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자리에서 ‘우리들의 오월’을 외치다전남교육청 교직원들이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오월정신을 기렸다. 국립5·18민주묘지를 합동 참배하고 각 지역의 민주열사 생가와 묘지를 방문해 넋을 기렸다. 또한 민주화운동 유공자를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하거나 주먹밥을 먹고 나누며 나눔과 연대, 참여의 실천을 다짐했다.학교에서는 교과와 행사활동을 통해 5·18민주화운동 계기수업을 실시했다. 도교육청이 제작한 등의 수업자료를 활용하고, ,
광양중진초 선생님들, “멋진 세상 보여줄게”스승의 날, 선생님들이 제자들을 위해 책을 기증했어요. 책 속에 펼쳐지는 멋진 세상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대요. 기증책 첫 장에는 선생님들이 마음을 담아 편지를 남겼어요. 보성 용정중 제자들, “선생님께 이 상을 드립니다”학생들이 선생님, 기숙사 사감, 조리사 등 학교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상장을 전달했어요. “선생님들의 사랑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저희 때문에 오늘 하루 더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고서진) 나주 다야유치원 새내기 교사들의 첫 공개수업일우리 딸이 어느새 교사가 되어
사진 속 두 사람은지금 무슨일을 하고 있는 걸까요? 보내실 곳 '함께 꿈꾸는미래' 카카오톡(카카오톡에서 @함께꿈꾸는미래를 검색하세요)
기뻤고, 설렜고, 행복했던 것들은 수명이 깁니다. 쓰임새를 잃어버린 오랜 물건이 아직 우리에게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기억을 불러들이는 ‘트리거방아쇠’ 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 독자 여러분께 좋은 기억을 불러오는 소재이길 소망합니다.7월호 우체통 주제는 ‘취미’입니다. ‘집콕’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사진과 함께 보내주시면 다음호에 실어드립니다. 보내실 곳_ jn-edu@naver.com(성명, 연락처를 꼭 남겨주세요.) 아버지의 첫 선물아버지가 처음으로 사주신 가방과 목걸이를 가방과 목걸이를 하고 찍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상장나주 빛가람중, 스승의 날 기념 시상식스승의 날, 학생들이 교무실을 찾아왔다. “지금부터 시상식이 있겠습니다.” 선생님들은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주 빛가람중 학생회와 반장협의회에서 준비한 깜짝 이벤트였다.첫 번째 수상자는 류미영 교장선생님이었다. “귀하는 비전을 갖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교사를 지지하고 학생을 교육하여 이 상장을 드립니다.” 상 이름이 ‘학교의 정상’이었다.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작명 센스가 돋보였다. 뒤이어 박주실 교감선생님은 “매사 긍정적인 태도로 선생님들의 기운을 북
“교육에는 네 주체가 있습니다. 학생, 교직원, 학부모, 지역사회입니다. 과거, 학교는 공동체가 소통하고 교류하는 장이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등 여러 가지 상황이 겹치면서, 학교에 그런 기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처럼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려면 지역사회와 함께 해야 합니다.”전남도의회 교육위원회 오하근(순천 제4선거구) 의원은, 교육에서 공동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좋은 공동체가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고, 좋은 공동체에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다시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말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는 6년 전에 출간된 동학 관련 소설책이에요. 올해 책을 구한다는 문의가 많았어요. 덕분에 지난 3월 개정판이 나왔어요. 감사한 일이죠.(이하 소설 이름을 으로 약칭합니다.-주) 은 ‘동학언니들’ 모임에서 시작됐어요. 전국에서 모인 15명의 여성들이 의기투합한 거죠. 서울부터 해남 땅끝까지 사는 곳도 다양하고, 교사부터 한의사, 시민활동가 등 직업도 가지각색인 모임이었죠.우리는 ‘여성’의 주체적 삶을 문학으로 그려내려고 했어요. 그 무대를 동학으로 했죠. 동학은 ‘사람이 곧 하
요즘 일제강점기 일본 헌병으로 분장을 하고 학교를 찾아가고 있어요. 일제에 맞선 우리 지역 의병 활동 역사를 알리기 위한 역할극의 일환이지요. 함평 월야달맞이마을학교는 올해 함평의 초, 중학교를 돌며 ‘찾아가는 항일 의병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요. 마을학교 선생님들이 일본 헌병과 의병 등 역할을 나눠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연극을 해요. 우리 역사를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학생들에게 들려주려고 노력하고 있죠. 본업은 목사예요. 주말에 예배가 있으니까 평일에 틈틈이 마을학교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어요. 어쩌다보니 이중생활(?)을
정악 계통의 음악에서 단조롭게 쓰이던 가야금을 다양한 주법과 농현법 개발로 다채롭고 풍부한 표현을 가능케 한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 악성(樂聖) 김창조 선생. 영암은 선생의 고향이자, 그의 계보를 잇는 김병호, 한성기, 김죽파 등 가야금 명인들을 배출한 전통음악의 옥토(玉土)다. 가야금 산조의 틀을 완성한 본고장답게 영암은 전통음악 계승 발전에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가야금 신동이 있다. 전통음악을 통해 미래를 꿈꾸는 영암초 이채은 학생(4학년)을 만나봤다. 영암은 어렸을 때부터 가야금을 배우는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살아 있었으나 정약전은 이미 하늘에 속한 사람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노론 벽파의 정치적 음모는 정약전에게 사상범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천주교 탄압은 명분을 가장한 핑계였을 뿐이었다. 진짜 목적은 정적 제거였다. 정약전 한 사람에게만 향한 칼날도 아니었다. 동생 정약용을 비롯해 온 집안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먼 변방으로 유배를 떠났다.1801년 음력 11월 22일 아침, 그는 나주 밤남정에서 동생 정약용과 헤어졌다. 거기서부터 둘의 유배길이 갈라졌다. 동생은 월출산을 넘어 강진으로 향했다.
