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명칭이 갖는 의미

전쟁은 지울 수 없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긴다. 그 전쟁이 한 뿌리 형제들 간에 벌어진 것이라면, 또한 그 전쟁이 외세의 이익에 연관되어 당사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폐허의 작전을 견뎌야 했던 것이라면, 상처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이 크고 깊을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이 그렇다.

전쟁의 아픔은 세대를 이어 유전되고, 집단(흔히 ‘국가’라고 부르는)에게는 가장 강력한 기억으로 전승되어 이념, 제도, 정책, 대외관계 등 시스템의 모든 부분에 최우선 고려사항이 된다. 전쟁의 공포 앞에서 ‘합리성의 왜곡’은 쉽게 일어나고, 너무도 편안하게 수용된다. 우리는 휴전의 상태인 채로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아무리 악랄한 전쟁이라도 마침표는 있다. 하지만 1950년 6월 25일을 기점으로 한반도에서 전면화한 ‘남-북 간 전쟁’은 지금까지 진행 중이다. 지구상의 어떠한 전쟁도 72년 동안 ‘휴전’인 경우는 없다. 전쟁을 기억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휴전을 종전으로, 긴장을 평화로 바꾸기 위해서다.

다섯 가지 카테고리로 전쟁 특집을 꾸몄다.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평화를 위한 노력, 가슴 아픈 사연, 전쟁 속 사람을 다룬 영화, 전쟁이 남긴 상처를 기록한 문학 등이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대한 이야기를 몇 글자, 몇 쪽의 지면에 담는 건 불가능하다. 다만 노력하고자 했다. 전쟁, 그리고 그것이 남긴 상처를 조금이라도 이해해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라고 절규했던 박봉우 시인의 질문에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① 6·25전쟁인가 vs 한국전쟁인가
② 전쟁의 교훈은 평화
③ 전쟁의 그늘에서 50년을 떠돈 노래
④ 거기, 사람이 있었네
⑤ 어느 편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


01
6·25전쟁인가 vs 한국전쟁인가
전쟁 명칭이 갖는 의미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 20분경,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3년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각각 16개국, 3개국이 참전했다. 1953년 7월 27일 22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69년이 흐른 2022년 5월 31일 현재, 우리는 25,129일째 정전 또는 휴전 상태로 살고 있다. 

남한에서 이 전쟁을 부르는 명칭은 여럿이다. 교과서는 ‘6·25전쟁’이라고 적고, 국내의 대다수 사람들은 ‘6·25’라고 줄여 부른다. 학계는 한동안 ‘한국전쟁’이라 불렀고, 또

다른 다수 사람들도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이 둘 모두 합당한 명칭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6·25전쟁’은 6월 25일 북한의 ‘남침’이 전쟁의 본질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반공과 반북을 강조하고, 북한의 ‘적화야욕’을 경계하고 안보를 강화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또한 6월 25일 그날에만 주목하는 명명이라서 해방 이후 국가수립 방향을 둘러싼 좌우익의 대립과 미소 냉전이라는 넓고 긴 배경을 놓치게 된다.

임진강역 앞 이정표(ⓒ조현아)
임진강역 앞 이정표(ⓒ조현아)

‘한국전쟁’은 외국 학계에서 수입된 개념이다. 1980년대 미국과 유럽의 한국사 연구물들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The Korean War’가 ‘한국전쟁’으로 번역됐다. ‘6·25’가 합당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져있던 터라, 학계에 이 용어가 대안처럼 신속히 확산됐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가 있다. ‘한국’은 남한만을 지칭하므로 전쟁 당사자인 남북한 모두를 포괄하지 못한다. 자칫 ‘한국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오해도 낳을 수 있다. 또한 이 땅에서 벌어진 무력충돌이 1950~53년의 사건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간 한반도전쟁, 남북한전쟁, 코리아전쟁 등의 대안이 제시됐지만, 어느 것도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남북한전쟁’의 경우 중국, 미국, 유엔참전국 등 국제적 전쟁참가자들을 배제한다. 결국 아직까지는 ‘6·25전쟁’이 무난히 수용되고 있다. 발생 날짜로 이름을 짓는 방식은 비교적 가치중립적이고, 세계적으로도 일반적인 전쟁 명명법 중 하나다. 또한 당시의 충격을 기억하는 국민들이 자연스레 채택한 용어이기도 하다. 대신 학계는 최적의 용어에 합의하기 전까지  ‘한시적’인 명명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남한 대성동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인공기가 마주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는 북한 땅이 육안으로도 보인다.(ⓒ뉴시스DB)
남한 대성동 태극기와 북한 기정동 인공기가 마주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도라전망대에서는 북한 땅이 육안으로도 보인다.(ⓒ뉴시스DB)

중국은 ‘항미원조전쟁’, 일본은 ‘조선전쟁’, 영미권은 ‘The Korean War’ 등으로 칭한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부른다. 북한의 명명은 전쟁 상대국인 남한으로서는 일방적으로 들릴 수 있다. 물론 남한이 주로 쓰는 6·25 역시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는 않고 있다. 정치역학 구도가 특히 복잡한 이 전쟁의 이름짓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념 대립 구도에서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한국사회에선 특히 어렵다. 한 역사학자는 “이 전쟁을 어떤 이름으로 부를 것이며, 성격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는 한국에서 합리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주제”라고 단언했다. 모 교수는 2005년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칼럼에서 ‘통일전쟁’이라고 썼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을 깨닫게 하는 사례다. 결국 이 전쟁의 호칭 문제는 남북 평화협정 체결, 분단상황 해소처럼 결정적인 사태 변화나, 학계의 끈질긴 논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이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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