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군 천일염전

새벽 5시, 여명이 밝아올 무렵, 신안군 신의도 홍철기 소금장인(신안천일염생산자연합회 회장)은 이미 염전 앞에 서 있다. 정방형의 소금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언뜻 모내기 전 농촌의 너른 들 같다. 바닥엔 하얀색 알갱이가 가득하다. 누군가 일부러 부어놓은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장인이 대파(소금을 밀거나 긁는 기구)를 잡는다. 오늘은 300포대(20㎏ 기준) 가량을 수확할 계획이다. 염전엔 태양을 피할 공간이 없다. 그래서 염부들은 이른 새벽과 석양을 이용해 일을 한다.

 

아침 일찍 소금밭에 나와 일하고 있는 소금장인들
아침 일찍 소금밭에 나와 일하고 있는 소금장인들

소금은 대파에 부드럽게 미끌려 두둑을 향해 일렬로 모아진다. 180평짜리 밭 8칸은 2시간 즈음 걸린다. 밭에는 투명한 물만 남는다. 예전이라면 15~20㎏쯤 되는 무거운 대파를 밀고 다녔겠지만 지금은 전동대파기라 수월하다. 레일이 깔린 두둑 양쪽으로 하얀 산맥이 생긴다. 염부가 자동채염기를 작동하자 한 쌍의 백조를 닮은 채염기가 레일을 따라 저절로 움직이며 소금을 흡입한다. 빨려 들어간 소금이 하얀 수레에 쏟아진다. 염부는 소금으로 가득찬 수레를 끌고 소금창고에 들어간다. 창고 안에 놓인 컨베이어 벨트는 소금이 쌓인 곳까지 수레를 자동으로 옮겨준다. 수레가 도착하자 염부는 삽을 든다. 소금 하차를 위한 삽질이 가열차다.

 

대파질을 하는 염부(2015신안공모전 입선작, 염부의 일상, ⓒ이항우)
대파질을 하는 염부(2015신안공모전 입선작, 염부의 일상, ⓒ이항우)

“옛날에는 다 사람이 했죠. 롤러로 갯벌 밀어서 염전 만들고. 양수기가 없으니까 수차 밟아 물 푸고, 무거운 대파도 밀고, 소금 퍼 나르고… 엄청 고됐죠.” 2000년대 들어서 염전 농사에 기계가 빠르게 도입됐다. 사람이 힘으로 하던 대파질, 수차(물을 퍼올리는 물레방아), 소금 담기, 상차와 하차까지 전동화·자동화되고 있다. 때문에 3명이 일했던 홍철기 씨 염전도, 혼자만으로 관리가 거뜬해졌다. 설비비가 상당했지만 “지자체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고 한다.  

 

사람이 하던 노동들이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채염기와 소금 수레
사람이 하던 노동들이 기계로 대체되고 있다. 채염기와 소금 수레

천일염전은 저수지, 증발지, 결정지로 이루어져 있다. 바닷물은 이 세 군데를 차례로 거쳐 마침내 소금으로 변한다. 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만조 때 ‘저수지’를 열어 바닷물을 가둔다. 저수지에서 바닷물을 퍼올려  ‘증발지’에 앉힌다. 수일동안 증발시켜 농축된 염수를 만들고, 깨끗한 물만 ‘결정지’로 보내 소금을 얻는다. 2~3일 후면 결정지에 하얀 소금꽃이 핀다. 물을 앉히고 소금을 수확하기까지 3~4주가 걸린다.

 

소금밭에 내려 앉은 하얀 소금들
소금밭에 내려 앉은 하얀 소금들

천일염天日鹽은 날씨의 영향이 크다. 따뜻하고 햇빛이 풍부하고 바람이 적당한 날에 태어난 소금이 좋다. 신안군은 3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소금 생산을 권장한다. 하지만 신안 소금농가들은 그보다 한 달가량 짧은 4월 15일부터 9월 말까지만 채염한다. “바람이 찬 3월과 10월에는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더 좋은 소금을 수확하기 위해서”라고 홍철기 회장이 말했다. 장마철과 겨울엔 주로 시설을 개보수하거나 염전을 청소한다. 

바닷물을 힘들게 말려놓았는데 비가 내린다면 허튼 일이 된다. 염부들은 이를 대비해 염전의 중간중간 땅을 파고 지붕을 얹었다. 소금물을 저장하는 창고 ‘해주’다. 해주는 땅 위에서 겸손하다. ‘포도시’ 지붕을 지표면 위로 내놓는다. 그렇다고 키가 작지는 않다. 지붕 아래에는 부근 바닷물을 모두 모으고도 남을 정도로 깊이가 넉넉한 창고가 숨어있다. 비가 그치면 염부는 이곳의 바닷물을 퍼 밭에 앉힌다.

 

소금계의 BTS, 신안 천일염

신안군은 세계 최대·최고의 갯벌천일염 생산지로 명성이 높다. 천일염 중에서도 갯벌천일염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지구 전체에서 나오는 천일염의 0.2%만이 갯벌천일염이며, 그중에서도 ‘메이드 인 코리아’가 90%에 가깝다. 국내산은 대부분 신안이 고향이다(65%). 영양학적 장점도 뛰어나다. 신안 천일염에는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유익한 미네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천일염계 명품이라 불리는 프랑스 게랑드 소금보다 미네랄 함량이 더 높다. 미네랄은 우리네 토속음식인 장류, 젓갈, 김치 등과 궁합이 좋다. 유산균의 성장을 돕기 때문에 젓갈의 풍미를 살려주고, 젖산 발효를 느리게 해 김치맛을 오랫동안 보존한다. 말하자면 신안 천일염은 소금계의 ‘BTS’, 곧 세계 으뜸이다.

