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섬(하)

신안, 진도, 완도는 전라남도 행정구역 중 오직 섬으로만 이뤄진 곳이다.

유인도와 무인도를 합하여 200개가 넘는 완도의 섬들은 고종 이전까지 해남, 영암, 강진, 장흥 등에 나눠 속해 있었다. 갑오개혁(1894~1896)에 따라 ‘완도군’이 생겨났다.

1,000개가 훌쩍 넘는 신안군의 모든 섬들 또한 영광, 해남 등으로 나뉘어 있다가 일제강점기에 무안으로 통합되었다. 1969년 지금의 섬들을 따로 묶어 ‘신안군’이 생겨났다. 새로운新 무안安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진도는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국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때문에 완도나 신안과는 달리 오래전부터 독자성을 유지해 왔다.

완도와 진도는 ‘완도’와 ‘진도’라는 중심에 주변의 섬들이 어울리는 구조이다. 진도는 본섬의 중심성이 강한 반면 완도는 상대적으로 그 중심성이 약하다. 신안군은  ‘신안’이라는 중심이 아예 없다. 압해도가 군청 소재지이기는 하지만 지역민들이 압해도를 신안의 ‘중심 섬’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행정구역이라는 ‘인위’를 제거하면 모든 섬들은 별이 그러하듯 홀로 꼿꼿하다. 각자 중심이면서 서로가 주변이다. 스스로 하나의 행성이고, 모여 있는 섬들은 은하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바다는 은하수가 될 것이다. 견우와 직녀를 떼어 놓고, 또 만나게 하는.

 

열린 공간, 유연한 사람들

섬은 상반되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하나는 고립이고, 또 하나는 열림이다.

고립은 섬문화의 고유성을 생성시키고 보호한다. 진도의 씻김굿과 진돗개, 신안의 뜀뛰기 강강술래 같은 사례를 들 수 있다.

열림은, 섬 혹은 섬사람들의 진취적인 기질 형성에 기여한다. 오래전 장보고(완도), 한국 현대사의 거물 김대중(신안)이 그 증거 중 일부다.

신안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주변에 조성된 평화공원과 해양테마파크(ⓒ신안군)
신안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주변에 조성된 평화공원과 해양테마파크(ⓒ신안군)

고립은 그럴만하다 여겨지는데 열림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열림의 본질은 외부와의 접촉이다. 흑산도가 고향인 친구는 마카오, 상해, 오키나와 표지판을 보며 자랐다. 태풍이라도 닥치면 인근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들이 예리항에 정박했다. 여러 인종,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항구의 거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내륙 산골에서 자란 나는 접촉할 수 없는 ‘외부’였다.

증기선과 철도. 근대를 가능케 한 두 개의 발명품이다. 바다를 건너는 증기선과 내륙을 횡단하는 철도가 ‘세계’를 창조하고 확장시켰다. 서남해안 어느 섬의 홍길동 씨는 증기선을 타고 목포로 건너온 다음 목포역에서 열차를 타고 신의주까지 갈 수 있다. 단 한 번의 환승이면 된다. 다시 한 번 환승하면 북경도 금방이다.

흑산도 친구를 다시 불러내 보자. 친구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소안도(완도)에서 김 양식을 했다. 굳이 신안에서 완도까지, 라는 내 의문은 바닷길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겨났다. 흑산도에서 소안도에 이르는 바다는 넓게 열려있다. 조류를 활용하면 목포보다 가까운 곳이 흑산도-소안도 바닷길이라는 것이 친구의 설명이었다.

신안 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는 쉼터 조형물 ‘베드로의 집’. 기점·소악도에는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예배당 모양의 쉼터들이 조성돼 있다. 기점·소악도 섬트레킹 코스는 ‘한국의 산티아고길’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신안군)
신안 대기점도 선착장에 있는 쉼터 조형물 ‘베드로의 집’. 기점·소악도에는 예수의 12사도 이름을 딴 예배당 모양의 쉼터들이 조성돼 있다. 기점·소악도 섬트레킹 코스는 ‘한국의 산티아고길’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신안군)

고유성은 중심을 튼튼하게 한다. 열린 개방성은 그 중심이 부패하지 않게끔 신선한 바람을 제공한다. 고립과 열림이라는 상반된 속성을 제 몸속에 통합시킨 공간이 섬이다. 그 섬의 영양분을 섭취하며 자란 섬사람들은 강하면서 유연하다. 고집불통이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를 확인하면 두말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려 놓는다. 신안, 진도, 완도의 친구들이 한결같이 그러했다.

 

국토의 범위를 결정짓는 요지

해외海外. 바다 바깥을 뜻하는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국외國外로 쓰인다. 국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북방으로 나아가는 길은 휴전선으로 막혀있다. 하여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비행기 운송체계가 본격화되기 전에 생겨난 말이 해외이다. 하지만 비행기라 해도 북한 영공을 지나지는 못하니, 바다를 건너는 건 마찬가지다.

