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그리고 여수·순천10·19, 동백으로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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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그리고 여수·순천10·19, 동백으로 잇다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1.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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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제주학생교류학습취재기

4월의 첫날, 제주시 명림로(봉개동)에 위치한 4·3평화공원. 비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까마귀가 구슬프게 울어댔다. 마치 73년 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4·3 희생자들의 울음소리인 듯….

여수 안산중학교 2학년 김민지·김아빈·정윤수·하현채 학생과 순천 팔마중학교 2학년 김주왕·문석형·전아현·한소리 학생은 4·3평화공원에 도착하자마자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참배의 예부터 올렸다. 이어 위패 봉안실에 들러 1만 4,000여 위패 앞에서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전남 학생들이 4·3평화공원에서 참배를 올리고 있다.

학생들은 2박3일 일정으로 제주에 머물렀다. 제주4·3과 여수·순천10·19(이하 여순10·19)를 매개로 한 평화·인권교육 공동수업 및 현장체험학습 참여를 위해서다. 앞서 전라남도교육청과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지난 3월 12일 여수에서 평화·인권교육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번 전남 학생들의 제주 체험학습은 그 첫 번째 교류 프로그램이다.

 

제주4·3과 여순10·19는 한 뿌리

제주4·3은 1948년 제주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를 외치며 피로써 저항한 민중항쟁이다. 여순10·19는 그 숭고한 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여수·순천 지역 군인과 시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이다. 결국, 제주4·3과 여순10·19, 둘은 한 뿌리인 셈이다.

하지만, 두 사건을 기억하고 역사 속에 정립하는 발걸음은 사뭇 다르다. 제주4·3이 특별법 제·개정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배상과 보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여순10·19는 아직 변변한 진상규명도, 특별법 제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주 백비(ⓒ4·3평화기념관)와 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학생들은 4·3평화기념관 내 백비白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여순사건희생위령비’ 뒷면의 말줄임표(‘……’)를 떠올렸다. ‘백비’는 이름을 새기지 못한 비석이라는 뜻으로 제주민의 아픔을 대변한다. 정명 되지 못한 채 누워 있는 백비 옆에는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고 적혀 있다. 희생과 학살 사이를 오가며 끝내 적지 못한 ‘여순사건희생자위령비’의 말줄임표(‘……’) 비문이 겹쳐진다. 학생들은 ‘백비’와 ‘말줄임표’ 가 하루빨리 그 이름을 찾고 내용을 채우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나눴다.

 

비극의 현장, 북촌리 학살터의 눈물

학생들이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학살사건 유적지에 도착하자 빗줄기가 더 거세졌다. 북촌리에선 1949년 1월 17일 하루에만 마을 주민 400여 명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했다. 당시 희생당한 아이들이 묻혀 있는 너분숭이 애기무덤 위에 누군가 올려놓은 동백꽃들이 놓여 있었다.

너븐숭이 애기무덤에는 학살당한 어린이와 무연고자 등이 임시 매장된 상태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어떻게 우리 군과 경찰이 무고한 양민을 그렇게 무참하게 죽일 수가 있나요.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의 억울함은 누가 풀어주어야 합니까?”

김창후 전 제주4·3연구소장의 설명을 듣던 하현채 학생은 73년 전 그날의 참상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북촌리 학살 사건을 그린 소설 <순이삼촌>을 읽어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정말 몸서리친다”고 말했다.

북촌리 학살사건 유적지, 북촌초등학교(ⓒ제주4·3평화재단)

소설 속 순이삼촌은 북촌리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옴팡밭 널브러진 시체들을 들어낸 자리에 고구마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그는 30년이 지난 뒤 그 옴팡밭으로 들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 죽음은 이미 삼십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다만, 삼십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 <순이삼촌> 중

‘순이삼촌 문학비’ 주변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비석들은 당시 제대로 안장하지 못한 희생자들의 관을 말해준다. 그 옆에 웅크린 채 누워 있는 ‘순이삼촌’ 비석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너븐숭이 ‘순이삼촌 문학비’(ⓒ제주4·3평화재단)

 

한림여중 친구들과 공동수업 ‘연대와 공유’

제주 방문 이틀째, 학생들은 제주4·3과 여순10·19의 연계성과 역사성에 대해 본격적인 공부 시간을 가졌다. 한림여자중학교 도서관에서 현지 학생 12명과 함께 공동수업을 받은 것이다.

“제주 4·3항쟁 진압을 거부한 여수의 군부대 이름이 뭘까요?”

