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관객 영화 '명량' 속 조선의 전략자산

<명량> 포스터

명량 (2014)
장르_액션, 드라마 상영시간_ 128분
감독_김한민 출연_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진구, 박보검, 권율 외
등급_15세 관람가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명량에서 13척의 배로 330척에 달하는 왜군을 격퇴했던, 1597년 해전을 다룬 영화다. 김한민 감독이 구상한 이순신 장군 3부작(명량, 한산, 노량)의 첫 작품이다. 두 번째 영화 <한산>은 배우 박해일과 김성규를 주연으로, 지난 6월 여수에서 ‘크랭크인’ 했다.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나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영화의 특징이다. 음악이 좋아 영화에 빠져들 수 있고, 배우들의 연기가 기대돼 극장을 찾을 수도 있다. 

영화 <명량>이 제시한 스토리라인은 여럿이다. 전쟁을 피하려 한 부하 장수들, 명량 바다의 특성, 바닷가 민중들의 두려움과 지혜로움, 해전(海戰)의 전개방식, 이순신의 전쟁 철학 등등. 관심과 취향에 따라 <명량>의 매력은 여럿일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전투의 기술적 특성’을 멋지게 표현한 점이 좋았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윗 문단에서 언급한 개별 스토리라인들이 하나둘씩 소개된다. 전투시퀀스에 이르러 이야기들은 한자리에 모이고, 전투가 끝난 다음 영화는 이순신의 전쟁철학으로 마무리된다. 클라이막스에서 ‘전투의 기술적 특성’을 맘껏 보여준 셈이니, 이 대목이 <명량>의 가장 큰 강조점이라해도 틀리지 않다.

명량해전은 이순신에 의해 철저히 설계된 전투였다. 예기치 못한 어떤 상황의 발생이 전투의 승패를 좌우하지 않았다. 적과 나의 역량 및 취약점을 충분히 살핀 이후 전투의 형태를 결정지었다. 우선 이순신이 활용할 수 있었던 전략자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이다. 

첫째, 명량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바다이다. 명량해전 당일의 난중일기에 “물살이 무척 험하다”고 쓰여 있는, 오늘날 진도대교 아래의 물길이다.

둘째, 조선군의 주 함대인 판옥선이다. 바닥이 평평하고 넓어 물길의 움직임이나 충격에 버티는 힘이 좋다. 재료는 소나무다. 

셋째, 공격용 무기인 화포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공격하기에 좋다. 개별 병사를 겨냥하기 보다는 전력단위, 곧 군사력의 일정 영역에 타격을 가한다. 

전투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왜군의 전략자산을 고려해 이순신은 이 셋을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조합시켰다. 효과적이라는 것은 왜군의 역량을 최소화시키고, 조선군의 역량을 최대화시키는 것이다. 

왜군의 전선은 바닥이 뾰족한 V자 형태의 첨저선(尖低船)이었다. 속도가 빠르지만 물살에 많이 흔들린다. 주무기인 조총을 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화포를 장착할 경우 흔들림 때문에 조준이 불가하다. 조준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화포의 반동충격을 이겨낼 만큼 튼튼하지도 않다. 까닭에 그들의 전법은 빠른 속도로 조선군의 전선에 접근한 다 음 갈고리로 묶고 사다리를 타고  어와 백병전을 치르는 것이었다. 

조선군과 왜군의 전략자산에 대 한 이해없이 영화 <명량>의 전투장면을 볼 경우 매우 혼란스럽다. 그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 보인다. 하지만 울돌목(명량) 물길에 대한 이해, 판옥선 vs. 첨저선, 화포 vs. 조총 등을 머릿속에 넣고 보면, 어지러운 가운데 질서정연한 전략 자산들의 충돌이 확인된다. 

이순신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화 포로 왜군의 전선(전투영역)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왜군은 거리를 좁혀 조총과 칼을 이용한 백병전으로 조 선군의 병사(개별전투단위)를 죽이려 든다. 

명량의 거친 물결에 양측의 전선이 얽힐 즈음 이순신은 배 자체를 무기로 전환시킨다. 튼튼한 판옥선으로 첨저선을 때려 부수는 ‘충파’ (沖波)이다. 일본 병선의 재료는 삼나무이다. 소나무가 삼나무보다 재질이 훨씬 단단하다. 명량의 거친 물결에 삼나무 첨저선이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그 물결의 힘을 제어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소나무 판옥선을 운용함으로써 가능한 전략이 충파였다. 

영화 <명량>은 1,760만 명이 넘는 관객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연령대의 모든 한국 사람들이 <명량>을 본 셈이다. 아직까지 한국영화 최고 기록이다.

이순신은 적을 알고 나를 알고 바다를 알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 그 앎을 가장 높은 수준의 전투 자산으로 치환시켜 해전의 과정에 투입했기 때문에 승리가 가능했다. <명량>은 이 점을 압도적인 스케일 의 전투장면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 더 들여다보기 

이순신이 파악한 명량의 물결은 전라도 민중들에게서 나왔다. 전라도 바닷가 민중들이야말로 최고의 전략자산이라는 사실을 <명량>은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전투승리 이후 환호하는 목소리들이 모두 전라도 사투리라는 점, 전라도 특화요리인 토란을 먹는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 짓는 것 등이 ‘약무호남 시무국가’에 대한 ‘암시’에 다름 아니다. 본문에서 밝힌 세 가지 전투자산 에 민중들의 힘과 지혜가 보태져 세계전쟁사에 우뚝 선 승리를 일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명량>의 감독 김한민이 전남 순천 출신이다. 

글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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