바다에는 섬이 있다. 그 섬의 국적에 따라, 그 나라가 배타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바다의 범위가 달라지고, 하늘의 영역도 결정된다. 섬에 누가 살고 있는지,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밥을 먹는지가 ‘어느 나라 영토냐’에 대한 가장 강력한 답이 된다. 섬, 그리고 섬주민이 갖고 있는 영토적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다. 

동중국해상에 위치한 8개의 무인도(일본명: 센카쿠 열도)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대립하고 있다. 일본의 훗카이도와 러시아 캄차카 반도 사이에 쿠릴열도가 펼쳐져 있다. 이 섬들 중 이른바 ‘남단 4개 섬’을 놓고 러시아와 일본이 대립하고 있다. 청일전쟁, 2차 세계대전 등의 역사를 거치면서 ‘분쟁지역’이 됐다. 

대한민국 영토와 배타적 경제구역 개념도
대한민국 영토와 배타적 경제구역 개념도

우리나라 국토 기점은 서해 최북단 백령도(인천), 최서남단 가거도(신안), 최남단 마라도(제주), 동쪽 끝 독도(경북)이다. 본 섬에는 모두 사람이 살고 있으며, 주변의 무인도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제주의 이어도, 신안의 가거초 등은 섬이 아닌 암초이다. 대한민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며, 두 군데 모두 해양과학기지가 조성되어 있다.

어디까지가 대한민국일까. 국제법은 육지를 기준삼아 12해리까지의 바다를 특정 국가의 소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 육지는 ‘섬’까지를 포함한다. 우리의 경우 휴전선을 제외한 모든 접촉면이 바다이므로 대한민국의 영역을 결정하는 기준은 ‘섬’이다. 섬이 없는 동해 일부 지역은 내륙해안선으로부터 12해리까지가 영해이다. 섬을 기준으로 배타적 경제수역과 대륙붕까지 우리나라의 것이 되니 섬이 지닌 영토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지나치지 않다.

지금까지 섬은 해양관광이나 수산업 기반 경제활동 공간 정도로 이해되어 왔다. 실상은 대한민국의 공간적 범위를 결정짓는 기준점이며, 해양자원개발, 해양재난과 해양연구의 최전방, 국토수호의 최첨단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 최외곽도서를 “국방안보+경비+연구거점+기후변화 대응+해양재난 대응 등 다목적성을 갖춘 공간으로 설계되고 관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외곽 중점 도서를 중심으로 공적公的 기능이 강화된 거점화를 추진하고, 이 섬을 중심으로 주변 공동화空洞化 방지, 어민활동 지원, 유인 정착화 확대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참고 ‘섬, 대한민국 해양영토의 최전방을 지키다’, 해양수산부 공식블로그)

가거도 등대에서 바라본 소국흘도. 국토 최서남단 영해 기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영해 기점에는 첨성대 모양의 구조물이 있다.
가거도 등대에서 바라본 소국흘도. 국토 최서남단 영해 기점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영해 기점에는 첨성대 모양의 구조물이 있다.

 

무한한 자원을 품은 ‘꽃섬’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맨 먼저 어디를 탐낼까. 공상과학영화는 뉴욕이나 도쿄, 서울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가 공격당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외계인들이 도시를 먼저 점령한다는 설정이다. 과연 그럴까. 대도시가 제공하는 자원은 콘크리트와 사람, 오염된 하수구 정도밖에 없다.

과학자들은, 외계인들이 도시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바다를 향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동식물부터 무기물까지 도시의 수백, 수천배에 달하는 자원이 바다 속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서울이 아니라 신안바다를 노린다는 것이다. 신안의 바다 면적은 서울 육지 면적의 22배에 달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섬과 바다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접근하지 못할 깊이까지 도달하고, 다다르기 어려운 넓이까지 탐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시각이 육지 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완도나 신안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불과 100년 안팎의 과거에는 육지의 일부분으로 취급되었다. 21세기라고 해서 조선시대의 인식 틀에서 충분히 벗어났는지는 의문이다. 2년 전에 단군 이래 최초로 ‘섬의 날’이 제정되었다. 섬과 해양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바다와 섬은 지나온 삶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역사문화의 보고이며, 이곳과 저곳을 이어주는 오작교이자, 국가의 영역을 확립해주는 기초이다. 또한 바다와 섬은 그 자체로 무한의 자원을 품고 있으며 열린 가능성이 꿈틀거리는 공간이다. 신안, 진도, 완도가, 그러니까 전남의 모든 섬들이 경이로운 미래를 품고 있는 ‘꽃섬’이라는 것이다. 

 

먼데 섬은 다 먹색이다
들어가면 꽃섬이다.
-이대흠, ‘꽃섬’

 

글·사진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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