칙칙칙칙, 하얀 김이 밥솥 위로 새어나온다. 쌀이 익어가는 ‘단내’가 진동한다. 흙내 같기도 풀내 같기도 땀내 같기도 하다. ‘무담시*’ 배가 고파진다. 밥내에서 농부의 일년치 노동이 그려진다. 전남에는 14만4,000여 가구의 농가가 생활하고 있다. 이중 절반 가량이 벼를 주소득원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68만7,812톤. 전국 시·도 중 가장 많은 양이다.** 전라남도가 ‘농도’로 불리는 이유다. 체험 삶의 현장, 쟁기질부터 모심기까지를 담아보았다. *무담시=괜히 **2020년 기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12월 쟁
죽순竹筍은 조연이다. 잡채, 고등어조림, 된장찌개, 골뱅이무침 같은 요리에 더해진다. 죽순이 주인 음식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죽순 없는 오뉴월 식탁은 섭섭할 것 같다. 서걱거리는 식감과 슴슴한 맛이 활력을 돋우기 때문이다. 요즘 말로 죽순은 ‘맛깔나는 조연Scene Stealer’이다. 어린 시절 입이 짧았다. 일 년 중 요맘때 밥상에 오른 죽순나물엔 젓가락 한번 대지 않았다. 그 서걱거림과 슴슴함을 싫어했다. 봄과 여름 사이 먹을 시기도 짧아 익숙해질 틈도 없었다. 어머니도 자식이 외면하는 음식을 좀처럼 식탁에 올리지 않았
전남 구례군 토지면 소재지를 지나 10리4㎞ 정도 더 가면 ‘석주관(石柱關)’에 이른다. 구례에서 하동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물목이 가장 좁은 곳이다. 양편에 웅장하게 솟은 백운산과 지리산이 겨우 ‘끊어져’ 있는 지점이다.험준한 산, 넓은 강은 국가를 나누고 문화의 차이를 발생시켰다. 그럼에도, 나누어 진 것을 잇고, 차이를 줄여 주는 ‘틈’이 있었다. 험준한 산이라면 고개가, 넓은 강이라면 나루가, 산과 강이 잇대어진 곳이라면 좁은 물목이 ‘틈’ 역할을 했다.읍성邑城은 일상적인 통치와 행정집행 기능을 담당했다. 요즈음으로 치면 순천
한때는 삶터였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하루의 1/3을 보내며 꿈을 키웠다. 아이들은 미래였다. 어른들은 학교의 성장이 마을의 발전이라 믿었다. 학교의 필요needs에 민감했고 손을 보탰다. 어떤 곳은 아예 학교를 직접 세우기도 했다. 인구가 감소했고 마을은 늙어갔다. 아이는 성장해 떠났고 찾아오는 아이도 점점 줄었다. 결국 학교가 문을 닫았다. 빛바랜 교사와 잡풀 무성한 운동장만 남았다. 길게는 몇 십 년 홀로 있었다.폐교는 교육청과 지자체, 마을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빈 건물은 흉물이 되었고,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전남의 교사 50여 명이 지난 5월 21~22일 이틀 동안 새롭고 깊게 강진과 만났다. 전라남도교육청이 202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남도 민주평화길’의 아홉 번째 답사였다. 회를 거듭하면서 남도 민주평화길은 만족도가 남다른 직무연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강진 답사를 예시 삼아 일곱 개의 장면으로 남도 민주평화길의 의미를 살펴본다. #1 다시 보고 깊이 보고 새롭게 보기21세기 교사들이 19세기 다산 정약용의 강진 유배지를 더듬었다. 강진에 온 직후 살았던 주막집 사의재, 10년을 기거하며 저술에 힘쓴 다산초당,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