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나로우주센터 연구원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 당시 사진(2013.1.30)

2013년 1월 한국의 하늘을 멋지게 가른 나로호의 감동을 기억한다. 그 발사 현장인 고흥 나로우주센터는 우리 기술로 발사체를 만들어 우주 강국의 꿈을 쏘아 올리는 곳이다. 전남의 작은 섬 나로도가 한국 우주개발의 전초기지가 되고 있다.

3월초 나로우주센터를 찾았다. 다양한 설비동을 지나 언덕 끝에 이르자 발사대가 우뚝 솟아있다. 48m, 대략 아파트 16층 높이다.(발사체는 그보다 좀더 길다.) 이 발사대는 그간 나로호와 누리호 발사를 수행했다. 강선일 팀장(발사대팀)은 지난해 가을 누리호 1차 발사 때 고열에 녹고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고 있었다. “장기적으로는 고열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발사 후 강한 후폭풍을 대비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오는 6월 15일은 2차 발사일. 4월말까지 각종 점검을 마칠 예정이다. 연결타워, 이렉터, 서비스암 등 모든 장치가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한다. 발사체와 발사대는 정교한 한 몸이다. 강 팀장은 “발사 장면은 꽃잎이 벌어지는 모습을 닮았다”고 표현한다.

 

발사의 꽃잎이 벌어지기까지
발사 과정 총괄하는 강선일 발사대 팀장

발사대 손상 부위를 복구 중인 강선일 발사대팀장

나로우주센터 연구원은 대부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소속이다. 강 팀장은 발사대 개발과 유지를 총괄하는 책임연구원이다. 초기 모델인 KSR-Ⅲ부터 나로호, 최근의 누리호까지 전부 참여했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우주발사체의 발사대 설계와 제작을 할 수 있는 13명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1995년부터 관련 대기업에서 발사체 업무를 맡다가 2000년 항우연으로 이직했다. 우주개발의 초창기였던 당시에는 발사 현장이 충남 태안이었다. 항우연은 대전 과학기술단지에 있고, 나로우주센터는 그 실행기지이다. 강 팀장은 매주 대전에서 나로도로 출장와 2~3일씩 체류한다. 아침 회의를 시작으로 설비 점검과 각종 테스트, 회의와 보고서 작성 등을 반복한다.

이처럼 정교한 첨단기술들이 총출동한 시스템이 또 있을까. 기계공학, 수학, 물리학, 화학공학, 토목공학, 컴퓨터공학, 기상학 등 연관 학문도 무수히 많다. 수시로 난제와 오류를 검토하는 것이 발사체 개발의 주요 과정 중 하나다. 그는 “꼬인 부분의 해결점이 안 보일 때가 가장 힘들다. 연구원들끼리 토의도 하고 세미나도 연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계속 다른 시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고흥 나로우주센터 언덕 발사대 현장

모든 장비와 시스템이 정상이어도 발사는 실패할 수 있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같은 우주개발 강국들도 수많은 실패를 딛고 올라섰다. 지난해 누리호 1차의 경우, 발사는 성공했으나 최종적으로 위성모사체가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다. 산화제 탱크 안에 문제가 생겨 벽이 갈라졌기 때문. 지상과 다른 우주환경을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발사체에는 변수가 생기기 쉽다. 때문에 테스트를 수없이 반복해 발생 가능한 오류들을 찾고 제거해 나가야 한다.

발사 3일 전부터는 카운트다운 타임. 모든 과정을 리허설처럼 반복한다. 발사 당일, 이륙 전 마지막 10분은 사람이 관여할 수 없는 시간이다. 컴퓨터들끼리 최종 정보를 처리한다. 사람이 만들었으나 사람은 손댈 수 없는, 가장 짜릿하고 긴장된 시간이다. 연구원들은 각자 믿는 신에게 기도를 한다. 강 팀장은 “눈을 질끈 감게 된다. 눈을 떠서 발사대가 비어있으면 안도감이 든다. 발사체가 쭉 날아갈수록 내 기분도 심장박동도 최고조에 이른다”고 말한다.

 

하늘과 지상의 끈, 데이터
발사체 궤적 추적하는 송하룡 연구원

발사체 궤적을 추적하는 일을 하는 비행안전부 송하룡 연구원

발사대 개발이 하드웨어라면, 송하룡 연구원(비행안전부)의 업무는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 발사체의 궤적을 추적하는 일이다. 발사체 곳곳에 장착된 500여 개의 센서가 데이터를 전송하고, 송 연구원을 비롯한 25명의 추적팀은 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수시로 퀵리포트를 작성한다.

