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눈길'의 무대, 장흥 회진 진목마을

가운데 진목마을 10시 방향 산자락으로 ‘눈길’이 이어진다. 맨 뒤편에 천관산이 있다.
가운데 진목마을 10시 방향 산자락으로 ‘눈길’이 이어진다. 맨 뒤편에 천관산이 있다.

15년 전쯤의 일이다. 이청준 선생을 장흥에서 만나 광주까지 차로 동행하는 길이었다. 차 안에는 우리 둘 외에 아무도 없었다. 평소 선생에게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이것저것 두서없이 물었다. 선생은 어떤 질문이건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하지만 선생의 소설 <눈길>에 대한 질문에서는 조금 어투가 달라졌다. <눈길>을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눈에 애잔함이 잠시 스몄다가 사라진 뒤 선생은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나를 보내고 어머니 혼자 걸었을 눈길을 생각하면 내 마음이 함께 밟힌다. 평생 어머니가 걸었을 그 눈길처럼 아프고, 먹먹한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선생에게 <눈길>은, 어머니는 그런 존재였다.

지난 겨울은 눈이 귀했다. 집을 나설 때는 이청준 선생과 어머니가 함께 걸었고, 돌아올 때는 어머니 혼자 가슴 무너지며 걸었던 그 길에 눈 한 번 제대로 쌓이지 못하고 봄이 왔다. 과학적으로 눈은 차갑다. 그러나 소설 <눈길> 위에 송이송이 쌓인 눈은 포근하고 따듯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 눈길에 가득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과 어머니, 서로에게 그 눈길은 가장 진실한 영혼의 궤적이었다.

 

이번 생, ‘소설가 이청준’이면 족했다!

이청준 소설가

어느 순간 이청준 선생의 <눈길>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소설이 되었다. 국어교과서의 힘이 크다. <눈길>이 교과서에 실리면서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새로 느끼는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눈길>을 탄생시킨 곳, 이청준 문학지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장흥 회진면 진목마을에 가면 소설 <눈길>의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진목마을에서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선생의 무덤과 ‘이청준 문학자리’다. 2008년 선생은 세상을 떠났다. 폐암이었다.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뇌하며 하루 세 갑씩 피운 담배가 원인이었다. 한국문단의 거목이었지만 선생의 무덤 앞 묘비에는 생에 대한 어떤 유훈도 남겨져 있지 않다. 그저 ‘소설가 이청준’이라고만 적혀 있다. 그는 이번 생에서 소설 썼던 사람 이청준이라고만 기억되면 그것으로 족했던 것이다.

무덤 바로 옆에 ‘이청준 문학자리’가 있다. 동료 문인과 그의 소설을 마음에 품은 독자들이 성금을 모아 만든 이청준 기념 공간이다. 네모반듯한 검은 오석으로 만든 ‘미백바위’ (미백未百은 선생의 호다)는 이청준 문학의 엄청난 힘과 그것을 응집한, 그의 완강한 정서적 지층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문학자리에서는 <서편제>나 <눈길> 등 자신이 쓴 수많은 소설들이 태어난 태생지들을, 작가가 생전에 손수 그려 표시한 지도의 안내로 만날 수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청준 문학의 원천은 고향 장흥이었고, 고향 구석구석이 그의 소설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남쪽 바다를 응시하는 ‘이청준 문학자리’, 그 바다 어디 즈음에 소설 '서편제'에 나오는 ‘청학동’이 있다.
남쪽 바다를 응시하는 ‘이청준 문학자리’, 그 바다 어디 즈음에 소설 '서편제'에 나오는 ‘청학동’이 있다.

 

 

자식이 밟은 길을 되밟고 걸었던 ‘눈길’

<눈길>의 시작은 진목마을 생가다. 이청준이 태어나 중학교 입학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작은 마당이 있는 다섯 칸짜리 한옥이다. 한때는 남에게 팔렸다가 2005년 장흥군이 사들여 생가로 복원했다.

이청준 소설가의 생가
이청준 소설가의 생가

고향집이 남에게 팔리고, 어머니는 새 집주인에게 부탁을 한다. 도시로 고등학교 간 아들이 오면 하루 재워 보내게 해 달라고, 자식에게 집이 팔린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옛집에서 아들을 하루 재우고 다시 도시로 보내는 다음 날 새벽, 눈이 펑펑 내린다.어머니는 눈길을 밟고 읍내까지 아들을 바래다준다. 아들을 보내고 되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눈에 찍힌 아들의 발자국을 밟으며 서럽게 눈길을 되짚어 온다.

진목마을 생가를 나서면 대덕 읍내까지 이십 리 길이다. 그 먼 길을 걸으며 어머니와 아들은 별 말이 없었다. 그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

“신작로를 지나 산길을 들어서도 굽이굽이 돌아온 그 몹쓸 발자국들에 아직도 도란도란 저아그 목소리나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듯만 싶었제. 산비둘기만 푸르르 날아올라도 저 아그넋이 새가 되어 다시 되돌아오는 듯 놀라지고, 나무들 눈을 쓰고 서있는 것만 보아도 뒤에서 금세 저 아그 모습이 뛰어나올 것만 싶었지야.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고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부디 부디 너라도 좋은 운 타서 복 받고 잘 살거라….”(소설 <눈길> 중)
 

이청준 선생과 어머니가 걸었던 ‘눈길’을 걷는다. 한때는 진목뿐만 아니라 인근 6개 마을 사람들이 읍내로 향하던 길이었다. 그 길이 쓸모없어진 것은 80년대 말이다. 회진이 면으로 승격되고, 대덕읍과 통하는 새로운 길이 뚫리면서 그 길은 오래 버려졌다. 지금은 장흥군이 이청준 소설 <눈길>의 길을 복원해 옛 길을 재현했다. 이청준 생가 마을인 진목리 ‘아랫사정’에서 출발해 뒷산을 거쳐 대덕읍 삼거리 ‘주막거리’까지 이어지는 약 8.1㎞ 길이다.

 

이제는 이청준 선생도 그의 어머니도 세상에 없다. 오직 둘이 함께 걸었던 ‘눈길’만 남아 세상 모든 부모와 세상 모든 자식들의 마음을 적신다.

글ㆍ사진 한경숙

 

이청준 <눈길> 수록 교과서
고등학교 국어(하), 국정도서편찬위원회, 2004
문학 천재(고), 2012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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