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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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0.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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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열정을 응원하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완전한 이해 없이도 우리는 완벽하게 사랑할 수 있다.”

유년을 회고하는, 나이든 노먼 맥클레인의 진술이다. 나는 이 말을, <흐르는 강물처럼>의 메시지를 가장 밀도 높게 응축시킨 것으로 여긴다.

형 노먼과 동생 폴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형제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아버지의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다. 노먼은 아버지가 원하는 경로를 따르는 반면, 폴은 저항하고 벗어나려 한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낚시를 가르친다. 노먼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제법 튼실한 물고기를 잡는다. 가장 큰 물고기를 건져내는 건 언제나 아버지였다. 폴이 건져 올린 물고기는 형이나 아버지 것보다 언제나 작았다. 

자라나 직장을 잡고 짝을 만나는 현실의 삶에서도 형과 동생의 길은 다르다. 형은 아름다운 백인 여성을 만나고 대학교수가 되어 큰 도시에 정착한다. 동생은 고향에 머물며 지역신문 기자로 일한다. 술과 도박을 좋아하고, 인디언 여성을 만나 사랑한다.

어른이 된 형제가 흐르는 강물에 몸을 담그고 낚시를 시작한다. 여기서 노먼은 플라이 낚시를 전개하는 폴 특유의 동작과 리듬을 보게 된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적이 없는 경이로운 움직임이다. 그 동작과 리듬을 통해 폴은 지금껏 본 중에 가장 커다란 물고기를 끌어 올린다. 그것은, 마침내 아버지에게서 벗어난, 가족의 틀을 넘어선 삶의 태도에 다름 아니다.

노먼이 합리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면, 폴은 설명되지 않는 어떤 열정으로 그 세계 너머를 탐닉했다. 합리성의 세계는 안전하고, 열정의 세계는 위험하다. 노먼과 폴은 안전과 위험, 합리성과 열정 각각을 대표하는 인격적 주체라 할 수 있다.

영화 속, 노먼과 폴이 미국에서 보낸 청년기는 ‘금주법의 시대’(1919~1932)였다. 술은 열정의 알레고리이다. 금주법은 열정을 통제하기 위한 권력의 기획이었다. 권력의 다른 말은 ‘아버지’이기도 하다. 폴은 위험을 제어하려는 권력, 안전을 추구하는 아버지를 모두 넘어서려 한 ‘위험하고 아름다운 열정’이었다.

 

고여있는 세상에 변화를 외치는 영화

끊임없이 팽창을 거듭했던 미국이 ‘보수화’하기 시작한 때가 ‘금주법의 시대’이기도 했다. 아시아계 이민 완전 금지 및 유럽인 이민 제한, 일부 주 공립학교의 진화론 교육금지 법령 등이 이때 제정되었다. 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자 집단인 KKK의 세력 확장도 금주법의 시대에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열정의 제어는 세계라는 강을 고이게 할뿐 아니라, 그 진화를 후퇴시킨다.

<흐르는 강물처럼>은 노먼과 폴,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 ‘미국’을 이야기한 영화이다. 한편으로는, 합리성과 열정, 설명되는 것과 설명되지 않은 것,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삶의 은유를 담은 영화가 <흐르는 강물처럼>이기도 하다.

보통의 세계에서 권장 받는 삶은 노먼일 것이다. 그러나 노먼은 그 이름처럼 ‘평범’ (normal)하다. 안전하지만, 거기에는 미지의세계로 굽이쳐 흐르는 역동이 부족하다. 폴의 삶은 멋지지만 권장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내부의 반대와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신생 기독교를 세계종교로 비약시킨 이는 사도 ‘바울’(Saint Paul)이었다.(이 문단은 종교적 맥락이 아닌 ‘역사’의 관점에서 독해해주길 바란다.) 다른 세계를 향해 흐름으로써 더 큰 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아버지도 한 때는 흘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멈췄다. 영화 속 아버지의 이름은 ‘리버런드’, 과거형이다. 나는, 이 같은숨은 뜻을 담아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이 극 중이름들을 부여했을 것으로 믿는다.

서두에 ‘이해와 사랑’을 영화의 핵심 진술로 꼽았다. 이해는 합리성의 영역이다. 사랑은 합리성 너머의 무엇이다. 사랑은, 무언가를 향한, 설명되지 않는 열정이다. 세계에 필요한 건 합리성만이 아니다. 그것을 넘어선 어떤 열정이 세계를 넓혔고, 진화시켜 왔다. 이해와 사랑, 설명되는 합리성과 설명되지 않는 열정은 세계의 존속과 전진을 위해 모두 필요하다. 사실 둘은 보완재다. 다만 영화는 ‘열정’을 강조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중단없이 흐르기를 권유한다. 감독의 연민으로 읽힌다. 흐르기를 멈춘, 고여 있는 세상에 대한.

글 이정우

■ 영화 소개
흐르는 강물처럼 A River Runs Through It (1992)

장르_ 드라마 / 상영시간_ 123분 / 감독_ 로버트 레드포드 / 출연_ 크레이그 셰퍼, 브래드 피트 / 등급_ 12세 이상 관람가
시카고 대학교수였던 노먼 맥클레인이 자신의 실화를 토대로 쓴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플라이 낚시의 환상적인 장면과 더불어, 가족 간의 사랑과 아픔 그리고 인생의 참 의미를 잔잔하게 그려낸다. 보고 나면 낚시가 꼭 하고 싶어지는 영화. 2014년 3월 재개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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