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은 왜 빌딩 위로 올라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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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은 왜 빌딩 위로 올라갔을까
  • 전남교육소식
  • 승인 2020.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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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욕망과 폭력을 고발한 영화 '킹콩'
킹콩 포스터

뉴욕, 그리고 해골섬. 영화 <킹콩>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두 개의 공간이다. 뉴욕은 당대 최고로 문명화한 도시이다. 해골섬은 도처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천만한 자연, 문명의 시각으로 볼 때 야만이다.

신기한 구경거리를 필름에 담아 한 몫 잡으려는 뉴욕의 쇼비즈니스 종사자들이 해골섬을 찾아 증기선에 오른다. 바다를 항해하는 갑판 위에서 한 선원이 책을 읽고 있다. 조셉 콘래드의 소설 <암흑의 핵심>이다.

영화를 보는 우리들은 해골섬이 ‘암흑’이고, 그곳의 왕 킹콩이 ‘핵심’이라는 연상 작용을 자연스럽게 한다. 이야기의 전개 또한 해골섬은 암흑이고 킹콩은 핵심이라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위로 올라간 '킹콩'

천신만고 끝에 뉴욕 사람들은 킹콩을 생포해 뉴욕으로 데려온다. 해골섬에서 왕이었던 킹콩은 뉴욕에 이르러 극장의 구경거리로 전락한다. 정글을 호령하던 킹콩은 밝은 문명에 갇힌 어두운 장난감처럼 보인다.

결코 장난감일 수 없는 킹콩은 극장을 깨부수고 뉴욕의 거리로 나온다. 기관총과 비행기로 무장한 군대가 출동해 킹콩을 공격한다. 킹콩은 뉴욕에서 가장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킹콩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추락하자 누군가가 독백처럼 질문한다. “왜 하필 저기 올라가서 죽음을 자초했지?” 또 누군가가 무심하게 답변한다. “짐승이 무얼 안다고…….”

장르만으로 볼 때 <킹콩>은 액션스릴러물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냥 본들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킹콩>은 현대문명에 대한 놀라운 성찰을 담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감독이 마련한 성찰적 시선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전체에 걸쳐 킹콩이 행복했던 순간은 딱 한 번,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여주인공과 장난치며 놀 때이다. 여의도 전체 면적보다 넓은 센트럴파크는 뉴욕의 허파 역할을 해왔다. 도시의 독소를 정화해주는 공간에서 킹콩과 여주인공, ‘문명과 야만’이 잠시나마 행복을 누린 셈이다.

군대와의 싸움에서 이기려고 했다면, 킹콩의 전투공간은 빌딩들 ‘사이’가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킹콩은 자신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가장 높은 곳을 선택했다. 초대형 빌딩을 딛고 선 킹콩, 문명의 극한에 자신의 모든 역량을 대립시킨 모습이다. 이기기 위한 대립은 아니었다. 자신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상징적 전투 공간을 선택했다.

도시의 독소를 정화해주는 공간에서 킹콩과 여주인공, ‘문명과 야만’이 잠시나마 행복을 누린 셈이다.

영화 <킹콩>의 시대 배경은 1930년대이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약탈하는 ‘제국주의’가 정점을 찍을 때이다. 그 약탈은, 문명이 야만을, 빛이 어두움을 깨우치는 것으로 미화되었다. 이 미화의 위선을 1899년에 <암흑의 핵심>이 문학의 언어로 고발했고, 영화 <킹콩>이 블록버스터 문법으로 인용했다.

여주인공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단 한 차례도 킹콩과의 공존을 모색하지 않았다. 어엿하고 고유한 독립적 주체로 킹콩을 대우하지 않았다. 막강한 문명의 폭력으로 포획하고 잔인하게 정글의 왕에 대한 어떠한 존중도 없었다. 제국의 위대함을 전시하고, 제국시민의 욕망을 해소하는 약탈물로만 대했다. 

해골섬과 뉴욕(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야만과 문명의 은유공간이다. 그 사이에 ‘짧은 행복’을 누렸던 센트럴파크는 야만과 문명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뉴욕의 선택에 공존이란 없었다. 약탈할 수 없다면 아예 멸망시키는 제국주의의 원리를 작동시켰다.

그러니까 영화 <킹콩>은 인류 최고의 도시문명을 갖춘 뉴욕이 ‘암흑의 핵심’이라고 진술하는 영화다. 킹콩은 그걸 확실히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저없이 암흑의 핵심 중의 핵심인 제국빌딩(empire state building)으로 올라갔다.

 

킹콩 ㅣ King Kong, 2005
장르
_ 모험, 판타지, 액션    상영시간_ 186분    감독_ 터 잭슨    출연_ 나오미 왓츠, 잭 블랙, 애드리언 브로디 외    등급_ 15세 관람가
1933년작 영화 <킹콩>의 리메이크판으로, <반지의 제왕>의 감독 피터 잭슨이 연출을 맡았다. 수억만 년 전의 고대 정글이 고스란히 존재하는 해골섬에서 전설로만 전해지던 거대한 킹콩을 발견한 인간들이 그를 생포해 뉴욕에 데려오면서 발생한 일을 담았다(줄거리 본문 참조). 제7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을 수상했다.

 

글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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