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공동 일터 해남김치마을

“이번 주 김장하자.” 우리집 김장은 사흘 동안 진행된다. 겨울맞이 가장 큰 행사다. 첫날은 배추를 캐고, 가르고, 간을 친다. 속이 꽉 찬 배추 한 포기의 무게는 대략 3㎏. 네 집이 나눌 70포기를 손질 후 반으로 가른다.

손질된 배추를 소금물에 담가 하룻밤을 재운다. 삼투압으로 잎이 부드러워지면 깨끗한 물에 헹궈 짠기를 희석시킨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씻긴 배추를 받침대 위에 오와 열을 맞춰 가지런히 정리한다.

배추에서 물이 빠지는 사이, 양념을 준비한다. 다시마와 보리멸치, 표고, 무 등을 넣고 푹 끓여 육수를 만든다. 찹쌀죽을 쑤고, 멸치젓도 끓여놓는다. 갓, 쪽파, 청각 등을 총총총 썰고 무, 양파, 사과, 당근, 마늘, 생강, 건고추 등을 한데 갈아 걸쭉하게 준비한다.

셋째날 마침내 김치가 탄생한다. 준비한 모든 양념들을 대야에 붓는다. 햇고추가루, 멸치생젓, 새우젓, 각종 조미료들을 넣어 간을 맞춘다. 윤기나는 붉은 양념이 완성되면, 씻어놓은 배추를 가져와 한 장 한 장 배춧잎을 넘겨가며 정성스레 양념을 바른다.

행사의 마무리는 보쌈이다. 싱싱한 굴과 부드러운 수육, 햅쌀로 지은 쌀밥, 그리고 막 버무린 김장김치. 점심식사를 맛있게 마친 딸이 입을 뗀다. “와, 인자 겨울 온 거 같네. 근데, 우리도 내년엔 사먹을까?”

해남은 우리나라 최대 겨울배추 산지다.
해남은 우리나라 최대 겨울배추 산지다.

생으로 먹고, 끓여 먹고, 지져 먹고, 볶아 먹고…, 김장김치는 겨우내 든든한 식량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월동을 위해 채소를 발효해 먹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가포육영’이라는 시에서 ‘순무로 담근 장아찌는 여름 3개월 먹으면 좋고, 소금에 절인 김치는 겨울 내내 반찬이 된다’고 기록했다. <동국이상국집> 중

오늘날은 사정이 사뭇 다르다. 언제든 채소를 구입할 수 있다. 전통적인 김장 목적이 희미해진 것이다. 지난해 김치제조 기업인 ‘종가집’이 2,845명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10명 중 절반 이상(56.2%)이 김장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한다. 그 중 62%는 포장김치를 구입하겠다고 했다. 이런 수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김치를 담그는 주체, 공간이 달라지더라도 소비 총량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도 보인다.

 

해남배추, 해남김치, 해남농민 ‘활짝’

해남은 산과 바다, 들이 펼쳐진 구릉지대가 많다. 기후가 온난해 1월에도 평균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해남에서는 한겨울에도 초록의 싱그러운 배추를 만날 수 있다. 해풍을 맞고 자란 해남배추는 육질이 단단하여 쉽게 무르지 않고 아삭하고 시원해 최고의 품질로 꼽힌다.

해남은 또한 배추 가공산업도 활발하다. 지난해 해남군은 절임배추 판매로 총 648억 3,776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782곳이 판매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농가다. 2020년도 기준, 해남군 제공

 

해남김치마을은
김치를 매개로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농가수익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김광수·이주현 부부가 운영하는 해남절임배추 공장. 평상시에는 가족 경영체제이지만, 물량이 많은 김장철에는 일용직 노동자를 채용한다. 현재는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김광수·이주현 부부가 운영하는 해남절임배추 공장. 평상시에는 가족 경영체제이지만, 물량이 많은 김장철에는 일용직 노동자를 채용한다. 현재는 15명이 근무하고 있다.

농가 소득 확보를 위해 해남군은 절임배추산업에 다양한 지원책을 펼친다. 온라인쇼핑몰 ‘해남미소’를 열어 유통망을 확대하고, 배추절단기, 세척기 등 생산장비와 작업장 마련 등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여기에 더해 식품저장·물류센터, 가공공장, 연구센터, 창업수출 지원 인프라 등을 갖춘 김치전문생산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해남절임배추는 직거래, 인터넷판매, 전화주문 등으로 유통된다. “우리집은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되요. 10년 정도 됐는데 알음알음 소개해주셔서 단골고객들이 많이 늘었어요.” 해남군 북평면 동해리 ‘해남김치마을’에서 절임배추를 생산·판매하고 있는 이주현 씨가 말했다.

