 바람의 조건 아래서 성립했을 것이다.
노랗게 알이 찬 쭈꾸미 숙회를 식탁에 올렸다. 끓는 물에 3분 남짓 데친 쭈꾸미가 꽃처럼 활짝 피었다. 꽃잎을 닮은 다리가 입안에서 야들거린다. 꽃받침 같은 머리를 15분 더 삶아 통째로 깨문다. 꽉 찬 알과 먹물이 터지고 비벼지며 득량만 바다가 밀물처럼 몸을 점령한다. 때 맞춰 얼마 남지 않은 벚꽃이 거리에 꽃비를 뿌린다. 거리도 식탁도 바다도 꽃 사태다.
글 노해경 사진 마동욱
*쭈꾸미는 주꾸미의 전라도 말입니다. 자장과 짜장 모두 쓰이는 것처럼 쭈꾸미도 주꾸미와 함께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라도 사람들의 말로 기사를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