발사체는 땅을 떠나 날아가도, 지상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데이터 분석이 미흡해 발사체에 통제력이 닿지 못한다면? 지상의 네트워크 이상으로 발사체 추적장비가 꺼진다면?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하다. 네트워크가 일정 시간 내 복구되지 못하면, 발사체가 멀쩡히 날아가고 있더라도 폭파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추적시스템은 3~4중의 보완 장치를 갖추고 있다. 발사 전 시뮬레이션(모의 훈련)도 200번 이상 시행한다. 비정상적인 상황들을 섞어 놓고, 미리 설계한 알고리즘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한다. 비행시험도 반복한다. 지난해 1차 발사 때는 다섯 차례 시행했다.

송 연구원은 늘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데이터와 씨름한다. “발사가 임박했는데 그간 안 보였던 오류가 발견되면, 잠도 안 오고 밥맛도 뚝 떨어진다. 아주 작은 오류라도 나를 지나쳐 다른 시스템으로 넘어가면 어떤 나비효과를 낼지 모르기 때문에….” 그는 대학에서 전기전자정보통신학부를 졸업하고, 확률통계신호처리 분야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2011년 항우연에 입사해 나로호 2차 발사부터 참여했다.

나로우주센터 업무의 꽃은 당연히 발사다. 온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올림픽 무대의 김연아 선수만큼 긴장되리라. 송 연구원은 긴장감 못지않은 자부심을 이야기한다. “내 전공을 살려 국가의 중요 프로젝트에 기여한다는 게 기쁘다. 지난해 누리호 발사 때 대통령 뒤에 내가 서 있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혀 아이들이 놀랐다. 애들은 내가 ‘발사체를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난 공정의 일부일 뿐인데. 좀 크면 자세히 말해줄 생각이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에 전시된 발사체

그는 5년 전 고흥읍으로 이사와 출퇴근하고 있다. 상근 연구원 중 송 연구원처럼 가족 단위로 이주한 경우는 5%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센터 내 기숙사에 살거나 자취를 한다. 이들에게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문제가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외부인 접근이 쉽지 않은 국가 기밀시설이라 생활편의공간이 적은 것도 아쉽다. 야근을 하다 보면 나로도 바다에는 고깃배 불빛들이,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거린다. 설계부터 발사까지 10년이 훌쩍 넘는 발사체 개발사업은 별빛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는 걸음이다.

우주개발 여정의 일원이 되고 싶은 이에게 필요한 적성은 무엇일까. 강선일 팀장과 송하룡 연구원이 꼽아보았다. 분야가 분야인 만큼, 기본적으로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야 한다. 또한 침착해야 한다.(→긴장과 실패의 순간마다 땅을 친다면?) 궁금한 점은 반드시 확인하고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깨알 같은 오류라도 발사에 태풍이 될 수 있다.) 끈기가 필요하다.(→문제 발생을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한 시도로 해결하는 과정을 즐기는 게 좋다.) 송 연구원은 “문제를 뚫어지게 보며 눈싸움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두꺼운 안경알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강선일 팀장이 들려주는 한국형 발사체 이야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은 정부가 자금을 출연하는 과학연구원 중 한 곳이다. 항우연은 국가 차원의 우주개발을 추진하는 기관으로, 한국형 발사체 개발을 특화하고 있다. 발사체는 인공위성 같은 것을 우주로 실어 보내는 수단이다. 궤도에 안착한 인공위성은 GPS, 통신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장기적으로 달 탐사, 행성 간 탐사도 할 수 있다. 결국 발사 기술은 한 나라의 우주개발 기술력을 가늠하는 척도다. 현재 한국은 세계 10위 안팎의 우주개발 선도국가에 속한다. 

누리호 모형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독자적인 발사 기술을 개척해왔다. KSR-Ⅰ, KSR-Ⅱ, KSR-Ⅲ호(3단형 액체추진 과학로켓)를 거쳐 2013년 1월 나로호(100㎏ 소형위성 발사체) 발사에 성공했다. 나로호는 러시아 기술을 이전받은 발사체 1단을 제외하고 우리 기술로 만든 쾌거였다. 본격적인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2010.3~2022.10)은 100% 우리 기술로 진행되고 있다. 바로 누리호(1.5톤급 실용위성 발사체)다. 누리호는 시험발사체 발사(2018.11)를 거쳐, 지난해 10월 1차 발사를 마쳤다. 오는 6월 2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나로우주센터는 대한민국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장이자, 세계에서 13번째 우주센터이다. 발사대, 조립시험시설, 추진기관시험설비, 발사통제동, 발사체 보관동, 추적레이더, 기상관측소 등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 남태평양 팔라우에도 추적레이더를 두고 있다. 나로도 언덕은 서남해를 향해 넓게 열려 있고, 발사에 적합한 15~17도 각도를 갖춘 최적지다. 상주 연구원 약 60명, 협력업체 직원 약 200명 등이 근무하고 있고, 발사체 관련 연구원들이 대전 본원에서 출장을 오가고 있다.ㅎ한국 ㄴ누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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