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모싯잎송편

어김없이 모싯잎은 무성했다. 예닐곱 해 전이었을까. 어머니는 모시풀 몇 줄기를 시골집 담장 밖에 옮겨 심었다. 들녘 논두렁에 당신 허리 높이로 자란 녀석들이었다. 새 터로 이사 온 모시풀은 이내 군락을 이뤘다. 올 추석에도 어머니는 이 모싯잎을 햅쌀과 빻아 송편을 빚겠지.   

어머니가 사는 함평 집 옆으로는 4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이 신작로와 함께 모시풀은 시골집의 붙박이 풍경이다. 이태 전 여름에 보니 모시풀 한 무더기가 싹둑 잘려나가 있었다. 추석도 한참 남은 때였는데. 그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남에게 베어 줬다고 했다. “짠하드라”는 말과 함께. 

잿빛 담장을 배경으로 잎을 펼친 모시풀이 집 주변을 지나던 어떤 노부부의 눈에 밟혔나 보다. 부부는 차를 세워 집 안팎을 청소하던 어머니에게 다가와 말했다. 서울이 집이고 몇 십 년 만에 고향에 왔다 돌아가는 길인데, 모시풀을 보니 어릴 적 생각이 나서 발길을 멈췄다는 것이다. 

모싯잎(위)이 들어간 송편 반죽(아래)
모싯잎(위)이 들어간 송편 반죽(아래)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는 낫을 들고 모시풀 한 아름을 베어 건넸단다. “금방 (모싯잎) 또 올라 와라~” 라는 말을 건네며. 부부의 모습에서 어머니는 읽었나 보다. 언제 또 올지 모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정든 땅을 어떻게든 손에 쥔 채 돌아가고픈 마음을.  

모시풀은 백제 성왕 때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줄기로 옷을 만들기 위해서. 낯선 풀은 곧 충청도와 전라도, 경상도 같이 따뜻한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유독 전라도 사람들은 멋을 알았다. 떡에 옷을 입힌 것이다. 그 상상력 덕분에 전라도는 모싯잎송편을 얻었고, 송편은 제 장롱에 짙은 녹음 빛깔 옷을 추가할 수 있었다. 모싯잎송편은 올 추석에도 수많은 전라도 차례상을 채울 것이다. 

송편을 추석 대표 음식에서 일상의 먹거리로 바꾼 것도 모싯잎송편이다. 손쉬운 주문으로 이제 언제 어디서 누구나 즐기는 음식이 됐다. 1970년대 할머니들이 영광터미널 주변에 가판을 열고 모싯잎송편을 팔기 시작했다. 

그 맛이 입소문을 탔고, 주문으로 이어지자 영광터미널을 중심으로 떡집이 늘기 시작했다. 2021년 현재 영광에서만 130개 업체가 홈쇼핑과 해외 대형마트까지 모싯잎송편을 납품하고 있다. 한 해 매출 300억 원 대의 어엿한 산업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영광군은 잎이 많이 열리는 신품종 ‘옥당’ 모시를 개발해 농가를 도왔다. 2017년 영광모싯잎송편은 지리적표시제 등록까지 마쳤다. 예부터 양질의 모시로 토산품을 진상해오던 영광 사람들이 오늘도 모싯잎송편으로 전통을 잇고 있다.

서울의 노부부는 어머니가 건넨 모싯잎으로 송편을 빚었을까. 찐 떡쌀의 차진 맛과 함께 씹히는 모싯잎 섬유질의 저항감을 나누고, 동부·깨·팥 앙금의 고소함에 미소를 머금었기를. 그 맛과 향을 따라 떠올린 옛 추억들로 두런두런 이야기꽃 피웠기를. 모싯잎송편과 함께 고향의 쨍한 햇살과 서늘한 바람이 노부부의 마음에까지 닿았기를. 추석이 목전이다.

※모싯잎송편 자료를 공유하고, 취재를 도와주신 영광군 군서면 공달모싯잎송편 박공달 대표님, 영광군농업기술센터 박남호 주무관님께 감사드립니다. 

글·사진 노해경

저작권자 © 전남교육소식 함께꿈꾸는미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