한림여중 학생들이 미리 준비한 쪽지를 통해 질문을 던지자, 순천 팔마중 문석형 학생은 “14연대”라고 대답했다. “14연대 군인들이야말로 진정한 군인이다. 어떻게 국민을 지켜야할 군인이 우리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수 있었겠는가”라는 생각도 덧붙였다.

학생들은 한림여중 이현주 교사의 지도 아래 5명씩 4개 조로 나눠 토론식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의 주제는 ‘제주4·3을 이해하는 한림여중생의 여순10·19 바라보기’다. 일명 ‘여순10·19 복면가왕 프로젝트’ 형식으로 수업이 이뤄졌다. 학생들은 여순10·19에 대한 생각을 담은 가면을 만들었다.

박혜준 학생이 만든 ‘기억나무’ 가면

“뿌리가 하나인 나무의 두 줄기를 제주4·3과 여순10·19로 표현했어요. 뿌리를 하나로 둔 두 가지가 서로 손을 맞잡고, 결국에는 하나로 합해 꽃 바다를 이루는 모습을 형상화했답니다.”

한림여중 박혜준 학생은 ‘기억나무’라는 가면을 만들어 전남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그는 가면 속 떨어진 꽃잎은 억울하게 죽임 당한 희생자들이 흘린 피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학생은 ‘그날의 아픔’이라는 가면을 통해 제주4·3 진압을 거부한 14연대 군인들의 생각을 담아냈고, 73년 전 아픔을 함께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한림여중 친구들의 설명을 들은 여수·순천 지역 학생들의 눈빛도 빛났다. 기억과 연대, 공유의 의지가 엿보였다.

전남 학생과 제주 학생 공동수업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제주4·3희생자 유족이면서 평화·인권교육 명예교사인 강춘희 할머니로부터 제주4·3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진상규명을 위해) 73년을 기다린 4·3이다. 오직 서로 용서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기본”이라는 강 할머니의 말씀에 뜨겁게 공감했다.

전남 학생들과 제주 학생들은 차조좁쌀 주먹밥, 배추된장국, 고구마, 파래무침, 미숫가루 등 ‘4·3음식’을 함께 먹었다. 소설 속 음식을 메뉴로 개발해 함께 먹으며 그날의 아픔을 공유하자는 취지였다.

피난민들은 들나물과 갯가의 파래나 톳을 삶아 멸치젓 국물에 찍어먹으면서 간신히 두 달을 버텼는데… - <순이삼촌> 중

 

제주에서 본 희망의 메시지

학생들은 이어 섯알오름 학살터, 알뜨르 비행장 등 4·3을 전후해 발생한 또 다른 현대사 유적지를 답사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섯알오름’ 기슭 탄약고 터에서는 전국 형무소에 수감된 4·3 관련자와 요시찰자 등 250여 명이 ‘예비검속’이란 미명 하에 집단학살을 당했다. 6년 뒤 뒤엉킨 채 발굴된 희생자 유골은 구별이 어려워 한꺼번에 안장됐다. 묘에는 ‘백조일손百祖一孫’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로 다른 100분의 조상이 한날한시, 한곳에서 죽어 뼈가 엉기어 하나가 되었으니, 그 후손들은 이제 모두 하나’ 라는 뜻이다.

제주4·3 희생자 유족 강춘희 할머니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가 중국 대륙을 공격하기 위해 건설한 전초기지로, 지금도 격납고, 지하벙커, 동굴진지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아현 학생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제주에 이렇게 수많은 비극의 현장들이 있어 놀랐다. 그러나 제주는 도민들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평화의 섬’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 부러운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체험 마지막날인 4월 3일은 마침 제주4·3이 일어난지 꼭 73년째 되는 날이었다. 4·3평화공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정부 공식 추념식이 열렸다. 평화공원 위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알뜨르 비행장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학생들

무지개는 사흘간의 일정을 마친 학생들이 본 ‘희망’ 같았다. 학생들은 제주4·3이 특별법 제·개정으로 대한민국 역사로 자리매김해가듯, 여순10·19도 평화·인권의 봉오리로 피어오를 것이란 기대를 가졌다. 학생들은 “학교로 돌아가면 제주에서 보고 느낀 것을 친구들에게 널리 알려 여수·순천10·19의 역사성과 정당함에 대해 생각을 나누겠다”고 다짐했다.

제주와 여수를 상징하는 동백꽃으로 하나가 되는 전남 학생과 제주 학생의 교류 학습은 오는 10월 ‘여순항쟁’ 일을 앞두고 여수·순천에서 다시 이어진다.

글 오일종 사진 이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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