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어

위이이잉~. 한겨울에도 거실 선풍기의 날개가 돌았다. 바람이 겨냥한 곳은 키 낮은 상 위에 놓인 대나무 소쿠리. 그곳에는 비늘과 지느러미가 다듬어지고 잘 씻겨진 생선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조기와 병치, 죽상어는 늘 있었다. 가끔 숭어와 서대, 장대가 끼어들곤 했다. 물고기들은 집안 가득 옅은 비린내를 풍기며 연중행사를 예고했다. 제사가 목전이었다. 

생선들은 거기서 일주일 정도 몸을 말렸다. 그날이 오면 찜기에서 뜨거운 증기의 세례를 받았다. 몸에 실고추 몇 가닥을 걸치고 ‘어동육서魚東肉西’에 따라 제사상 오른쪽 두 번째 열을 장식했다.

제를 지내고 나서 가족은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반찬은 제수들이었다. 제삿날 저녁은 맛이 없었다. 늘 어머니가 심심하게 간을 한 탓이었다. 특히, 생선은 밍밍했다. 살집이 쫀득한 조기는 그나마 먹을만했다. 병치에는 좀처럼 젓가락이 가지 않았다. 퍽퍽하고 비렸다.

병어찜

병치는 <자산어보>에 편어扁魚, 속명 병어로 기록돼 있다. 편어는 납작한 물고기란 뜻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병어를 ‘병치’로, 대물 병어를 ‘덕자’로 부른다. 

“큰 놈은 2척 정도”라는데, 길이 60㎝에 높이 45㎝ 가량의 덕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친구 하나가 “넓은 고무대야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꽉 찬” 덕자를 실제로 봤다고 한다. 의심을 거두는 수밖에 없겠다.

병치는 튀는 생선이다. 유선형이 우등 형질인 물고기의 세계에서 마름모꼴이라니. 편어라는 말처럼 납작 누워있는 놈만 봐와서 그럴까. 헤엄치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본 조감도가 흔했다면, 물흐름을 잘 타는 병치의 몸을 냉큼 알아차렸을 텐데. 

조림으로 병치의 맛을 알았다. 바닥이 넓은 냄비에 3~4월에 수확한 햇감자를 두껍게 썰어 깐다. 그 위에 병치 두 마리를 얹는다. 얼큰한 양념을 넣고 자박자박 졸이다가 잘게 썬 깻잎을 더해 한소끔 더 끓여내면 끝이다.

갓 지은 쌀밥 위에 부드러운 병치살과 푹 익은 감자를 으깬다. 국물 두어 숟가락을 섞어 함께 뒤적뒤적 비벼내면 밥 두어 공기는 뚝딱이다. 밥과 이토록 잘 어울리는 병치조림 맛을 성인이 돼서야 알았을까.

병어회

병치회도 별미다. 생물을 잘 손질해 얼려뒀다가 뼈째 썰어 내놓으면 살얼음과 함께 병치살이 입속에서 녹는다. 햇양파 한 조각에 회를 올리고, 참기름 약간 섞은 된장을 더해 씹으면 ‘단짠’의 절정이다. 뒤이어 퍼지는 고소함은 병치가 왜 영어로 ‘버터피쉬butterfish’인지 절로 알게 한다.

올해는 제대로 병치를 먹고 싶어졌다. ‘거금을 들여라도 최소 30미尾, 물고기를 세는 단위 짜리 한 상자는 사야지’ 마음 먹었다. 제철인 6월 중순 신안군 지도읍에서 열리는 ‘섬 병어축제’가 떠올랐다.

신안군에 전화를 넣었다. “병어축제 언제쯤 열리나요?” 담당 주무관은 “올해는 계획이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코로나19 때문일 것이다. 축제의 열기를 느낄 수 없어 아쉽지만, 병치 대량 구매에는 지장이 없다. 때가 되면 신안으로 달려가 제철에 나온 싱싱한 병치들을 고르면 되니. 혹시 아나, 2척짜리 실물 병치도 볼 수 있을지.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지만 서두르지는 않으련다. 더 간절한 맛을 위해 적당한 때를 기다릴 것이다. 시간과 발품이 들어간 병치를 그득 쟁여놓고 주로 아내와, 때때로 손님과 맛나게 꺼내먹어야지. 아참, 우리집 제사상에 오른 병치는 언제부턴가 조림으로 한 번 더 조리된다. 병치 덕분에 제삿날이 고소해졌다.

글=노해경, 사진=노해경, 조현아 

편집자 주) 병치는 ‘병어’의 전라도 말입니다. 이 글에서는 어감을 살려 작가 원문 그대로 ‘병치’로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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