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_ KBS TV문학관 드라마 '사평역'

곽재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막차를 기다리는 필부필녀의 고단함을 사평역에 담았다. '사평역'의 한 장면.
곽재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막차를 기다리는 필부필녀의 고단함을 사평역에 담았다. 드라마 '사평역'의 한 장면.

한국의 60~70년대는 ‘근대화’ 시기로 통칭할 수 있다. 겉보기로는 경제 발전이 한 창인 때다. 속사정은 처참했다. 군사정부의 공업화 전략으로 농촌은 몰락에 몰락을 거듭했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이들은 값싼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는 빈민이 되었다.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 때에도 고향에 오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넓은 농토를 거느리고 있었던 전라남도 사람들이 근대 공업화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들은, 도시와 농촌의 경계에서, 고향과 타향의 중간 지점에서, 심리적으로든 실제로든,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았다.

농촌의 궁핍함을 벗어나려고 도시로 갔지만 도시라고 해서 농촌보다 좋지는 않았다. 안에서 밖으로 나가든,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든 삶의 궤도는 변하지 않았다. 절망은 가까웠고 희망은 멀었다. 누구도 시절의 철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분명했다. 이 시절의 속성을 조세희는, 안과 밖이 구분되지 않는,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뫼비우스 띠(<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 중)의 은유로 에둘러 말했다. 시인 곽재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막차를 기다리는 필부필녀들의 고단함으로 이 시절의 풍경을 스케치했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락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 곽재구, 사평역에서

 

<사평역에서>는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1981년이라는 연대기 탓에 5·18광주항쟁 이후의 막연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표현 했다는 ‘오해’가 생겨나곤 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1979년 즈음 써 놓았다가 한 해 뒤 겨울 신춘문예에 밀어 넣은 시가 <사평역에서>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60~70년대에 대한 총합이자 다가올 80년대를 예언한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옳다. 예술가에게 그럴만한 예지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있다’고 믿는다.

희망이랄 것도 없는 희망이 ‘막차’인데 그 ‘막차’는 진압봉과 총검으로 무장한 공수부대를 싣고 왔다.

대합실은 여기를 떠나 저기로 옮겨가는 공간이다. 이제 막 고향 땅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합실이었다면, 거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희망과 떠나온 세계에 대한 슬픔 같은 게 남아 있었을 것이다. 사평역 대합실은 그렇지 않다. 이곳에 대한 미련도, 저곳에 대한 희망도 없는, 몽롱한 공간이다. 사평역 대합실 속 사람들은 이미 떠나봤고, 짧은 귀향 후에 다시 떠났고, 그렇게 해서 자리 잡은 어떤 곳에서 또 다시 밀려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떠남이 반복되어 떠돎으로 확장된 이들이 잠시 머물러 있는 그런 공간이 사평역 대합실이다. 이들은 지금 뫼비우스띠에 갇혀 떠돌고 있다. 가다보면 다시 그 자리이다. 그나마 희망이랄 것도 없는 희망이 ‘막차’인데 그 ‘막차’는 진압봉과 총검으로 무장한 공수부대를 싣고 왔다.

1980년대가 그렇게 열렸다. 5·18의 본질을 사평역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실제로 나라 전체가 침묵했다. 오직 광주·전남 사람들만이 침묵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사평역 대합실에는 떠난 이들과 남은 자들이 함께 있다. 그들의 공통경험은 ‘전라도 농촌공동체의 몰락’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내 가족, 내 이웃의 생존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걸 뜻했다. 떠난 이들이나 남은 이들이나 등골이 휘도록 1년 내내 일해야 겨우 “한 두릅의 굴비와 한 광주리의 사과”를 얻을까 말까 했다. 원 없이 떠돌았다. 이제는 떠도는 것조차도 힘겹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맨 몸으로 추악한 폭력에 맞선, 불빛 속에 던진 한 줌의 눈물이 ‘5·18민중항쟁’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사평역의 한 장면

초고속 인터넷망과 KTX고속철도의 시대이다. 한없이 느린 ‘사평역’의 분위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문학적 장치일 수도 있다. 다만 질문은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고단한 삶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났는가. 우리에게는 오직 희망만이 남아 있는가. 우리가 눈물을 보탤 안타깝고 가련하고 부조리한 세상은 더 이상 없는가. 

글 이정우

 

사평역, 1985


방송_ KBS TV 문학관 210화
(1985년 12월 21일)
연출_ 전세권 원작/극본_ 임철우
출연_ 김영철, 이주실, 이대로, 전원주, 김희진 외

1981년에 발표된 시 <사평역에서>를 보고 소설가 임철우는 1983년 단편 <사평역>을 썼다.(둘은 각각 전남대 국문과와 영문과에서 공부한 동기생이다.) 시에 살이 붙어 소설이 됐다. 두 해 뒤 시와 소설은 ‘KBS TV문학관’의 드라마로 송출되었다. TV문학관의 ‘사평역’에는 한국현대사와 5·18에 대한 상징들이 숨은 그림처럼 박혀 있다. 학교에서 쫓겨난 대학생은 80학번이며, “아우슈비츠가 있었고 그 후 아무도 아름다움을 노래하지 않았다”는 강의실의 판서를 그는 오랫동안 응시한다. 옥살이를 마치고 나온 중년의 사내는 30년 넘게 갇혀 있는 ‘감방동료’의 어머니를 찾아 간다. 그 ‘동료’는 빨치산 출신 미전향 장기수였다.
술집 작부가 된 농촌 여성, 자식들이 눈에 밟혀 일하던 식당의 현금을 훔쳐 고향으로 되돌아 도망친 젊은 엄마 등등. 전두환의 폭력 통치가 극해 달했던 시대, 드라마 <사평역>은 은유와 상징을 통해 당대를 기록한 예술가들의 높은 긴장을 보여준다. 올해 5월 1일 KBS가 유튜브를 통해 처음 공개했다. 35년 전 작품이지만, 요즈음의 감성으로 보더라도 색감과 연출에 어색함이 없다. 전라도 사투리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사평역’의 배경지역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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