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5·18민족통일학교 주최 ‘전남청소년항일역사탐방’을 다녀와서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수많은 제주인들이 아직도 4·3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과거의 아픔이 시간을 뚫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걸 들으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 이동민(여수고2)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전남의 중·고등학생들이 모였다. 학생 30명과 나를 포함한 인솔교사 5명은 설렘과 의지를 안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5·18민족통일학교 광주전남지부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전남청소년항일역사탐방(제주)을 진행했다. 우리 청소년들이 교과서로 만나는 역사교육을 넘어 유적지를 발로 걷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근현대사를 체험하도록 기획된 사업이었다. 청소년들은 2박 3일동안 제주의 아픔이 서린 유적들을 둘러보고, 저녁 시간에는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사 강사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사)5·18민족통일학교가 주관하고, 전라남도교육청에서 후원했다.

첫째 날에는 항일운동 발상지 조천 제주항일기념관과 태평양전쟁 시 일제 강제노역지 서우봉 일제진지동굴, 그리고 4·3평화기념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마지막 방문지에서 특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너무나 많이 죽었다. 어린 아이에서 나이든 어른까지 구분 없이 모두가 몰살당했다. 위패봉안실 앞에서 우리는 묵념을 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평화를 기원했다. 

둘째 날엔 배를 타고 가파도에 들어갔다. 일제강점기 김성숙 선생이 설립한 학교 ‘신유의숙’의 터를 보기 위해서다. 신유의숙은 항일교육과 한글 보급에 앞장섰던 곳이다. 이 작은 섬에서 항일혁명가가 5명이나 배출됐다. 완도 소안도가 떠올랐다.

1949년 두 살배기 딸을 안고 피신하다 희생된 모녀를 기린 ‘변병생모녀상’은 어떤 말과 글보다도 강렬했다.
1949년 두 살배기 딸을 안고 피신하다 희생된 모녀를 기린 ‘변병생모녀상’은 어떤 말과 글보다도 강렬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야욕이 고스란히 담긴 군사기지 알뜨르비행장과 송악산 진지동굴을 찾았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시켜 돌을 들어 날라 벙커와 격납고를 만들었다. 어른들도 들기 어려운 저 무거운 돌들을 아이들은 어떻게 들었을까. 상상도 가지 않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힘없는 국가의 민중들은 참담한 세월을 감내해야 했다.

당초 전남청소년동북항일유적탐방의 목적지는 백두산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제주도로 방향을 틀게 됐다. 비록 계획은 달라졌지만 뜻 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제주4·3을 통해 여순10·19를 볼 수 있어 각별했다.

해방정국 시기, 새로운 나라를 만들려는 ‘열망들’이 전국 곳곳에서 충돌했다. 그 충돌의 화염이 제주도로 튀어 섬 전체를 화산처럼 뜨겁게 불태우고 지나갔다. 섬은 긴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말을 꺼내고 있다. 진실은 너무 참혹해 다 듣기도 전에 아파왔다.

이번 유적탐방에서 유적지 해설과 저녁 특강을 맡은 강사들은 모두 제주 현지인들이었다. 4·3과 관련 있는 유가족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전해준 이야기는 생생했고 진솔했다. 큰 울림이 있었다. 역사유적 탐방은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해야 함을 다시금 확인했다.

4·3 대하소설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 선생은 말했다. “기억이 말살당한 곳에는 역사가 없습니다. 역사가 없는 곳에는 인간의 존재가 없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은 주검과 같은 존재입니다. 반세기가 넘도록 기억을 말살당한 제주 4·3은 한국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입 밖에 내놓지 못하는 일, 알고서도 몰라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라고. 그는 공포에 질린 섬 주민들이 스스로 망각에 들어서 기억을 죽이는 것을 ‘기억의 자살’이라 불렀다.

여순사건 때 억울하게 학살당한 희생자 유가족들도 오랫동안 숨죽여 살았다. ‘빨갱이’ 낙인이 언제든지 그들의 삶을 짓밟기 위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70여 년, 통한의 세월을 버텼다. 그나마 다행히 올해 6월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진상조사를 통해 하루빨리 여순10·19의 더 많은 진실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그것이 희생자들의 한을 풀고 유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굴절된 역사의 진실을 찾아 바로 세우는 것에서부터 평화는 시작된다.

 

신숙자(5·18민족통일학교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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