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복자 펠레」

 

정복자 펠레 영화 포스터
정복자 펠레 영화 포스터
 

모든 출발은 미래로 나아간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설레거나 두렵다. 영화 <정복자 펠레>는 출발을 이야기한다. 설렘과 두려움이라는 두 감정이 이야기 곳곳에서 얽히고 풀린다. 주인공 펠레에게뿐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 모두에게 그렇다.

펠레는 엄마를 잃은 늦둥이로 어리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뻘이다. 둘은 스웨덴을 떠나 덴마크로 향한다. 정확히는,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아버지에게 ‘얹혀’ 펠레는 미지의 나라로 가는 중이다.

안갯속을 항해하는 배 위에서 펠레는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빠, 그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세요.” 아버지는 펠레에게 어떤 희망의 말을 여러 차례 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대답한다. “임금이 높은 나라라서 아이들은 일을 하지 않고 종일 놀 수 있단다.”

어리지만, 펠레는 허풍기 다분한 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세상을 모르지 않는다. 배 난간에서 곧 도착할 포구를 바라보는 펠레의 눈동자는 많이 흔들린다.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펠레의 첫번째 출발은 이렇게 시작된다.

겨우 얻은 일자리는 농장이다. 임금은 높지 않고, 놀 수 있는 시간은 ‘전혀’ 없다. 아버지와 함께 펠레는 하루 종일 일한다. 잠자리는 파리가 들끓는 헛간이다. 사력을 다해야 하루하루를 넘기며 살 수 있다. 산다기보다는 버틴다고 말하는 게 옳을 것 같다. 학교에 다니고 친구도 사귀지만, 가까스로, 겨우 그럴 수 있을 뿐이다.

고된 농장살이의 와중에도 ‘희망’ 같은 것이 생겨난다. 착하고 총명한 펠레는 농장의 ‘관리자’ 자리를 얻는다. 안주인의 눈에 들어 헛간이 아닌, 화려한 저택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기회도 온다. 그럼에도 펠레의 눈은 여전히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설렘은 발견되지 않는다.

'정복자 펠레' 속 한 장면. 펠레.
'정복자 펠레' 속 한 장면. 펠레.

펠레의 마음 속에는 이미 다른 출발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출발이 농장의 관리자나, 저택의 차 한 잔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출발이 보장해 주는 것은 ‘누구의 펠레’가 아닌, ‘그냥 펠레’, 그것 하나뿐이다. 이제 펠레는 ‘아버지의 펠레’도 아니다. 펠레는 농장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펠레가 남기를 원하고, 펠레는 아버지가 함께 떠나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남고, 펠레는 떠난다. 아버지는 출발하지 않고 펠레는 출발한다. 아버지는 현재에 주저 앉고, 펠레는 미래로 나아간다. 늙은 아버지는 어쩔 수 없다. 어린 펠레는 선택할 수 있었다. 더 나은 삶이라는 시각에서 펠레의 선택이 옳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다만 펠레는 세상에 정복당하지 않고, 세상을 정복하겠다는, 그런 선택을 했을 뿐이다.

덴마크의 포구에 도착할 때 펠레는 아버지 품에 안겨 배에서 내렸다. 이제 펠레는 온전히 자신의 두 발로 아버지를 떠나고, 농장을 떠나고, 덴마크를 떠난다. 바다 건너 또 다른 미지의 나라로 출발한다. 멀리서 잡은 화면(롱샷)은 펠레의 눈동자를 보여주지 않는다. 출발하는 펠레의 눈동자가 두려움인지 셀렘인지 알 수가 없다. 짐작할 수는 있다.

두려움이 큰 자의 발걸음은 멈칫거린다. 설렘이 더 큰 자의 발걸음은 분명한 방향으로 경쾌하게 움직인다. 가야 할 길, 도달할 목적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펠레는 곧장 나아간다. 어린 펠레가 정복자 펠레를 향해 출발, 곧 첫 발을 떼는 순간이다. 출발의 본질은 출발 이전과의 단절이다.

글 이정우

 

정복자 펠레 ㅣ Pelle the Conqueror, 1987
장르_ 드라마 / 개봉_ 1989.07.15 / 감독_ 빌 어거스트 / 출연_ 펠레 베네가드, 막스 폰 시도우, 비욘 그라나스 외
스웨덴 소년 펠레(펠레 베네가드)는 아버지(막스 폰 시도우)와 함께 직업을 찾아 덴마크로 이주한다. 덴마크의 한 농장에 정착하는 두 부자. 아버지가 세상에서 최고인 줄만 알았던 펠레는 새로운 환경에서 세상을 배워간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알콜 중독자가 된 농장 안주인과 작업 감독에게 대들다가 일꾼 에릭은 식물인간이 되고, 아버지는 노쇠해지면서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펠레는 농장을 벗어나 더 넓고 새로운 세계로 나갈 결심을 한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작가 마르틴 안데르센 넥쉐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으로 1988년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그 다음해 아카데미와 골든글러브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출처. 다음 영화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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