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박’ 여행의 성지, 백수해안도로 

글램핑은 특급호텔을 중심으로 고급 캠핑을 주도해왔다. 오토캠핑은 차량과 더불어 다양한 시설을 갖춘 야영장 같은 공간에서 가능하다. 두 방식은 각각 비용이 많이 들거나 장비를 두루 갖춰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자동차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차박은 기본적인 장비를 준비한 다음 화장실 정도만 주변에 있는 곳으로 떠나면 된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다녀오는 여행이라고 해서 ‘스텔스 차박’이라고도 부른다. 

칠산정에서 내려다본 백수해안도로. 해안절벽을 따라 길이 났다.

백수해안길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하지만 숙박을, 그것도 차박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다. 설렘과 함께 약간의 두려움 같은 것이 생겼다. 아무튼 떠났고, 산세가 바다 쪽을 향해 험하게 꺾여 내려오는 지형에 나 있는 길, 백수해안도로 입구에 도착했다. 

수많은 조개와 게를 키우고 있는 모래미 해수욕장을 지났다. 일몰을 보기 위해 노을 전시관 쪽으로 달렸다. 칠산정에 잠시 멈춰 노을이 들기 직전의 서해를 둘러보았다. 공연 무대의 커튼이 열리듯, 수평선과 하늘 사이가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사진을 몇 컷 담고 해안데크를 걸었다. 잘 다듬어진 데크길은 기존의 길과 이어져 20여km에 이른다. 백수해안도로를 찾는 도보순례객들의 단골 코스다. 

노을전시관에 이르니 사람들이 많았다. 전시관은 코로나19로 문을 열지 않았다. 사람들 은 저마다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바다와 구름 사이의 무대 위에 태양이 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6시 30분, 기다렸던 곳에 태양이 내려와 오랫동안 구름과 바다를 붉게 물들였다. 

대신등대에서 바라본 노을. 백수해안도로는 비경으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다. 제1회 대한민국 자연경관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바도 있다. 대신등대에서 시작해 노을전시관~건강365계단~칠산정으로 이어지는 노을길에선 아름다운 낙조를 만날 수 있다.

그 빛의 만찬을 내리 7시 20분까지 눈에 담고 카메라로 훔쳤다. 어둠이 내려앉자 노을 전시관의 주차장이 텅 비었다. 평평하고 화장실이 있는 여기가 내 첫 차박의 기항지로 적격이다 싶었다. 트렁크를 열고 벌레소리를 음악 삼으며 테이블을 폈다. 

라면 한봉지 끓여 먹는데도 필요한 것들이 많았다. 버너에 코펠을 놓고 물을 끓이고 그 사이 원두커피를 갈았다. 야외에서는 믹스커피도 호사일 터다. 차박의 장점을 즐기고파 원두를 챙겼다. 황홀한 일몰 후 라면 한 봉지의 행복을 만끽하고 차로 들어간다.

차 안은 고소한 커피향으로 충만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결핍을 느꼈다. 맞아, 음악이 있어야 호사가 완성되지. 안드레아 보첼리의 ‘il mare calmo dells sera’를 틀었다. ‘저녁의 고요한 바다를’이라는 제목의 이탈리아 노래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 주차장에서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다. 천정으로 블라인드를 열어 두었지만 별이 내려오지 않아 깜깜했다. 바다를 검은색으로 물들이느라 파도는 부지런히도 철썩대고 있었다. 나도 어두워졌다. 밤 열시 스르르 눈이 감겼다. 

백바위 해수욕장에 모여든 '차박 캠핑족'들

아침 5시 30분, 간단하게 스프를 챙겨 먹고 길을 나섰다. 언덕을 넘어서니 카페들이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인들의 사연이 있는 열부순절지에 이르렀다. 비석과 사당이 바다를 향해 정갈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유재란 때 함평에서 난리를 피해 가던 여인 9명이 칠산바다에 투신했다. 왜적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결을 택한 것이다. 이들을 기리는 장소다. 우리 국토 곳곳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그러나 찬양할 수만은 없는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는 장소이다. 

백수염전을 찾아갔다. 백수읍과 염산면의 경계에서 쇳소리가 웅웅거렸다. 바람을 통해 전기를 얻고자 하는 풍력발전기의 프로펠러 소리다. 하필 염전에 자리를 잡아 떼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소금은 귀하디 귀한 것이었다. 하지만 염부들의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 한동안 소금은 식품이 아니라 광물이었다. 왜곡된 시장에서 소금은 제값을 받지 못했다. 식품으로 인정받고 나서도 값싼 중국산 소금 등에 밀려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 

염전에서 일할 사람들이 없었다. 그나마 지켜왔던 분들은 고령으로 일을 손에 대기도 힘든 상황이 되었다. 바람 좋고 일조량이 풍부한 해안가의 그 반듯한 소금밭들은 태양열 발전 소와 풍력 발전소를 앉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백수염전과 두우리염전의 절반 가까이가 그렇게 속절없이 문을 닫았다. 한 염부 아저씨를 붙들고 이제 좀 시세가 좋아졌느냐고 물었다. 여름 내내 비가 와서 소금을 못 만드니 가격이 두 배까지 올랐다고 했다. 물량은 그만큼 줄었을 것이다. 염부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백바위 해수욕장으로 갔다. 캠핑족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준비한 물품들은 많고 크고 다양했다. 입이 떠억~ 벌어졌다. 간혹 나처럼 간소한 여행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차 안에 짐이 가득했다. 전염병과의 긴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캠핑으로라도 푸는 듯 떠들썩했다. 

향화도항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마지막 기점은 향화도항이다. 이곳에는 칠산바다를 조망할 타워와 무안 도리포까지 연결하는 칠산대교가 있다. 코로나19는 칠산타워의 문도 굳게 잠궜다. 항구의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곳은 캠핑족, 그 중에서도 차박캠핑의 아지트이다. 차의 뒷꽁무니에 눕거나 앉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는가 하면, 누군가는 낚시대를 드리우면서 망중한이다. 

칠산대교와 칠산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칠산타워

백수읍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백합죽을 주문했다. 백합은 전북 부안의 특산물이었다. 백수의 풀무등 같은 곳에서도 나고 자라지만 귀한 것이었다. 지금은 판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새만금 사업으로 부안산 백합은 거의 멸종되었다. 반면에 이곳 백수에서는 회, 회무침, 탕, 죽 까지 백합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요리가 나온다. 사근거리는 식감의 백합죽을 젓갈에 곁들여 먹었다. 

차박 여행자에게 백수해안도로는 아름다운 노을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점심 한 끼 값밖에 지불하지 못했다. 고맙고, 미안했다.

백합죽 한상. 백수읍에선 다양한 백합요리를 만날 수 있다

글·사진 전고필 

여행TIP

① 백수해안도로 찾아가기 

백수해안도로는 영광군 백수읍 백암리~대신리~길용리까지 이어지는 16.8㎞ 도로. 서해안 고속도로 영광IC에서 ‘백수해안도로’, ‘법성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② 추천 코스

[법성포]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굴비다리 등 유명 ─ [모래미해수욕장] 영광대교가 한 눈에 들어오는 모래해변 ─ [노을길 생태탐방로] 해안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산책로 ─ [노을전시관] 노을 기념사진촬영, 세계 곳곳 노을 전시, 노을전망대 운영 ─ [백수염전] 영광의 오랜 소금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 ─ [설도항 젓갈타운] 새우젓, 창란젓, 토하젓 등 다양한  젓갈류 구입 가능 ─ [칠산타워] 전남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 향화도항과 무안 도리포를 연결하는 칠산대교의 모습이 내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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