사실 오래 전부터 전남은 소금의 주요 생산지였다. 우리네 전통적인 생산 방식은 ‘염도를 올린’ 바닷물을 가마에 넣고 끓여(구워) 만드는 것이었다. 자염 또는 화염이라 불렀다. <조선전매사>에 실린 1900년대 초 우리나라의 자염 생산 현황을 보면, 전라남도 생산량이 전체의 40% 가량이나 된다.  

우리네 전통 소금은 바닷물을 끓어 만든 자염이었다.(김준근作 염조지인(鹽造之人), 종이에 수묵, 오스트리아 비엔나민족학박물관 소장)
우리네 전통 소금은 바닷물을 끓어 만든 자염이었다.(김준근作 〈염조지인(鹽造之人)〉, 종이에 수묵, 오스트리아 비엔나민족학박물관 소장)

자염 생산은 땅에 쟁기질을 한다는 점에서 농사를 닮았다. 바다에 속한 염전 일을 두고 ‘소금 농사’를 짓는다고 표현하는 이유다. 갯벌을 갈아엎고 부순 뒤 흙을 햇볕에 말려 소금기만 남긴다. 그 흙에 다시 바닷물을 끼얹고 갈아엎고 말리는 작업을 반복하면 갯벌의 흙이 점점 짜진다. 짠 흙에 바닷물을 부어 염도를 높인 물을 채취해 소금가마에서 한나절을 끓인다. 이것이 자염 생산법이다. 자염은 투입되는 노동력에 비해 생산량이 너무 낮아 매우 귀했다. ‘평양감사보다 소금장수’라는 속담은 소금이 ‘금’값이던 시절을 가늠케 한다.

천일염전은 일제강점기에 일반화됐다. 일제는 수탈을 목적으로 인천과 지금의 북한 지역에 대규모 천일염전을 세워 관리했다. 생산량이 천일염에 비해 현저히 낮았던 전통 자염 시장은 몰락했고, 전남의 염전도 쇠퇴했다. 분위기가 전환된 건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부터다. 당시 북한에 천일염전이 몰렸던 까닭에 남한은 소금이 부족했다. 정부가 천일염전의 민간 개발을 승인하고 대규모 개발에 나섰다. 1947년, 비금도에 처음 천일염전이 들어섰다. 비금도 주민들은 조합을 결성하고 방조제를 막아 염전을 만들었다. 성공적이었다. 비금의 염전기술은 각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한때 비금초등학교에 염전 기술자 양성소가 운영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신안 천일염 최대 생산지, 신의도
신안 천일염 최대 생산지, 신의도

오늘날 신안 천일염의 최대 생산지는 신의도다. 염전 면적도 가장 넓고, 염전 농가와 염전 생산량도 가장 많다. 신안군에는 소금 장인이 약 800명이 있는데, 신의 사람이 233명이다. “신의는 다른 섬에 비해 농사짓는 면적이 적어요. 비금은 시금치가 유명하니까 농사도 꽤 짓거든요. 그런데 이곳 주민들은 오직 소금뿐이죠.” 홍 회장은 소금 농사에 전력하기 때문에 신의도 염전이 지역의 선봉에 섰다고 자부했다. 그의 말대로 신의는 가히 ‘소금의 섬’ 이었다. 어딜 가도 소금밭이요, 소금꽃이 가득했다.

 

소금농가들이 웃음꽃 피울 날

소금은 농협이나 도매상인(염업사)을 통해 유통된다. CJ제일제당(신의도)과 ㈜대상(도초도) 등 대기업에 납품되기도 한다. 개인소비자를 위해 택배도 하는데, 홍 씨의 경우 매일 20~30개씩 보낸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가장 힘든 게 유통이에요. 생산자가 생산에 주력할 수 있는 유통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홍 회장이 말했다. 안정적인 유통은 농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숙제다. 때문에 신안군은 유통종합시스템 등을 고민 중이다.

신안 천일염 한 포대를 짊어진 신의면 홍철기 소금장인(신안천일염생산자협회 회장)(ⓒ조은애)
신안 천일염 한 포대를 짊어진 신의면 홍철기 소금장인(신안천일염생산자협회 회장)(ⓒ조은애)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소금도 값싼 중국산의 수입 등으로 2016년엔 20㎏짜리 1포대에 3~4천 원까지 떨어졌다. 생산원가에도 미치지 못한 가격이었다. 염부들은 힘겹게 버텼다. 고된 노동과 해마다 들어가는 시설보수비, 고령화 등으로 염전에 태양광 패널을 세운 농가도 생겼다. 다행히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세가 오르기 시작해 최근엔 1만 6천 원~2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해 긴 장마로 수확량이 확 줄었고, 안전하고 건강한 소금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기 때문.

“몇 년 만에 드디어 제값을 받게 되니까 좋죠. 지금 같은 가격이면 염전에 후계자도 들어올 거예요.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어요. 단가 때문에 국산 대신 값싼 수입산을 사용하게 되면 우리 천일염의 시장이 위태롭게 되거든요.” 가격이 안정을 찾아 천일염 생산 농가가 맘 편히 웃을 날이 오길 바라본다. 

글 조은애  사진 신안군

 

TIP.
염전 체험은 신안군 증도 소금박물관에서 가능하다. 염전 체험을 한 관광객들에게는 소금 또는 소금사탕을 준다. 소금카페에서는 소금 아이스크림 등도 맛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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