이곳은 남편 김광수 씨(북평면절임배추협의회장)의 고향. 부부는 10년 전 서울에서 해남으로 귀농해 배추와 쌀, 마늘, 양파, 고추, 감자 등을 재배한다. 주된 소득원은배추다. 매년 12,000평 가량 심어 11월부터 3월까지 절임배추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올해는 배추가 매우 귀해 물량이 폭주해요. 12월이면 소진될 거 같아요”라며 이 씨가 웃음지었다. 김광수·이주현 부부는 막걸리 식초를 활용한 농법으로 건강하고 맛있는 배추를 키우고 있다. “병충해를 막고 배추의 단맛을 끌어 올린다”며 김광수 씨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다 같이 성장하는 일터, 해남김치마을

해남김치도 인기다. 해남김치마을은 김치를 매개로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농가수익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김치마을이 생긴 건 2007년. “처음엔 김치 주문을 집집마다 연결했대요. 말그대로 전라도 가정식이었죠. 레시피가 다 다르니까 재주문 받을 때 일관된 맛을 내기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9년 전 마을주민들이 다 같이 모여서 가장 맛있는 맛으로 표준화시켰어요.” 10년 전 귀촌 온 최은경 사무장의 말이다.

전라도는 예로부터 온난한 기후와 기름진 농토가 많아 식재료가 풍성했다. 이런 영향으로 전라도김치는 재료를 풍부하게 넣어 감칠맛을 낸다. 또 다양한 젓갈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김치 광주, 맛과 멋>, 세계김치연구소

해남김치마을은 배추김치와 갓, 알타리무 김치 등을 판매한다.(김장철 한정) 묵은지는 6월부터.
해남김치마을은 배추김치와 갓, 알타리무 김치 등을 판매한다.(김장철 한정) 묵은지는 6월부터.

너른 들과 비옥한 황토를 가진 해남김치마을의 김치도 전라도의 특색을 그대로 보여준다. “합성조미료 없이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양념을 다양하게 넣죠. 과일이랑 채소랑 마을에서 생산한 싱싱한 것들로요. 멸치젓, 새우젓 등 젓갈도 세 가지나 들어가요.” 최은경 사무장은 “마을김치는 자연 그대로의 감칠맛”이라고 자랑했다.

배추, 무, 갓, 양파, 마늘, 고추, 쪽파, 대파 등은 마을주민에게 구입하고, 없는 것은 인근 지역에서 찾는다. 멸치젓은 완도에서 갓 잡힌 것들로 직접 담그고, 새우젓은 신안서 들여온다. 육수에 쓰이는 다시마, 사과, 표고버섯 등도 전남 산이다.

해남김치마을은 김장철(보통 11월~12월 중순)이 되면 매주 화요일마다 김장을 한다. 직전 1주일간 예약을 받는다. 김장주문이 마무리되면, 부녀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묵은지용 김치를 따로 담근다. 

한 해 평균 판매량은 3톤 정도. 김장용으로 1톤, 묵은지용으로 2톤 가량이 나간다. 재료비와 인건비, 사무실 경비를 뺀 수익금은 누적해 마을 활동에 쓰인다. 명절, 어버이날 등 행사를 열어 주민들에게 선물을 전하고, 1년에 한 번씩은 마을 관광을 떠난다. 마을주민에게 구입한 재료들의 값도 시세보다 1~2천 원 넉넉하게 지급한다. 마을주민들은 김치 사업을 ‘모두의 일’로 여기고 팔을 걷어 부친다.

최근 한국 음식문화에 대한 해외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 11월에 대만에서 열린 ‘달려라! 한식 버스’ 행사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한국이 김치종주국임을 명시한 ‘김치의 날’이 제정되고, 11월 22일 제1회 김치 페스티벌이 열렸다. 김치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12월부터는 ‘아마존’과 미국 현지 홈쇼핑까지 진출한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홀릴, 맛의 고장 전남의 도약을 기대하시라.

글·사진 조은애  

 

해남김치마을

해남 대둔산 자락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공룡저수지, 너른 들판, 고즈넉한 돌담길, 멀리 보이는 바다가 평온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이곳은 김치판매 뿐만 아니라 갖가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계절마다 쥐불놀이체험, 갯벌체험, 박쥐동굴체험, 물놀이체험, 김치버무리기체험 등이 펼쳐진다.(현재는 코로나19로 상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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